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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Feb 27. 2023

전세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았다. (1)

지난주 드디어 전세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았다!


이제는 전세 보증금을 제 때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 얼마 만의 평온한 주말인지 모른다. 이 보증금 문제는 1년이 넘게 끌어 온 일이라서 사실 전액을 받은 날조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워낙 그동안 시달림이 컸기 때문에 돈을 주고도 또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이 문제가 끝이 났다는 걸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도 많이 해보고, 변호사 상담도 받았는데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고통을 받고 있을 많은 분들을 위해 그동안의 일을 공익적 목적으로 자세히 한번 써보려고 한다.



1.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왔던 시기는 임대인이 우위에 있던 시기였다. 방금 보고 온 집이 몇 시간 뒤면 나가곤 했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며칠씩 고민하고, 더 알아보고 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지역에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집만 매물로 나와 있었고, 부동산 소개로 내가 알아보던 지역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을 가보게 되었다. 이 집을 처음에 들어갔을 때 어린아이가 있던 집이라서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느낌이 참 좋았다. 신혼부부가 약 2년 전 이 집에 들어올 때 간단히 수리를 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기존 시세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이 집을 매매할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어 방을 쓱 둘러보곤 바로 계약하겠노라 하였다.


이사 당일 작은 방의 벽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전 세입자가 그 방을 드레스 룸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방 안에는 빈 공간이 별로 없었다. 세 벽면 중에 화장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바닥부터 시커먼 곰팡이가 있었다. 아파트에 이게 무슨 일인가? 장판을 들춰보니 축축했다. 뭔가 누수가 있는 집이었던 것이다. 이미 전 세입자는 이사를 막 마치고, 나의 짐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방에는 짐을 둘 수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마루와 베란다에 나의 짐들은 잔뜩 쌓아둔 채로 이사가 끝이 났다. 


이사할 때부터 전세보증보험을 꼭 들어 놓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때부터 나는 심상치 않는 기운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네이버를 통해 비대면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금 반환보증'을 가입했다. 

 

https://fin.land.naver.com/guarantee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가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간편하고, 혹여 우리 집은 역전세가 날 일은 없다고 믿더라도 못된 주인은 역전세랑 상관없이 자기 임의대로 내 전세금으로 협박을 일삼으니 가입이 되는 조건이라면 꼭 하길 바란다. (비대면으로 하면 할인과 포인트 적립도 있다!)



2. 방이 문제가 있어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나는 집구석구석을 전부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리고 임차인에게 곧바로 방의 누수와 곰팡이의 존재를 알렸다. 나는 업체를 불러서 정식으로 해결해 달라고 했다. 임차인은 이전 세입자가 그 방에 환기를 하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를 싸게 했으며, 방에 건조기를 썼기 때문에 곰팡이가 핀 것이라고 했다. 아무런 미안한 마음의 표현도 없었다. 화장실 세면대와 맞붙어 있는 벽변이 가장 물 자국이 뚜렷했기 때문에 무엇인가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하자,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태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표현인데 '물은 참 미묘하여..'로 시작하는 뜬 구름 잡는 소리를 문자로 보내왔다.


결국 그 주 주말에 집주인이 곰팡이를 제거해 준다고 하였다. 집주인은 몇 가지 청소 도구를 가지고 왔고, 화장실에 물을 받아와 락스를 섞어 닦기 시작했다. 나중에 유한락스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사실인데 락스가 흡수되어 버리는 콘크리트(시멘트) 에는 절대로 뿌려서는 안 된다. 락스 자체는 원래 무색무취이나 곰팡이 등과 만나 락스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인데, 매끈한 표면이라면 상관없지만 완전히 곰팡이를 제거할 수 없는 시멘트 벽과 바닥은 시도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환기를 해도 근본적으로 물이 새는 것을 고치지 않고, 햇빛이 직접적으로 드는 방향도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그 냄새가 사라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물건들을 두었는데 머리도 띵하고, 물건에 냄새가 베이는 게 느껴져서 그 방을 쓰지 않기로 했다. 


방마다 정말 오랜 형광등이 있었다. 혹시나 등을 교체해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등을 교체하는데 3개는 수리해 줄 테니, 1개는 나에게 부담을 하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불이 들어오는 상황인데 LED로 교체하는 것은 나의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마루에 있는 한 20년은 되어 보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루 등은 교체해주지 않았고, 고장 난 전구의 색도 제 각각으로 끼워주고 돌아갔다. (4개 중에 2개는 흰색, 2개는 노란 전구색였다 ㅎㅎ)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의 성향은 단 하나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방 하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내 힘으로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라 화도 많이 났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데 방에서 하지 못하니 마루에서 작업을 해야 하고, 집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입씨름을 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처음부터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온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불편함은 점차 자책으로 변해갔다. 


3. 이사를 결정하다.

재택근무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6개월 정도 만에 이사를 결정했다. 만기일은 1년 이상 남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부동산 복비 등이 추가로 들더라도 이사를 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가고 싶은 집을 찾아서 새로운 집을 빠르게 계약했고, 그 이사 날까지 이제 새로운 세입자만 찾아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우리가 계약한 금액보다 2천을 더 올려서 부동산에 올리라고 하였다. 게다가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 하고는 무슨 일인지 사이가 좋지 않아 거래하지 않겠다며 문자로 알려왔다.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된 이유와 그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을까?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조정 끝에 2천만 원에 대한 이자를 내면 원래 우리가 계약한 금액으로 올려도 된다고 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기다려 보시라'는 말과 함께. 


집을 굉장히 깨끗하게 치워놓고, 보러 오는 사람마다 궁금한 점을 다 알려주고, 빈방의 상태는 사전에 공유하여 집주인이 수리해 주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지만 언제 새로운 세입자가 올 지 기약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하루하루였다. 


지금 돌아보니 이 시기부터 조금씩 부동산에 큰 변화가 왔던 것 같다. 집 값이 눈에 띄게 확 내려가던 시기는 아니지만 점차 알게 모르게 매수인, 임차인들의 발길이 끊어지던 시기말이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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