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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Oct 25. 2020

#1. 자각

으르릉 멍멍

요즘 들어 견딜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불안의 주기가 점점 짧아져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명상을 해보고 책도 읽어봤지만 효과가 없었는데,

다행히 한 심리학자의 책으로 정신을 바로잡았다.

"어떤 일에서 좌절감을 맛보았을 때는, 

본분을 잊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흉내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해 보아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내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함을

나는 외면해 왔었다.

'남의 돈을 잘 벌리게 하는 기술' 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걸 못 한다고 해서 내가 굶어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되돌아보니 내 일을 하겠다고 한 뒤, 3년간 했던 것들의 의미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내는 일이었던 듯하다.



내 인생에서의 패턴은, 처음 배운 것을 남들보다 비교적 빨리 익히고,

결말은 좋지 않은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내게 맞지 않는 것조차 너무 잘했다.



내가 진정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중학교 때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사주에 예체능이 있더라ㅠ)

그때부터 신경증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열등감에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신경증적인 노력이다. 내 경우에는 가족이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처음 시작한 공부로 중간고사때 반에서 2등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전교권에서 놀았고 1등도 해봤다.

그러나 별로 즐겁지 않았다. 문제가 안 풀리면 수학책을 집어던졌는걸?

1학년때 같은 반에 피아노 치는 애가 늘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신경증적인 노력을 너무 잘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은 목표가 뚜렷했으니

어떤 과를 갈 거냐고 선생님이 물어봤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학의 간판이면 족했다.

나는 거기 합격해서 가족에게 인정받으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는 털어버렸을 수능의 실패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은

내가 가족에게 나임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 수능이었고,

그걸 실패한 심리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단을 잃어버린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걸 자각하니 이제는 가족에게 사랑을 느낀다)



지금 하는 일도 그렇다.

좋은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 여태까지 왔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일은 막혔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새로 해보자고 한 일들은 거의 무산되었다.



돌파구를 찾으려고 

신용카드 한도 끝까지 땡겨서 잔고가 70 남은 상태에서

700만원을 교육비로 썼다.

분명 돌파구는 되었고, 성과도 얻었다.



교육에 투자하는 건 거의 옳아서 시간이 지나면 본전 이상 뽑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정말로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몇 년을 여기서 더 노력한다고 한들, 

내가 지금 돈 내고 배운 사람보다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분야라면?

나는 물고기인데 왜 자꾸 나무에 오르려는 느낌이 들까.



나는 신경증적인 노력조차 너무 잘했다.

나무를 그냥 원숭이만큼 타는 괴랄한 물고기였던 거지.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줄 몰랐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칠 때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이 일이 내게 정말로 잘 맞는 일이라면,

그걸 하고 있을 때는 내게 불안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끊임없는 불안이 계속되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경고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 것 같다.



네가 가려는 그 길이, 너한테 정말 맞는 건지 생각해보지 않을래?

이렇게 계속 내면의 소리가 물어 오는 듯하다.



나는 관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루틴업무는 더 싫어한다.

친한 형이 말한 것처럼, 나는 그냥 한번 나를 표현하고 만들어냈으면 됐지

그 이후의 일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을 하겠다고 한 뒤로, 거의 관리만 했다.

가장 성과가 좋았던 것은 그냥 한번 표현하고 끝냈을 때였는데 말이다.



자기 일을 하겠다고 한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로 알아냈던 것은, 내가 뭘 해야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뭘 싫어하는지였다.

돌고 돌아서 이 길을 처음 시작할 때 만난 책인

아티스트웨이로 돌아온 것은, 

모닝페이지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뭐긴 뭐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뭘 만들어내는 거라는 소리지.

새벽에 영감님이 오셔서 잠도 안 자고 글을 쓰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추상적인 것을 설명하려고 골몰하다가 지하철에서 퍼뜩 깨닫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나는 관리형 인간이 아니라 창조형 인간이고,

내게는 내 일을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벌어낼 창조성이 있다.

솔직히 불안하긴 하다. 그래도 이건 좀 자신감이 생기네.

불안이 덜어지는 것만으로도 다시 길을 찾아볼 가치는 충분하다.



아. 그래.

나는 예술가형 인간이었구나.



우리의 작품이 시장을 창출하지, 시장이 작품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줄리아 카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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