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서 플랫폼 라이팅 가이드를 기획하게 되었다면? 글에 브랜드 뿌리기
시작은 '우리앱 라이팅 가이드가 필요해요'가 아니었다
'홈메인에 있는 모든 카피를 라이팅 해주세요' 였다
패션앱 입사 첫날 부터 시작된 애증의 홈메인 카피라이팅. 홈메인 카피라이팅이 뭐였냐면 앱의 홈에 보이는 탑부터 바텀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카피를 라이팅 하는 일이었습니다. 패션, 뷰티, 리빙 등 부서별로 관리하는 구좌도 다르고, 작성된 기획전과 카피도 가지각색이니 그걸 하나의 톤으로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업무가 왜 저의 피땀눈물이 범벅된 일이었냐면, 매일 오전 10시 홈메인의 새로운 기획전이 고객에게 오픈되는데 그 전날 오후 시간 중에는 오픈될 리스트가 정리되어야 하고, 리스트를 전달받은 후부터 카피라이팅을 시작할 수가 있었어요. (또한 단 한번도 약속된 시간에 전체 리스트가 전달 된 적도 없었죠) 초안 카피들은 글을 다듬어 내보내는 카피 워싱의 수준은 아니었고, 목적도 톤도 천차만별이라 다시 써야 했습니다. 정해진 몇시간 안에 약 100여 개의 카피라이팅을 혼자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도전 100카피' 시간이 도래한 것이었죠. 생각 해보니 당시에 전사 앱푸시 카피 리스트도 받았었습니다.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1년여 시간을 거의 이 일에 매진했습니다. 일이 손에 익어서 중간중간 브랜디드 컨텐츠도 기획할 틈이 생기긴 했지만 이 고정 업무가 언제나 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매일 리셋되어서 다시 해야하고, 대체자가 없던 일. 시스템의 효율성과 정돈된 브랜드 가치 전달에 분명히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라이팅 가이드를 만들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무식하게 보냈던 그 시간 덕분에 라이팅 가이드는 생각보다 쉽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한 명의 사람이라면 1) 그 사람이 어떤 목소리로 2)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최신 패션의 기준이 되는 프리미엄 패션 앱의 이미지에 맞는 브랜드의 목소리는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선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유행어를 배제하는 내용도 추가했습니다. 입점 되어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와 고객 사이에서 상품과 브랜드를 더 쉽고 흥미롭게 소개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도 함께 작성됐습니다.
따라서 라이팅 가이드는 내외부적으로 브랜드의 언어를 정립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라이팅 가이드를 작업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브랜드에 대해 거시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플랫폼은 하나의 목적과 방식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죠. 고객에게 화보 컨텐츠로 말할 때도 있고, 이벤트 프로모션, 협업 콜라보, 또는 개별 브랜드와 상품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소통의 채널과 지면도 천차만별이에요. 좁은 관점으로 파악하고선 브랜드의 언어를 섣불리 제시한다면 다른 목적을 수용할 수 없는 언어가 되어버리고 일관된 톤의 정립은 물 건너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여 시간동안 전사의 모든 기획전을 확인하며 홈메인 카피라이팅을 했던 경험이 거시적 관점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사 카피라이팅을 하며 우리가 텍스트 작성 시 빠트린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읽는 대상인 '고객'에 대한 고려였고, 두 번째는 우리가 '모바일' 플랫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왜 자꾸 어려운 글, 모호한 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긴 글이 작성되는가를 생각했을 때 작업자들은 읽는 사람에 대해 잊고, 우리 스스로를 패션 매거진으로 인식하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내용을 브랜드 코어 보이스로 설정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안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습니다. 가이드를 제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사례는 기껏 힘들게 작업했는데 사용성이 떨어져 아무도 참고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사용하게 될 현업 담당자들의 현재의 문제와 고충에 대해서 충분히 들어보고 가이드 내에 추가해야 할 내용을 선별했습니다. 이건 또 다른 팁인데 가이드 작업에 참여했다는 기분을 상대가 느낄수 있도록 만들어야 추후에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갑자기 미팅을 진행하고 전사 현업 담당자들을 한 분 한 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이드 작업에 회의적인 분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어요. 왜냐면 어떤 분들은 지금처럼 카피라이터가 써주는 글이 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오히려 사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이드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도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함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고 모니터 앞에만 있었다면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 같아요. 플랫폼 카피라이터의 생존을 위해서는 손보다 발이 빨라야 하는 때가 있다고 믿습니다.
현업 담당자들이 요청한 부분은 무엇이었냐면 한정된 구좌에 맞게 빠르게 참고할 수 있는 카피였어요. 활용도가 높은 가이드를 만드는 방법은 내부에서 각각의 상황에 따른 히스토리와 사례를 충분히 추가하는 것입니다. 최종 가이드를 제작할 때 실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각 채널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인 적용사례를 담아서 설계했어요. 지금껏 작업했던 2만여 개의 '홈메인 카피'도 누구나 접근해서 검색할 수 있도록 오픈하였고, 같은 의미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정립해 둔 'W컨셉 통합 단어집'도 개설하였습니다.
가이드가 제공된 후 각 부서에서는 적극적으로 가이드를 활용하였고, 다양한 채널에서 일관된 브랜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여전히 앱 안에서, 앱푸시, 고객 메시지 상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 브랜드 언어를 보면 뿌듯하면서 고마울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협업 프로세스 효율화에도 효과적이었죠. 한 사람이 일일이 전사 카피를 검토하는 시간을 줄이고 모두가 가이드를 통해 작업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 번의 가이드 제작으로 브랜드 언어가 정립되었다고 생각하긴 이르더군요. 전사교육, 신규입사자 얼라인 클래스를 진행하며 지속적인 가이드 교육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남았아있던 산 넘어 산인 라이팅 가이드 ver.2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계속해보겠습니다. (더 보기)
2019년 회사 내에서도 최초의 라이팅 가이드였지만, 저도 처음 제작해 보는 거라서 어떤 구성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너무 막막했어요. 특히나 라이팅 가이드 사례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 사례처럼 구성해 볼까 하다가 엎고, 다시 다른 구성으로 해보다가 적합하지 않아서 엎고.. 지금 생각해 보면 각각의 회사 니즈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명확하게 맞는 사례를 찾기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레퍼런스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이고 내부의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실사용 할 수 있는 가이드 구성에 더 집중하는 게 도움 되었어요. 그때 참고했었던 유용한 라이팅 가이드들은 아래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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