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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30. 2024

평생 쓰일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을 세우고 싶어요.

마르지 않는 샘

나의 삶을 늘 고통스럽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빼앗긴다’라는 말.


유치원 때 무농장체험을 하러 가서 한 사람당 하나의 무를 뽑는 시간이 있었다. 저마다 무를 뽑고 있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5살짜리의 몸으로는 될법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 우리 다 같이 무를 뽑고 한 사람씩 주자 ”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우리는 무의 머리채를 다 같이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무가 숭덩숭덩 뽑혀 나왔고, 아이들은 뽑힌 무를 재빠르게 하나씩 들고 선생님께 달려가 포장을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맨 나중에 남았다. 혼자 무를 뽑고 있는데 너무 무거웠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조용히 무를 뽑는데 외롭고 무서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이 달려와 함께 무를 뽑아 주었고 우리는 차에 탑승해 유치원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태어났다. 가족들은 동생과 내 외모를 비교하며 나보고 못생겼다고 했다. 진짜 그런 줄 알았다. 지금도 모르겠다.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늘 학교 옆 제일 가까운 아파트에 우리 가족은 살았다. 그래서 엄마 친구 선생님들 딸들은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에 와서 엄마들의 퇴근을 기다렸다. 우리는 그때 1학년이었는데, 밥은 늘 내가 차렸다. 그게 너무 익숙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가장 모자란 애들을 내 짝지로 두었다. 아, 나는 잘생긴 애랑 짝지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이야.


내가 발리로 떠나면서 내게  ‘온전한 쉼을 주어야지, 그렇게 오롯한 나를 찾아야지’라는 마음을 깊이 새겼고, 돌아와서 들은 명상수업이 참 좋아 후기를 그렇게 적었다. 그리곤 그 요가원의 슬로건이 ‘온전한 쉼, 오롯한 나’가 되었다. 감사하고 영광스러웠기도 했지만, 나도 세상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싶었다. 나의 탐구와 단어를 집약하는 힘에 대한.

단어를 슬쩍 사용하는 요가선생님들이 이뿐만이 아니어서.

나는 그렇게 의도치 않게 나누게 된 경험으로부터 늘 힘이 들고 외롭고 무서웠다. 물론 새콤달콤을 나누어먹는 즐거움,  석양을 나누는 즐거움은 늘 컸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무서웠다. 또 나는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더뎌졌고, 분노만 커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은 삐집고 나왔다. 발리 리트릿,

발리에서 처음 요가, 서핑 캠프를 지타언니와 진행했을 때부터, 조금 더 자연에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동시에 발리에 뒤섞인 다양한 문화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국 하게 되었다. 하면서 또 드는 생각, ‘ 또 따라 하겠지, ’ 그러면서 또 동시에 드는 생각. ‘ 아 이제는 지쳤다. 따라 하든 말든, 더 잘하든 말든, 이건 내가 진짜 하고 싶어.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색이 분명히 있어’


그렇게 진행하게 되었고, 발리 리트릿 신청서 안에 신청계기를 기입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날 도착한 신청서 안에는 이런 말이 담겨있었다. “ 평생 쓰일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을 세우고 싶어요. ”

그럼 나는 발리에서 마르지 않는 샘을 세웠던가? 정말. 정말이다.

발리를 떠나던 마음도 어떤 나의 샘물이지 않았던가? 정말, 정말이다.

리트릿의 그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꿈꾸던 그 마음도 샘물 아니던가? 정말이다.

숨과 마음에 대한 단어가 수련만 하면 몽글몽글 감각되고 피어 나오던 그것 역시 샘물 아니던가? 늘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기회가 있다는 사실도 나만의 샘물 아닌가, 동생이 더 이쁘다고 해도 그 말 그대로 온전히 믿지 않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늘 가꾸고 예뻐해 주던 그 마음, 함께 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그 마음, 끊임없이 샘솟는 나만의 샘물 아니던가.


그 문장 하나에 순식간에 나의 근원까지 타고 올라가 나의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해 버렸다. 쓰면 쓸수록, 파면 팔수록 퐁퐁퐁 샘솟는 나의 마르지 않는 샘 말이다.

요가에서는 한 사람의 정기는 정해져 있어서 아끼고 조절해서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마르지 않는 나의 샘물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기운이 아니라 나의 몸과 삶이 만나 끊임없이 나오는 정신적이 것의 일부 같았다.  불완전하고 아픈 몸도 삶의 흐름과 맞닿고 함께 흐르면 거기서 또 나오는 이야기들, 슬프면서 아름다운 삶, 두려움을 결국 인정했을 때 만나는 지혜로움, 힘을 빼고 세포 하나하나 지금을 느꼈을 때, 매 지금마다 떠오르는 단어들, 한글 안의 감각, 영어 안의 감각, 장소와 장소마다 불러일으키는 기분, 저마다 가진 이야기들, 그리고 그걸 보는 나. 그 자리에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이 있다. 또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향으로 달리 흐르는 샘물이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리고 내가 대가를 바랄 만큼 많이 나누어진 것들은 또 다른 형식으로 내게 온 다는 것을 알며, 사실 그것을 발견하고 경험한 것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삶이 주는 대가이다.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나의 고유한 경험, 그 순간의 공기, 깊은 마음 열림, 그 경험이 매번 삶으로 전달되어 피어나는 여유, 힘들다 여겨지는 경험조차 내가 한번 숨을 고르고 소화해 영양분이 되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들, 연결될 수 있는 마음. 느리더라도 나는 걸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버퍼링이 걸리더라도 나는 걸림을 숨기지 않는다.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끝까지 살펴본다. 숨 쉰다. 때로는 몸이 아프면 모든 걸 멈춘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게으름과 망설임도 부리다가 이내 곧 이불을 걷고 나오는 나를 믿는다. 그러니 또 얼마든 이불속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내게 더 많은 햇빛과 바람, 내가 좋아하는 고요한 공간에서의 단출한 식사, 산책, 찬바람만이 주는 기쁨까지 모두 더 많이 선물해주고 싶다. 경이로움 앞에서 연결되는 경이로운 우리들도 생각났고 경이로움은 실은 상실도 포함한다는 말도 적어본다. 썰물처럼. 그리고 그러다 이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것, 그저 흘러가는 것을 잡는 말 뿐이라는 것, 정말로 나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는 것. 그저 해보고 살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평생 쓰일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을 세우고 싶어요”라는 문장을 써주신 분은 일정 상 리트릿에 참가하시지는 못했지만, 내게 정말 큰 울림을 주셨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문장을 내가 더 나눌 수 있도록 선물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허락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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