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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Feb 13. 2023

운이 좋은 사람 (feat. 신경증 증세)

마치 코로나 겪고 나서 기력이 약해졌던 것처럼 최근의 내 건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입맛이 없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느꼈다. 분명 전셋집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걸을 알고 있어서 과민성 위장 장애인 가보다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주 월요일에 잠시 강의를 하고, 치과 치료를 오랜만에 받고 돌아오는 길에 사단이 났다. 계속해서 토할 것 같은 느낌과 식은땀이 돌아오는 열차 내내 지속되는 것이다. 집에 오기 한 4 정거장 전쯤 나는 지하철에서 뛰쳐 내렸다. 지하철에서도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었기에 다른 교통수단을 타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운 겨울바람이지만 밖으로 나오니 좀 살 것 같아 한참을 걷다가 공유 자전거를 빌렸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자전거를 타려니 너무 춥고 힘들어 다시 내려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보통은 집에 와서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세상천지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는데, 이 날은 쉽게 통증이 나아지질 않았다. 밤새 뒤척이고, 계속해서 토할 것 같고 위가 조여왔다. 겨우 겨우 힘을 내 다음날 오후에 병원을 갔다. 의사는 주말에 먹은 굴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로 바이러스로 생각하기엔 딱 증상이 들어맞진 않았다. 약과 흰 죽으로 속을 달래니 위는 조금 불편한 상태라고 느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러다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는데, 이 역시 코로나 때 겪었던 증상과 견줄 정도였다. 대체 왜 아플까? 하고 고민을 해봐도 스트레스로 이 정도로 아프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자다가 눈을 뜨면 심장이 쿵쿵쿵하고 빨리 뛰었다.


며칠 조용하다 싶었는데 어김없이 전셋집 주인은 내 돈을 가지고 힘자랑을 또 시작한다. 전해 들은 말로는 밤늦게 보내는 문자 폭탄은 자기가 괴롭기 때문에 너도 괴로워 보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 문자들은 대부분 교묘하게 법적 용어를 섞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려고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맞대응을 해서 나도 똑같이 앞으로 어떻게 해줄 것인지를 보내고 싶지만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으로 내가 나를 말린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게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그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상상해 본다. 너무 괴롭다. 주식과 코인으로 많은 돈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이 갑자기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자세한 이야기를 쓰지 않지만 이 문제는 곧 끝나게 될 것이다. 돈을 깔끔하게 받아내거나 법정까지 가게 되거나.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걸까? 이 모든 게 종료되어야만 해결되는 걸까?


'혹시 신경쇠약..? 그걸 신경증이라고 하던가?'

어디서 들어 보았던 거 같은데 싶은 그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검색을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증은 크게 네 가지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략)

1. 불안
스트레스나 심리적 갈등에서부터 비롯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

2. 수면장애
수면장애는 잠이 드는 것이 어렵거나 자는 동안 자주 깨고 다시 잠드는 것도 어려우며, 기상 후에도 피로감이 누적된다.

3. 긴장성 두통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머리와 어깨 근육의 긴장이 원인이 되는 두통으로, 지속적인 압박감과 띠를 두른 것 같은 감각을 동반한 둔한 통증이 양측에 나타나기도 한다.

4. 위장장애
정밀 검사를 해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심인성 위장장애'라고도 하나 정확한 진단명이 아니며,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증에서 기인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소화불량, 구역감, 식욕부진, 설사, 변비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증상을 보는 즉시, 이거 지금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파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를 아프게 하겠다던 못된 심보가 달성된 것이다.


약 오르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나는 이번 일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온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그럼에도 극복하고 이겨낸 과정으로서 다른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은 힘든 일을  번도 겪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누군가는 처음부터 엄청난 행운을 맞기도 하겠지만, 평범한 정도의 운은 평범한 정도로 시작과 끝이 마무리되는 것이고,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은 다소 기복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다.


이 참에 오랜만에 법륜스님의 강의 하나를 들었다. 듣고 나니 더 마음이 많이 차분해진다. 한국 사람들은 소송이 걸리면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거기서 조급함과 강박이 오는 것이라고.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그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맞서서 싸우기보다는 크게 키우기 싫다는 마음에 화를 피해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면 차라리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나을 것이다. 사실 모든 건 다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업보를 쌓지 않으려고 맞대응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법적인 장치도 다 마련되어 있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그 본성으로 인해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과 상황에 내가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던 것이다.


준비가 딱 하나 안된 것은 내 마음였던 것 같다.


https://youtube.com/shorts/0BbFh3LWOpM?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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