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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신이 Mar 24. 2019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서

매화꽃 필 무렵

큰 이모의 1주기였다. 아들인 사촌오빠와 가까이 사는 엄마, 이모, 이모부, 외숙모가 모인 자리, 나와 남편도 참석했다. 음식을 차려놓고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음식 솜씨가 좋고 동네에서 인망이 두터웠던 큰 이모는 늘 몸이 아팠다. 서양 약물 알레르기 혹은 공포증이 있어 몸이 아파도 한의원 이외엔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이모는 70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가셨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으니 병명은 알 수 없지만 기관지와 폐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모는 말년에 막내 동생인 엄마의 집 근처로 이사 오셨다. 수년간 가까이서 자주 보며 살았다. 엄마와 나이차가 10살 이상 나는 큰 이모는 머리가 하얗게 다 샌 호호 할머니였다. 찾아가면 이모는 늘 달달한 먹을 걸 주었고, 나의 출산을 그렇게 기뻐하셨었다.


이모의 무덤에서 차를 타고 조금 올라가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무덤이 있다.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기억 속에 생생한 외할머니. 손주들에게 ‘쌍육’이라는 옛날 궁녀들의 놀이를 가르쳐주셨던 외할머니는 단정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외할머니의 자녀들은 모두 머리 희끗한 노인이 되었다. 7명의 자녀 중 몇몇은 벌써 이 세상에 없다.


“이 중에 벌써 몇이 없는 거야?”


누군가의 말에 묘비를 들여다보니 자녀들과 며느리, 사위들의 이름이 쭉 쓰여있다. 세어보니 아들 하나, 딸 둘, 사위 하나가 벌써 세상을 떴다.


“다음 차례는 누구야?”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는 거 알지?”

“하하하하”


죽음에 대한 농담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는 자리. 남들이 보기엔 노인 그룹이 분명한 어른들 사이에 선 나는 쓸쓸해졌다. 무덤 앞에 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동안 참 많이 나이 드셨다. 엄마 아빠를 포함해 근처에 살면서 자주 보고 의지하며 살던 이모 이모부 외삼촌 외숙모. 이들은 별 일이 없는 한 나보다 일찍 세상을 뜰 것이다. 이분들의 죽음을 하나씩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는 기분이 된다.


오늘 1주기 모임에 동행한 남편 역시 우울한 모양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입을 연다.


“아까 좀 그렇더라.”

“뭐가?”

“사람은 금방 가는데 뭘 아등바등 사나 싶다.”

“그래. 우리도 길어야 40년이야.”

“얼마 안 남았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다. 그저 행복하게, 서로 아끼면서,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겠지.


무덤 앞에 놓였던 음식들은 대부분 우리 집으로 왔다. 갖가지 과일, 떡, 전까지... 아이 있는 집에서 먹을 걸 가져가야 한다는 둘째 이모의 결정에 따라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그 날이 가기 전에 과일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조카와 댕이가 다 먹어버렸다.


죽은 조상들에게 올렸던 음식인데, 아이들이 모두 먹는구나.


산 자들은 죽은 자들 위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남긴 유산과 유전자, 추억과 먹을 것들을 안고 말이다.


댕이와 조카들이 마구 방방 뛰며 놀고 있다. 괴리감. 죽은 이와 죽음이 가까운 이들 사이에 있다가 생명력이 차고 넘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댕이가 꺄아~ 뜻 없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다 나의 다리에 매달린다. 요즘 부쩍 장난을 친다.


어른들이 다 가시면, 난 그저 이 아이와 또 이 아이의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늙어가겠구나. 지금 내가 살아갈 이유는 딸아이뿐이다. 아이 때문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힘을 내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는 거겠지 싶다. 그래서 다들 아이들을 낳는가 보다.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인가 보다. 지금 이 순간 댕이가 내 곁에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날 지방 출장을 간 남편이 매화 사진을 보내왔다. 너무나 화사하게 만개한 매화를 보니 마음이 설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사람은 죽고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그것이 자연과 세상 만물의 이치일 터. 오늘 나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어디쯤에서 다시금 온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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