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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설화 Apr 18. 2022

자수의 시작



사람도 기계처럼 ON과 OFF가 있으면 좋으련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그 시절에는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아니 끌 수 없는 기계와 같았다.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은 온통 일과 육아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고, 쉽게 잠들지 못했고 식욕도 점차 잃어갔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던 사람..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불편하고 인상 깊었던

[82년생 김지영]처럼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고 나서야 이것은 내 잘못은 아니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자수를 시작한 것은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그때였다.

쉴 수 없는 머릿속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멍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일.

한 땀 한 땀 바늘과 실을 움직이면 어느새 형태가 나타나고 그것들이 모여 나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일.

그 당시 나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일은 자수가 전부였던 것 같다.

지금도 아이들을 보내고 난 후 살림을 정돈하고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앉아 수를 놓는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불안감,

아이들의 엄마로 불리는 전업주부의 그렇고 그런 삶이란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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