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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Jul 15. 2024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나는 X세대다. MZ세대와 함께 일하면서 겪는 일상들.

오후 1시 10분, 탕비실에서 꺅! 와~ 대박! 난리가 났다. 


탕비실과 가까운 나의 자리는 물을 자주 마시는 내가 정수기에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직원들이 소소히 모여서 떠는 수다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아니, 이것은 언제나 단점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활기찬 수다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즐거울 때가 많으니까. 다만 내가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탕비실을 가기 위해 내 방문 앞을 거치는 것이 직원들에게는 불편한 루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바로 옆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신경을 안 쓰는 것을 보면 나만 신경 쓰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쨌든, 점심시간이 끝난 지 10분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인데 직원들이 또 모여서 흥이 올랐다. 급하게 오늘까지 마감해서 본부에 보내야 하는 보고서를 훑고 있던 나는 오늘은 그 소음이 조금 신경 쓰인다. 그러면서 점심시간 끝난 지가 언제인데 또? 벌써? 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니 하고 참는다. 


그러다가 잠시 후 모두 흩어진다. 그중에 직원 한 명이 내 방 문 앞에 멈춰 서더니, 부장님~하고 부른다. PPT 파일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부터 돌려 마지막 순간에 방 문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직원이 배시시 웃으며 '저 메이크업받고 왔어요~'하고 서있다.


어...... 그 메이크업이다. 며칠 전, 남편과 TV를 보다가 여자 아이돌들의 눈 밑을 발~갛게 칠해 놓았길래, 왜 저렇게 술 취한 것처럼 화장을 해 놓았을까? 볼터치가 너무 과한가, 볼터치를 왜 치크가 아니라 저렇게 넓게 했어, 빨간색 다크서클을 만들어 놓았네, 하고 지나쳤던 그 화장. 그날 이후에도 몇 번 그런 류의 화면과 사진을 보면서 요즘 유행이긴 하구나 싶은데, 또 저게 왜 유행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우리 직원의 얼굴에 빨간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와 앉아있다.  


배시시 웃으며 자랑스럽게 서 있는 직원에게 화장이 왜 그래? 하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어.... 그게 요즘 유행인가 보더라' 하고 얘기했다. 거짓말로라도 '예쁘다'라고 해 주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나 스스로 채찍질을 한다. 그냥 예쁘다고 해 주면 어떠냐고, 저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네, 점심시간에 메이크업받았는데 너무 맘에 들어서 화장품도 사 왔어요!'. '잘했네. 오늘 저녁 약속 만들어야겠다!' 내 선에서는 최선을 다 해서 호응을 해 주었더니, '맞아요. 약속 없는데 약속 만들려고요.'하고 직원은 행복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멍 해졌다. 나는 왜 예쁘다는 말을 못 해줬을까. 그러면서 아, 진짜 요즘 젊은 친구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왜 저런 화장을 예쁘다고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집중이 깨진 김에 잠깐 일어나 모두 떠난 탕비실에 가서 텀블러에 따뜻한 물을 받아와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스테레칭을 길게 하다가 문득 한 장면이 생각났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그렇다. 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고 말이 많았던 X 세대다. 물론 나는 그 당시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지 못해서 X 세대들이 하는 아이템들을 다 따라 할 수는 없었고, 아직 나를 깨고 나오기 전의 나였기 때문에 굉장히 소심한 숨겨진 X세대였지만... 


바야흐로 90년대 중반, 이영애를 필두로 예쁜 연예인들이 모두 흑갈색, 혹은 은갈치색 립스틱을 바르고 나오기 시작했고, 나도 그 패션에 편승해 그런 팥죽색 립스틱을 두어 개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죽은 사람 같이 검은 입술을 바르냐고, 지우라고 나무라셨고, 예쁘기만 한데 왜 그러냐고 난 대들었다. 진짜였다. 그때는 그게 참 예뻤었다. 지금 보면 두껍고 크게 그린 립 라인에 그것보다 엷은 색이지만 검은색에 가까운 립스틱을 바른 내 얼굴에 헛웃음이 나지만... 


반면에 이 언니들은 그때도 저런 화장에 참 예뻤었구나... 싶다. 



각 세대는 그 세대에 맞는 눈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때 나는 검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나의 그 얼굴이 참 맘에 들었고, 지금 그들은 눈 밑이 빨간 그 얼굴이 맘에 드는 것이지... 


또 한 번 생각한다. 수 천년 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씀을 하셨듯이 세대 간 이해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가 보다. 나도 요즘 애들이었고, 요즘도 요즘 애들은 있다. 지금의 요즘 애들도 그다음의 요즘 애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지. 


아마 다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나는 예쁘다는 말은 해 줄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더 환하게 웃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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