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트위터에 한 줄도 못 쓰는가
요즘 글쓰기 패턴을 보면 좀 웃기다.
몇천자짜리 글을 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트위터나 스레드처럼 한두 줄로 끝나는 글은 도무지 손이 안 간다. 굳이 안 해도 되니까 그런가? 하는 핑곗거리를 몇 개 떠올려 보다가,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이유가 대충 정리된다. 난 그냥 롱폼형 인간이다.
난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맥락이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배경 설명을 깔고, 문제를 정의하고, 사례를 붙이고, 마지막에 정리를 한다. 블로그 글이든, 기획 문서든, 누구랑 얘기를 하든 이 구조가 기본 골격처럼 깔려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트위터같은 숏폼 채널에 가면 좀 긴장된다. 한두 문장에 요약해서 던지려고 하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맥락을 싹 다 잘라내고 포인트만 남기면 너무 오해할 만하지 않을까?
자연스러워서 잘 몰랐는데, 글을 쓸 때 이런걸 신경쓰는 것 같다. 이 제목이 이 글의 톤과 잘 맞는지, 문단의 순서를 바꾸면 더 논리가 자연스러운지, 예시가 적절한지,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같은 것들이다. 물론 매번 멋있게 쓰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글이라는 감각이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완성도라는 기준이 있다.
내생각엔 숏폼은 기본값이 좀 다르다. 일단 쓰고 던진다는게 핵심이다. 생각의 조각이나 푸념, 스쳐 지나가는 인사이트들이 거의 무편집으로 올라간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몸으로는 잘 못 따라간다. 나이 들어가는것과 관련이 있나 싶다. 이 정도 퀄리티의 문장을 굳이 밖에 남겨야 하나? 나중에 내가 이걸 다시 봤을때 부끄럽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숏폼에 한 줄 쓰는 일이 예상보다 큰 노동이다. 차라리 그 에너지로 블로그 글 하나를 더 쓰는게 낫겠다는 쪽으로 기운다.
각 플랫폼마다 분위기나 기본 톤도 있는 것 같다. 트위터나 스레드 같은 채널의 기본 톤은 빨리, 짧게, 세게, 눈에 띄게, 자극적으로, 농담 섞어서 해야되는 것 같다. 논쟁거리나 밈이 되면 너무 좋고.. 근데 난 노잼 인간이다...ㅠ
내가 편한 언어는 이쪽이다. 맥락을 충분히 깔고, 이렇게도 볼 수 있고 / 저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 느리더라도 상대가 따라올 수 있게 정리하는 말. 그러다 보니 트위터 같은 곳에 글을 올리려고 하면 내 말이 아니라 플랫폼의 언어에 맞춰야 하는 느낌이 든다. 좀더 자극적으로, 단정적으로, 과장해서 말해야할 것 같다. 그 순간부터 재미가 없다. 내가 쓰고 싶은 말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좋아할 만한 말을 고민하는 느낌이 된다. 돈 많이 벌기는 그른 것 같다...
기획자로 일하다 보면 개발자랑 얘기하는 시간이 참 많은데 주로 기획의도가 어떤지, 개발자가 뭘 해야되는지에 대한 대화를 한다. 개발자가 먼저 나에게 찾아오면, 자기가 생각하는 기획의도가 이러이러한데, 자긴 이렇게 하고있고, 맞는지 의문이 들어서 찾아온거라는 말을 꺼낸다. 듣다보면 내 기획의도가 아닌데도 난 그냥 끝까지 듣다가,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좋은 생각인데요.. 원래는 이렇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어떤 개발자들은 '그냥 다음부터는 중간에 제 말 끊고 정리해주세요' 라고 얘기해주기도 한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긴 글의 장점은 나를 오해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지면이 충분하다는 거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경험이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지, 어디까지가 확신이고 어디까지가 고민인건지. 이런걸 풀어낼 공간이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 진지한 태도로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짧은 글은 한두 문장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그것만 캡쳐돼서 돌아다닐 수도 있고, 맥락 없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냥 내가 욕먹기 싫은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내 생각이 그렇게 납작하게 소비되는걸 원하지 않는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는 나를 설명할 때 '그래도 이 정도 맥락은 깔아두고 평가받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 같다. 회사 면접을 볼 때 받았던 질문 중에 '만약 퇴사한다면 어떤 이유로 퇴사하게 될것 같은가요?' 라는 주제가 있었고,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왜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태로 일하게 되는 환경이요' 라고 대답했었다. 조용히 시키는대로 일하면 편할텐데 제 무덤 판다는 말은 나를 표현하는 말인 것 같다.
이건 좀 과한것 같기도 한데.. 사람은 결국 보상이 느껴지는 행동만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긴 글은 쓰는 동안 보상이 있다. 내 생각이 정리되고, 문장을 다듬다 보면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다시 보인다. 그래서 발행한 다음에도 몇번씩이나 다시 읽어본다. 아마 내가 쓴 글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발행 후에는 그 글이 일종의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출판물이 아닌 이상 나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낼 수도 있다. 브런치가 아닌 개인 블로그에 쓰는 글의 거의 대부분은 서로이웃 공개용이지만.. 어쨌든 언젠가 누군가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짧은 글은 아직 나에게 그렇게 체감되는 보상이 없다. 내가 네임드이고 반응이 많다면 또 모르겠지만 경험이 없어서 아직 잘 모르겠다. 딱히 데이터도 없고, 이걸 올린다고 해서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도 잘 모르겠고, 차라리 그 시간에 긴 글을 쓰는 쪽이 효율이 더 높다고 느낀다. 난 너무 진지한 인간이다 ㅠ
뇌는 아주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 이건 굳이 안해도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손이 멀어진다.
내 사고 방식은 맥락이 길게 이어질 때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완성도에 대한 내 기준은 대충 던지는 말이랑은 잘 안맞는다. 짧은 글의 기본 톤과, 내가 쓰고 싶은 언어는 꽤 거리가 있다. 그리고 내 뇌는 긴 글에서 훨씬 더 확실한 보상을 느낀다.
그러니 나는 당분간 긴 글을 쓰는 채널에 더 애정을 쏟게 될 것이다. 물론, 언젠가 필요하다면 긴 글에서 잘라낸 문장들을 짧은 글로 옮겨 보는 실험은 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그냥 플랫폼에 맞추기 위한 애씀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이미 하고 있는 방식에서 파생된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면 충분한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이정도 결론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