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신이 Apr 17. 2019

영화 <생일>을 봤습니다

얼마 전, 영화 <생일>을 봤습니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또 개봉됐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볼 계획은 없었습니다. 사실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다시 그 거대한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라디오에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전도연 님과 이종언 감독이 출연한 걸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전도연 배우는 "<밀양>에 이어 또다시 아이 잃은 엄마 역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고 하더군요.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그녀는 일이 바빠 집에 늦게 들어오면 아이 옆에 누워 "미안해"라고 하는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딸아이 예솔의 옆에 누워 영화 속 엄마는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정말 많은 것이 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생일> 스틸컷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마주하는 나의 감정도 그랬습니다.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 방송에서 이종언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상처 받은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고 말합니다.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마음뿐 아니라 이 사고를 기억하고 슬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나도 다시 한번 이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일에 동참하고, 또 나 자신도 위로받고 싶어 졌습니다.


영화를 봤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근 몇 년 내가 이렇게 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습니다. 스텝 스크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바탕 울고 나자 오히려 조금 마음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나만의 추모식을 치른 기분이었습니다.


2014년 그날, 난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뉴스로 배가 뒤집어진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 팀의 몇몇 피디는 진도 팽목항으로 서둘러 내려갔고, 나머지는 안산 단원구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를 취재해 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난 생존자와 유가족 분들 중 몇 분과 통화를 하기도 했고, 광화문에 나가 유가족 분들을 뵙기도 했습니다. 그 해 말까지 세월호 참사 관련 방송만 네 번을 했습니다. 그 해가 끝나고 나서, 난 세월호로부터 도망쳤습니다. 광화문에 가는 것도, 유가족분들을 만나는 것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끔씩 뉴스를 통해서만 세월호 참사를 접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돌덩이를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슬픔에서 멀어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난 '세월호'에서 벗어나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가끔씩 희생된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생각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일을 겪고 여전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을 엄마 아빠들의 심정을 헤아릴 재주는 없었습니다. 나의 평범하고 행복하기도 한 일상의 그늘에는 그들이 있었습니다.


2년 전, 가까운 언니가 생을 마감했을 때 난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난 참 씩씩하게 다른 지인들을 만나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러다 수개월이 흘러 문득 언니가 생각나서 버스 정류장에서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제야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도 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습니다. 취재를 할 때도, 유가족 어머니와 통화를 했을 때도, 그 후 가끔씩 뉴스로 사건을 접했을 때도.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지만, 나에게 추모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생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수호의 생일잔치에 나도 초대된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도 상처 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조심스레 말을 건네 봅니다.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유가족분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냐고,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