정용진 구단주 행보에 대한 우려와 기대
지난 5월23일 저녁 야구판에 큰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좌완 투수 오원석(20)은 엘지(LG) 트윈스와 안방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전날 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정용진입니다. 상대 선발 앤드류 수아레즈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공을 던지면 됩니다.”
오원석은 맨 처음 피싱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신세계그룹 부회장인 정용진 랜더스 구단주가 실제로 보낸 문자였다. 구단주가 직접 응원의 문자를 보낼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지난 1월말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한 뒤 정용진 구단주는 여느 프로 스포츠 구단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야구단 인수 전에도 개인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했던 터라 야구팬들과 온라인 스킨십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유통 맞수 롯데가 야구단(자이언츠)을 소유한 것도 승부욕을 자극한다. 실제 정 구단주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야구를) 본업과 연결하지 못하는 롯데를 보면서 야구단을 꼭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게임에선 우리가 질 수 있겠지만 마케팅에서만큼은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라면서 “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며 도발하기도 했다
정용진 구단주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키움(히어로즈)을 발라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으며 판을 키우려고 한다. 스토리를 품은 마케팅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야구판이 커진다는 것은 유통 기업의 마케팅 대상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도 된다. 정 구단주가 최근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천안 캠프를 찾은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현대캐피탈은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천안을 배구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스포츠 마케팅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정 구단주의 이런 행보는 분명 반가운 일이다. 유통 기업 오너로 다분히 의도된 행동일 테지만, 그만큼 스포츠단에 애정이 보인다고 하겠다. 선수처럼 야구 유니폼을 착장하고 인증샷을 남기는 구단주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지금과 같은 행보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그나마 지금은 팀 성적이 괜찮지만 팀 성적이 나쁘거나 혹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비신사적, 비도덕적인 행위가 있으면 모그룹에 대한 성토까지 이어지는 게 야구판이다. 또한 지나친 관심이 자칫 팀 내 위계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오너가의 관심을 많이 받는 자유계약선수(FA)에게 팀 내부 사정과는 관계없이 목돈을 안겨주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당한 선은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
구단주가 진짜 야구단을 위해 구원 등판해야 할 시기는 반드시 온다. 그때도 무관심이 아닌 지금과 같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진심 바란다. 야구판은 사랑 받는 즐거움보다 미움받을 용기가 더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환상동화가 아닌 잔혹동화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고.
*이 글은 한겨레 신문 <맛있는 야구> 칼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