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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Jun 03. 2024

저출산 정책을 보훈의 관점에서 보자

지난 칼럼 '딸 넷을 키우는 아빠가 첫 육아휴직 직접 써보니...'가 게재되고 가까운 지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자신들도 육아휴직을 길게 쓰지 못한 이유가 턱없이 낮은 육아휴직급여 때문이었다는 아빠들이 대부분이다. 주식투자나 부동산 임대를 겸하는 직장인들이 아니면 아빠의 육아휴직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이후 육아휴직 급여의 현실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일고 있어 반갑긴 하다. 다만, 정책으로 구현되고 현장에 반영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애국심과 자본주의는 저출산의 대책이 아니다


출산장려 정책을 보면 국가가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관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도 금방 알 수 있다. 첫째, 정부는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한다. 지역과 대한민국이 소멸 위기에 있으니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속된 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아이가 네 명 있는 나는 어디를 가나 '애국자' 소리를 듣는다. 그 때마다 나는 "나라가 아니라 아내를 사랑했습니다"라고 눙치고 넘어간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갖는단 말인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출산장려 캠페인은 산아제한 캠페인만큼이나 구시대적이다.


애국 캠페인 다음으로는 자본주의 캠페인이 있다. 아이를 하나 낳으면 얼마, 둘을 낳으면 얼마, 이런 식으로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 허경영이라는 대통령후보가 내걸었던 출산수당 3000만 원, 결혼수당 1억 원이라는 공약이 떠오른다. 그 때는 이런 황당한 공약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었지만, 이것이 현실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는데 돈이 드는 건 사실이니 일부 효과적일 수는 있겠다. 보통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 캠페인 수단으로 활용한다. 작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천 만원대 수준인데 최근에는 이 금액이 올라서 억 단위를 넘나들기도 한다.


자본주의 캠페인은 애국 캠페인보다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청년세대가 단번에 마련하기 어려운 규모의 돈이니, 새로운 투자나 내집마련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하며 출산의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며 아이를 낳는 부모는 또 몇이나 될까. 일시적인 혜택이 크다고 해서 출산을 결심하는 부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출산축하금은 '지원'정책일 뿐 '진흥'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실


◇ 저출산 정책은 보훈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출산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정부는 급기야 대통령실에 저출생수석비서관, 정부 조직에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전담 비서관을 두고 예산과 조직을 갖춘 부처를 신설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기존 부처로는 곤란하다고 해 경제기획원을 만들고 고도성장을 이끌었다"며 "저출생부를 설치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경제개발 방식을 저출산 정책에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한심함을 넘어 안타까움까지 느껴진다. 투입과 산출의 원리가 작동하는 경제 원리를 출산과 양육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가치를 갖는 정책에 적용하겠다는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시간만 보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원론적인 논의이지만, 저출산을 극복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국가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다. 앞으로 결혼할 청년세대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지만,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세대가 과연 행복해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다. 신생아 출산 가구를 지원하면 단기간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저출산 정책을 보훈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어떨까? 나라를 지키는데 헌신한 국가유공자에게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훈을 통해 그 공로를 인정하고 사회적 예우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하락 중이다. 이런 가운데 다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뜻밖의 애국'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사회적 존중을 함으로써 다음 세대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하는 공감 캠페인이 필요하다. 베이붐세대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아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다. 삶과 생활이 점차 나아지는 행복을 느끼게 되면서 이 행복을 자식 세대까지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고도성장기의 고도출산율을 만든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대책 마련을 원한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자녀를 많이 낳고 기르는 부모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행복의 크기가 앞으로의 출산율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을 예우하고 존중하고 대접해야 한다. 출산정책은 보훈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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