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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선 Oct 13. 2024

당신이 매일 피곤한 이유

미래 모습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성 피로의 허바뻐씨

허바뻐씨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아침에 일어난다. 시계가 7시 반을 가리킨다. 분명 6시부터 몇 번에 걸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알람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부재중 알람만 잔뜩 보인다. 이미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지났다. 씻을 시간도 없다. 대충 양치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니 10분이 지나 7시 40분이다. 평소 같았으면 30분 걸리던 일을 10분 만에 끝냈다. 옷을 눈에 보이는 대로 대충 입고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뿔싸,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다시 집으로 가 스마트폰을 챙겨 나온다.   

  

졸린 몸을 이끌고 회사에 도착한다. 5분 지각이다. ‘아 놔’ 팀장이 뭐라고 한다. “왜 너는 매일 지각이냐!” 할 말이 없다. 어좁이가 되어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처리해야 할 이메일이 서른 개나 도착해있다. ‘밤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만 빼고 다들 잠을 안 자는 걸까?’ 오전 내내 메일을 처리한다. 팀장은 보고서를 오늘까지 올리라고 한다. 갈등이다. 메일을 먼저 처리할까? 아니면 팀장이 지시한 보고서를 먼저 쓸까? 보고서를 먼저 쓰기로 한다. 지각하여 아침에 혼났는데, 보고서까지 늦으면 더 혼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쓰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한 시간은 쉴 수 있으니까. 점심을 먹고 잠시 유튜브의 숏츠를 본다. 분명 아주 잠시 봤는데 점심시간이 끝났다.      


이제 밀린 메일에 대한 답변을 보낸다. 메일을 처리하니 이미 오후 5시다. 이제 옆 부서에서 요청한 일을 처리한다. 오늘까지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퇴근 시간인 6시까지 마칠 수 없을 것 같다. 야근해야 한다. 아내는 집에 빨리 와서 애 좀 보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옆 부서에서 요청한 일을 다 끝내니 7시다.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인제 그만 집에 가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8시다. 씻고 밥 먹고 애랑 놀아주니 10시다. 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이다. 넷플릭스를 열어 보고 싶던 드라마를 본다. 큰 재미는 없지만, 하루 중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12시가 되었으니 자려고 넷플릭스를 껐다. 점심에 보던 유튜브 동영상이 생각난다. 조금만 보고 자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밑에 숏츠에 눈길이 간다. 숏츠를 살짝 눌러본다. 별로다. 다음으로 넘긴다. 그리고 다음, 다음, 다음…. 헉 새벽 2시다. 자야 한다. 눈이 사르르 감기는 걸 보니 자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이건 데자뷰?

아침이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시계는 7시 반을 가리킨다. 분명 6시부터 몇 번에 걸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이상한 일이다. 알람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부재중 알람만 잔뜩 보인다. 

“이상하다. 데자뷰인가?” 분명 겪었던 일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있다. 헐레벌떡 씻고 옷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뿔싸,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다. 허바뻐씨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다. 아침부터 하루를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보내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바쁜 하루를 산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개인적인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바쁜 일상이 반복된다. 매일 피곤하고 졸려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자기계발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뭐 하나 배우려 해도 시간이 없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피곤한데 회사에 다니며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허바뻐씨의 오늘은 어제같은 오늘을 산다.   

한 번 생각해보자. 허바뻐씨는 정말 에너지와 시간이 없을까? 그렇다면 허바뻐씨의 미래는 어떠한 탈출구도 없는 걸까? 정말 그럴까? 필자도 위와 같은 삶을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매일 바쁘게 살았다. 하루에 낙이라곤 저녁 식사 후에 유튜브를 보며 낮에 쌓인 피로를 푸는 것이 전부였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업무를 일찍 끝내고 책 읽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중소기업에서 매일 바쁘게 사는 나에게 다른 생각,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사치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내 삶은 바뀔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부터 삶의 방향을 아주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드라마 보는 것을 멈추고 유튜브 동영상을 멀리하는 대신, 글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그렇게 아주 작은 변화들이 쌓이자 서서히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간 변화를 쌓으니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게 되었다. 책을 만들고, 독서를 하고, 강의하고, 예전의 나처럼 바쁘게 살던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다른 단체들과 협업을 한다. 이 모든 것이 회사에 다니면서도 가능하다.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내가 이제는 전보다 몇 배 더 많은 일을 하는 시간 부자가 되었다.     


함부로 써도 되는 시간은 없다

만약 저녁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라, 업무 시간이었다면 그리 헛되이 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일하는 시간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으면서, 저녁 이후 자신만의 시간이 되면, 낮에 바빴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시간을 함부로 보낸다. 낮 동안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저녁에는 좀 나태해도 된다고 여겼다. 이런 보상심리와 강박관념이 저녁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헛되이 보내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나태함이라는 보상을 선택하는 순간, 끊임없는 바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삶을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기에 더 이상의 노력은 할 수 없고, 미래는 예견된 것이고 내 인생에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목표는 오직 더 높은 직책 아니면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일하는 시간이 현재의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면, 일을 마치고 집에 온 후의 시간은 미래의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현재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는 지금 당장 급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보다 중요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에 꼭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건 현재의 만족은 가져올 수 있어도 미래의 변화는 가져오지 못한다. 휴식을 위한 시간이라고 각인된 저녁 시간과 세상에 홀로 깨어있는 것 같은 새벽 시간은 미래의 변화를 위해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미래 모습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나에게 질문하기

하루 버려지는 시간 파악하기

 - 하루에 동영상을 몇 시간 보는가?

 - 나는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는가?

 -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가?

 - 저녁에 불필요한 일을 하느라 늦게 자고 있는가? 이 일에 몇 시간을 허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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