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 필요할 때도 있다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23개월 딸아이를 들어 현관에 내려놓았다.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 원하는 대로 놀이터에서 놀았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자고 해 간신히 데려왔건만 또 시작이다. 난 오늘 할 만큼 했어. 현관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아이를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들어와 버렸다.
아무래도 이건 떼 같다. 오늘은 한동안 놀렸는데 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놀고자 하는 아이의 욕구를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댕이는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만 가면 안 타려고 발버둥을 친다. 한두 번도 아니고 경비 아저씨 보기도 민망하다. 아이를 억지로 엘리베이터에 태우자니 등줄기에서 땀이 삐질 흐른다.
얼마 전 읽은 육아책에는 아이를 훈육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몇 가지 기준을 통해 판단해 보라고 했다. 위험한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지, 단체 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인지.
오늘 댕이는 ‘밖에서 놀면서 집에 안 들어오려 했다’이 행동은 훈육해야 할 행동인가 아닌가.
먼저 위험한가. 기본적으로 위험하진 않지만 때때로 위험하다. 댕이는 놀이터에서 놀뿐 아니라 놀이터 밖에서도 뛰어다니려고 한다. 오토바이나 차가 가끔씩 다니는 공간이니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만 놀게 한다면 위험하다고 하긴 어려운 것 같기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가. 들어가서 저녁밥을 해야 하는 엄마의 스케줄을 흔들어놓았으니 엄마인 나한테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노는 것이 엄마 외에 타인에게 방해되는 활동이라고 보긴 어렵다.
단체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일까.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가 선생님이 들어가자고 했을 때 들어가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여태껏 댕이는 어린이집에선 아주 협조적인 모범생이다. 엄마와 아빠에게만 비협조적인 것이다.
아~ 헷갈린다. 하지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1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가 놀이터로 도망가고,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게. 이대로면 매일같이 아이를 놀리고도 아이가 늘 불만족스러워하는 상황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아이도 언제나 마음껏 놀 수 있는 걸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 결심했어! 오늘은 훈육 모드다.
우는 아이를 애써 달래려 하지 않고 그냥 두니, 악을 쓰며 운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 한 동안 뒀다가 댕이한테 가서 “엄마한테 올까?” 하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한테 온다. 책에서 배운 ‘진정 훈육’의 방법대로 해보는 거다. 아이가 말이 통하지 않고 울기부터 하는 상황, 즉 떼를 쓸 때는 아이가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진정시키는 훈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품으로 온 아이를 안고 “댕이야 계속 밖에서 놀 수는 없잖아.” 하니 발을 구르며 다시 자지러지게 운다. “댕이 계속 울 거야? 그럼 엄마 간다.” 하고 다시 기다림 모드다. 그렇게 우는 아이에게 갔다가 부엌으로 갔다가 하기를 20분, 결국 댕이는 내 품에 안겨 TV 앞으로 가자고 했다. 이제 놀이터는 포기하고 영상 보기를 택한 거다.
진정 훈육이 성공한 건가 싶지만, 눈이 퉁퉁 부어 TV에 시선 고정 중인 댕이를 보니 안쓰럽다.
댕이는 유난히 몸짓이 드세다. 안으면 몸을 마구 움직여 빠져나오려고 하고, 어디서든 뛰어다녀서 난 아이를 잡으려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카시트에 앉히자면 몇 분은 씨름해야 하고 결국 핸드폰을 손에 쥐어줘야 순순해진다. 치카를 시키자면 좀처럼 입을 열어주지 않고 엎드려버린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요즘엔 하원길 놀이터가 문제다. 며칠 전에도 하원길에 놀이터를 그냥 지나쳤다가 아이가 집 현관에서 드러누웠고, 이번이 세 번째쯤 된다. 이때마다 헷갈린다. 지금 이 상황이 아이의 정당한 의사 표현인지, 아님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것인지. 들어줘야 하는지 아님 훈육해야 하는 것인지.
그동안은 되도록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한동안 댕이가 밤에 자다가 깨서 자지러지게 울었던 것이 자기 전에 아이를 충분히 놀리지 않고 욕구불만의 상태로 억지로 재웠을 때 일어난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댕이를 억지로 재우지 않고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자게 하니 댕이가 밤에 자다 깨서 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이 일로 우리 부부 사이에서 댕이는 안 놀면 병나는 아이니 충분히 놀리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요구는 점점 늘어났다.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걸로는 성이 안 차고, 영상을 틀어줄 때도 처음엔 뭐든 틀어도 좋아하더니 이젠 이거 틀어주면 맘에 안 든다고 다른 거 틀어달라고 한다. 오래 봤으니 그만 보자고 하면 바로 왕 하고 울어버린다. 아이의 욕구를 되도록 채워주려고 했는데, 꽉 채우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차피 중간에 끊어야 한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참기도 하고, 멈추기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연습이 필요하지 싶다.
매일 매 육아의 순간이 긴장감이 넘친다. 오늘은 치카를 순순히 해줄 것인가. 수개월간 치카를 유난히도 싫어하는 아이에게 치카 시키는 일이 고역이었는데, 요즘은 치카 때문에 씨름하는 시간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칫솔을 물려놓고 혼자 하도록 하다가 마무리를 해주겠다고 하면 한 번은 입을 안 보여주며 거부했다가 다음번에는 입을 벌려 준다.
이런 걸 보면 우리 딸에겐 최대한 자기가 스스로 하도록 하면서 성취감을 주는 방식이 통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있다. 요즘엔 밤에 우유 없이도 잘 자고, 불 끄고 자자고 하면 순순히 응해 주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매번 아이와 씨름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좋아진 면도 있는 것 같다.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된다. 아이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도록 노력하되, 안 될 때는 안 된다고 훈육할 줄도 아는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해본다. 아마 모든 엄마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부쩍 친구들이 좋고 게임의 세계에 눈을 떠버린 초1 아들과 매일같이 씨름하는 동생을 봐도 그렇고, 입이 짧은 6살 아이와 한 시간씩 식탁에서 협상을 하고 있는 내 절친을 봐도 그렇다. 아이의 자기주장이 점점 세지면서 엄마와의 갈등도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일 거다.
그나저나 오늘 하원길은 괜찮을까. 놀이터에서 놀리는 게 좋을까 건너뛰는 게 좋을까.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앞서 심호흡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머니에 챙겨본다. 오늘 하원길은 무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