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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l 05. 2019

그래 까짓 거, 나두 갈란다

나의 지리산 등정기


지리산은 내 몸 곳곳에 많은 흔적들을 남겨놓았다.

셀 수 없이 많았던 돌계단들은 내 다리 곳곳에 근육 알들을 심어놓았고, 아주 작은 계단턱조차 신음소리와 기합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보다는 조금씩 예전의 몸을 회복하는 듯하다. 

몸이 다 나아지면 지리산의 기억들도 사라지겠지.


그래 까짓 거, 나두 갈란다

모든 계획은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학부모 단톡 방에 하윤 아빠의 갑작스러운 지리산 산행 제안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산을 좋아하는 아빠들 몇몇이 가겠거니 했을 텐데 모든 일은 타이밍이 중요한 법. 때마침 회사 동료가 힘들다며 훌쩍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버린 일로 적잖이 화가 나있던 참이었다. 

과거의 비슷한 경험이 떠오르면서 남겨진 사람의 포지션이 되는 반복적인 내 상황에 짜증이 났고 그런 나를 또 억지로 추스르고 있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분노, 우울이 뒤섞여 있었다. 나도 꼴리는 대로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조금 막 나가고 싶던 나를 자극하는 신선한 제안이랄까. 그 산행이 얼마만큼 힘들지 가늠하기도 전에 내 안의 감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까짓 거, 나두 갈란다. 


사실 지리산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사전 지식도 없었다. 무식하니 용감해진다고 동료 학부모가 올린 경로도 그냥 대충 따라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떠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렇게 모인 인원은 5명. 우리는 각자 준비물들을 나누어 지리산 대원사 주차장에서 만났다. 하윤 아빠가 원래 에너자이저인 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키만 한 등산가방 두 개를 챙겨 와 하나를 희원이 아빠에게 주었다. 희원이 아빠는 지리산을 처음 들어봤다는 둥,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냐는 둥, 왜 내 배낭이 더 무겁냐는 둥, 불평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계속했지만, 결국 자기 몸보다 더 큰 배낭을 메어야 했다. 

바라보는 나는 마치 차력쇼를 보는 것 같았고, 저 배낭을 메고 등산을 하는 일이 정말 사람에게 가능한 일인지가 궁금해졌다. 하윤 아빠의 배낭 안에는 본인의 옷가지는 달랑 두 개뿐이지만, 와인과 와인잔, 토스트기, 각종 조명, 가스, 원두커피, 드리퍼 등 웬만한 캠핑용품들이 다 들어 있었다. 하윤 엄마는 집에서도 그냥 마룻바닥에 자는 양반이 등산할 때는 꼭 침낭과 매트까지 싸가지고 다닌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 두 사람은 은근 합이 잘 맞는 친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

우리는 두대의 차를 나누어 한 대는 내려오는 길목에 주차를 하고, 나머지 차량 한 대로 첫 시작점인 새재로 이동했다. 아직은 뽀송뽀송한 얼굴로 처음 시작을 알리는 인증숏을 찍은 후,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의 호기로운 마음과 달리, 숨이 차오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설렁설렁 집 뒷산만 오르던 실력이 이렇게 뽀롱이 나는구나, 뒷산이어도 평소에 나름 산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두근거리는 내 심장과 호흡이 원망스러웠다. 

지나고 보니 초반 30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초반의 오르막은 편안히 잠자고 있던 내 몸 구석구석을 깨우면서 아직 일어나지 못한 많은 세포와 근육들을 채찍질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심장은 터질듯했고, 얼굴은 열기로 달아올랐다. 늘 나를 챙기는 남편은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평소 우리의 호흡대로 천천히 가자며 나를 안심시켰고, 결국 하윤 아빠는 선발대로 하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내 앞에서 산행을 인도했다. 


산행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몸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선발대가 기다려준 덕분에 만났다가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한 발 한 발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이 그저 앞만 보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짜잔! 치밭목 산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담한 산장엔 이미 도착한 등산객들이 소박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지글지글 버너에 고기 굽는 소리가 낮동안의 노곤함을 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대놓고 펼쳐놓기에는 조금 은밀한 모종의 계획이 있었기에 중앙에서 좀 떨어진 가장자리 테이블에 배낭을 풀었고, 아쉽게도 그 테이블엔 이미 자리를 잡은 캐나다 등산객 한 명이 소박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그는 가방을 정리한 후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멀리 타국의 산을 오르기 위해 준비했을 그의 작은 배낭과 힘든 산행을 마치고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며 온전히 모든 시간을 자신에게 바치는 그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런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하. 지. 만. 아쉽게도 우리는 마땅히 짐을 펼칠만한 자리가 없었고, 이 시간을 위해서 괴력을 발휘하며 짊어지고 온 배낭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의 옆에서 조용히 고기를 굽고, 허락치 않은 소주와 와인을 깠다. 그리고 이웃인 그에게 고기와 소주한 잔을 건넸다.


