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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이쌤 Jul 09. 2020

미술로 먹고 살기 어렵지만.

나를 위한 그림


"괜찮아? 잘 지내지?"


코로나 19로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그냥 지내지 뭐...."


'괜찮지 않아. 힘들어.'

'잘 지내서 잘 지내는 게 아니지. 그냥 지내 지는 거지. 그런데 그게 잘 지내는 거잖아.'


코로나 19 시대애 살고 있는 요즘. 안부인사는 솔직히 대답하기 힘들 때도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원을 반 강제 휴원 하기까지.

요즘 다 이런데, 잘 지낼 리가 있겠느냔 말이다.


학원이 쉬면 수입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무언가에 쫓기듯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살았던 ‘여유’ 없던 시간들뿐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시간의 여유'는 불안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지금의 현실을 버티려면 집중해야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미술을 가르쳐 왔는데, 정작 나는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끌리는 그림이 있었는데 바로 꽃 그림이었다.


나처럼 집중해야 할 '무언가'가 필요한 사람이 많았는지 때마침 네이버 밴드에서 '송은영 작가와 함께하는 보태니컬 아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아이들이 잠든 조용한 시간, 그날의 미션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그 순간 현재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각사각, 스윽스윽~'   


식물과 최대한 비슷한 색과 모양으로 그려 내야 한다. 빠짐없이 관찰하고 눈과 손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잎맥의 그물 모양, 꽃잎의 결 하나하나를 놓쳐서는 안 될 것만 같아 계속 관찰하게 되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꽃들의 섬세함에 감탄하고 빽빽하게 표현하려고 애써본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색연필이 지나간 자리는 예쁜 색으로 채워져 나갔다.

색과 색이 서로 만나 쌓이고 꽃 한 송이가 생겨난다.


그렇게 나는. 오롯이 나만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찾았다.

사각사각 색연필 소리를 들으며 불안했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 둘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이 그림을 통해 색으로, 꽃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에서 좌절보다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휴원이 아닌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미술을 하면서 내가 원했던 삶은 뭐였을까?

 

할 줄 아는 게 미술밖에 없어서? 아니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미술이어서 선택했던 전공은 시작과 다르게 어느 순간 입시를 위한 그림이 되고, 기술이 되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었다.


지금의 휴식(휴원)이 그동안 나의 미술과 연결되었던 모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입시가 아닌, 내가 원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

지금까지의 나의 미술인생은 무엇을 위한 삶이었을까?

언젠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 왔지만 영어영문학과 전공자 모두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술대학을 가기 위해 그렸던 노력의 시간만큼의 기술은 갖고 있음에 분명했다.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요즘, 불안감이 커질수록 내 마음의 불안도 그림에 전해진다.

골목길의 선하나를 그리는데도 갈팡질팡, 어디로 그어야 할지, 내가 지금 긋고 있는 선이 정확한지, 틀린 것은 아닌지 자꾸 확인하게 되고 멈칫하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선하나 그리는데도 실수할까 봐 두려웠다. 한 번에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고 최대한 실제와 비슷해야 하는 보태니컬 아트에 비하면 펜 드로잉의 풍경 그림은 너무나 허용적인 그림이었다.

삐뚤어진 선, 흔들리는 선, 실수가 실수처럼 보이지 않는 매력이 있는 그림이었다.     

오히려 보태니컬 아트를 그리면서 잠시 적응한 섬세한 눈과 손이 펜 드로잉에서는 장애가 될 정도였다.


펜 드로잉에서는 선을 그리더라도 흔들려야 더 멋스럽고, 여러 겹 겹쳐 그려야 좋고. 선의 강약을 살려 그려야 그림의 깊이가 표현되고 풍경의 몰입도가 생기게 된다.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천천히 똑바른 선을 그리려고 할 때보다 적당한 속도로 선을 쓱 그릴 때, 그 선이 비뚤어도 훨씬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나오게 된다.

더 파고들어 표현하려 했던 순간에서 멈추고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잠시 숨을 돌리며 여백을 남겨야 한다.

다 채우지 않고 생략하며 어떤 색으로 느낌을 남길지를 고민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와 펜 드로잉에서 '그림 그리는 게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24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 빽빽하게 일정을 짜고, 그 일을 하나하나 해 나가며  빈틈없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일상이 보태니컬 아트라면, 잠시 쉬어가고, 실수가 허용되고 그 실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펜 드로잉과 같았다.   


숨이 차는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것만 같을 때,

펜 드로잉처럼

모두 다 잘하려 하지 않고

어느 한 부분만 잡아주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느낌으로 다가가는 그림.

실수가 멋스럽고 매력까지 있다.

조금의 색감으로도 화사하고, 풍성해지는 그림을 그려보니 알겠다.     


우리의 삶도,

이런 펜 드로잉처럼 여백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아갈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을 해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나만의 스타일로,

여백을 남겨보자.

여백을 통한 상상과 성장으로

그렇게 작품이 완성되어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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