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1.
하삼관 매혈기_헌혈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본인의 주특기 번호가 높을수록 조금은 군 생활이 편해진다는 것을. 일반 보병의 주특기 번호가 1111인데 나는 4111인 의무병이었다. 이것만 해도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신병 시절 사단의무대에 배치되었다가 신교대로 파견을 가는 행운이 겹쳐 편한 군 생활을 했다. 무더운 여름 신병들이 땡볕 아래서 훈련 받을 때 나는 나무그늘 아래서 여유롭게 대기 하고 있었고 추운 겨울에는 감기 환자들에게 수액을 놓아주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그 메인 업무 외 몇 개의 기타 업무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헌혈차가 오면 헌혈업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말이 지원이지 그냥 헌혈차에 앉아서 초코파이 먹고 기념품을 하나라도 더 챙겨서 선임자들에게 건네주고 많은 이들이 헌혈을 하게끔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렇게 생에 첫 헌혈은 군대에서 마지못해 시작되었다. 헌혈차는 1년에 두 번씩 왔다 덕분에 군 전역 까지 4번의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헌혈 할 일이 없었다. 헌혈은 술자리에서 나오는 ‘내가 군대에서 이런 일을 했어’ 정도의 안주거리였다.
서울로 올라와 C사로 이직한 후 이야기다. C사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다고 했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나에게 헌혈은 초코파이와 기념품을 챙기는 수준, 즉 매혈 이였기에 이 친구가 신기했다. 친구는 헌혈을 300번해서 헌혈 유공장을 받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나도 시간이 맞을 때 한두 번 헌혈을 했다.
한두 번 헌혈을 하다 보니 헌혈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헌혈 횟수가 쌓여갈수록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 같아 뿌듯했고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겠다 마음먹었지만 헌혈의 집이 생각보다 적어 방문하기 힘들었고 헌혈하는데 소비되는 시간과 헌혈 전 병원진료를 하면 안 되는 것들로 인해 정기적인 헌혈을 하지 못하고 겨우겨우 시간내어 헌혈하곤 했다.
19년 아기가 탄생했다. 100일 되는 날 헌혈의 집을 찾았다. 헌혈 할 때 마다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막상 신청하려니 두려워 신청하지 못했었는데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도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조혈모세포 기증을 신청했다. 신청하고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조혈모세포가 필요하다면 두렵지만 조혈모세포를 나눠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