아빠들이 준비한 배낭은 그야말로 퍼펙트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산장으로 잠을 청해 들어갔지만, 우리에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와인과 초콜릿, 간단한 소주와 맥주로 지친 육신의 피로를 달랬다. 산꼭대기에서 맞는 밤공기는 머리가 쭈뼛거릴 만큼 차가웠지만, 오손도손 모여 앉은 우리의 체온은 따뜻했고, 이 밤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중년의 열정은 우리의 손발을 녹이고 마음을 달구었다. 지리산이 어디인지도 몰랐다며 투덜되던 희원 아빠는 어느새 지리산의 품 속에 안긴 듯 산을 고마워했다. 오랜 시간 만났던 벗들은 아니었지만, 지리산으로 인해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힘든 경험을 함께 공유한 사람들끼리는 묘한 전우애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예쁘고 웃는 얼굴만 보여줄 수 없어서일까 서로의 마음의 폭들을 읽게 되면서 더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 시간을 위해 힘든 배낭으로 수많은 땀을 준비한 하윤 아빠는 분명 나와 다른 사람임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마음의 깊이를 다 알 순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고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드디어 천왕봉에 오르다. 

치밭목에서 천왕봉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3시간 정도,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이미 2시쯤부터 천왕봉으로 떠나는 일행들이 있었지만 지리산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맑은 하늘의 일출을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일찍 잠을 깬 우리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일행 중 가장 저질체력이었던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커서였을까, 천왕봉 도전에 너무 무리를 하지 말고 여기까지 온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 컨디션에 맞는 결정을 하라고 배려해 주었다. 전날 산행에, 음주에, 무거운 배낭에 지칠 법도 하건만 괴력의 일행들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이 어떤 길일지 몰랐기에-알았다면 아마 포기했겠지만-이끄는 대로 천천히 따라가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최대한 배낭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서둘러 배낭에 있던 짐들을 자신의 배 속으로 밀어 넣고 지리산 꼭대기를 향해 발을 떼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려면 써리봉, 하봉, 중봉 이렇게 세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오른 이 코스가 지리산 산행 중 제일 힘든 코스였다고 한다. 코스별 난이도가 나와있는 지도를 보면 치밭목 산장부터 천왕봉에 이르는 4km 코스가 제일 가파른 <매우 어려운> 코스에 해당됐다. 

천왕봉과 해발 높이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중봉에 오르자, 지리산의 산새가 파도처럼 펼쳐졌다. 이렇게 생겼구나, 오윤, 이철수 판화가 뻥이 아니었구나. 숨은 가파르고 심장은 터질듯했지만, 어느 곳에서 나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임이 확실했다. 이래서 힘들게 지리산을 오르는구나. 구불구불 펼쳐지는 산맥들, 나무 하나하나, 돌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묻어있을까.


드디어 천왕봉 정상이 보였다. 천왕봉에는 이미 도착한 등산객들이 정상 사진을 찍기 위해 선 줄이 50미터 정는 되어 보였다. 정상에는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했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 같아 보였다. 


오르막길엔 호흡이 달리고 힘이 필요했다면 내리막길엔 강한 정신줄이 필요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제멋대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있지 않으면 이대로 구를 것만 같았다. 지리산은 내리막조차 편치 않구나. 잘 조성된 길보다는 경사가 심한 바위로 되어 있는 구간이 많아서 다리를 잘 제어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톱이 아파오고, 무릎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발가락에는 물집이 잡히는 것 같은 느낌에 쓰라렸다.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에 비하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침내 오지 않을 것 같던 하산길의 마지막 도착점에 도착. 내가 지금 천왕봉에서 내려온 것이 맞나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리산 천왕봉 등정은 내가 욕심을 낸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함께 간 일행들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도 치밭목에서 하산했을지도. 치밭목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들을 믿고 함께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실감했다. 지리산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일행들로부터 많은 부분에서 배려를 받았다. 어느 곳이든지 누군가는 배려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어리광을 피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배려해주고 아껴주던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난 또 한 번 공동체를 경험했다.


산을 오르는 일은 몸을 극단으로 밀어 넣으면서 마음을 극단으로 비우는 일인 것 같다. 복잡하던 마음은 이 수많은 생명들과 거대한 산맥의 흐름 속에 정말 하나의 미천한 먼지처럼 작아진다. 나의 삶을 줌 아웃해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준다. 내가 서있는 좌표를 확인하게 하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여정을 점검하게 한다. 그동안 게을렀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때로는 응원도 하면서 삶을 버티듯 한발 한발 버티어 나가게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언제인 듯싶게 우리 앞에 새로운 삶이 이 거대한 산맥들처럼 펼져질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 당분간 산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다시 그곳이 그리워진다. 힘들었던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드넓은 산맥들과 풍경들은 조금씩 짙어지는 기분이다. 귓가를 맴돌던 물소리와 새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질 즈음, 난 또 가방을 싸고 싶을 것 같다. 꼭 유명한 산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단 카메라는 꼭 챙길 것. 남는 건 사진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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