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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l 19. 2019

남들 다하는 운전이 뭐라고.

2019년이 되면서 결심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운전이다.

운전면허는 20대 중반에 땄지만, 2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면허증만 두 번 갱신한 채 지갑 속에 잠들어 있다.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못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장 움직일 차는 없었어도 면허가 생기면 가족차나, 회사차를 운전할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2종 자동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운전면허 학원 강사는 겁도 많은 사람이 왜 1종(기어를 수동으로 조절하는 포터)을 따려고 이 고생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1종 보통을 우선 따놓고 나면 이후에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난 지금보다는 훨씬 도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면허를 딴 후,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고 싶어 질 때 바로 운전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 시기를 놓치고 나니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만 커졌다. 친구들은 운전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어서라고, 닥치면 어쩔 수 없이 다 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차가 필요할 때는 침착하게 운전을 잘하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고, 사적인 모임이 아니면 웬만한 곳은 남편과 함께 움직였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역세권의 집으로 이사를 다녔고,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도 도보가 가능한 지역으로 찾아다녔다.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뚜벅이로 사는 삶에 대한 나름의 가치와 자부심도 있었다.


물론 운전을 못해서 생기는 불편함도 많았다.

집은 뚜벅이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었지만, 일과 여행과 관련해서는 불편할 때가 많았다. 궂은날 이동이 많을 때, 차로는 가까운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오랜 시간 가야 할 때, 아이들이 아파서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할 때, 여행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을 때, 먼 거리 오느라 남편 혼자 고생한다는 시댁의 눈치를 받을 때 등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불편함은 수도 없이 많았다. 물론 차가 필요할 때 눈치를 보며 남편에게 부탁, 협박, 구걸을 해야 하는 더럽고 치사한 상황일 때도 있었다.


언젠가 운전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 남편을 옆자리에 태우고 몇 번 거리에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뒷걸음치게 만드는 것은 너무 무섭다는 거였다. 핸들을 잡은 두 팔은 너무 경직돼서 핸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손과 발엔 땀이 줄줄,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남편은 운전도 다 경험이라며, 교외로 고속도로로 나를 이끌었다. 도로에서 그렇게 벌벌 떨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고 다시는 운전대를 잡고 싶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를 지나야 편안해진다지만, 그 두려움을 넘지 못하고 운전할 기회를 번번이 포기했다.

운전은 나의 가장 못난 부분을 직접 대면하는 일이었다. '이번 생은 틀린 걸까'하고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난 사람들이 두 종류로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사람과 운전을 못하는 사람.


남들 다하는 운전인데, 난 왜 어려운 걸까.


나름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몸으로 하는 것에 서툴다. 무언가를 몸으로 배우는 유형이 아닌 머리로 먼저 이해가 되어야 몸이 준비되는 유형이다. 무언가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면 나는 먼저 관련 책을 찾고 맥락을 잡는다. 어느 정도 큰 그림이 그려져야 세부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나름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몸으로 하는 일에 그다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성장하면서 조금씩 몸을 쓰는 일을 피해 오기도 했고, 늘 컴퓨터에 앉아 작업하고 고민하는 디자인이라는 일이 그런 점들을 더 강화시켰던 것 같다.


또 불안과 걱정이 많았다.

운전을 하게 되면 생기는 급박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던지, 나와는 상관없는 도로의 예상치 못한 사고라던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찰나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혹시라도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 그냥 뚜벅이가 속 편하게 느껴지면서 운전을 주저하게 된다. 놀이공원과 공포 호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운전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더 나이가 들어 몸의 총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몸의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내 삶이 점점 축소됨을 느꼈다. 퇴근 후 다른 곳에 가는 것이 귀찮아지고 외근이라도 한번 다녀오는 날엔 몸이 너무 힘들어졌다. 몸을 움직이는 일보다 앉아서 하는 독서나 글쓰기, 바느질 등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 동네 도서관, 공원, 마트만 오고 가고 있었다. 뚜벅이 생활은 점점 내 공간을 축소시키고 삶의 반경도 축소시켰다. 점점 좁아지는 내 영역을 그냥 바라만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활동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려면 저질 체력을 극복해야하고, 이동에 제약이 없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날개를 달아야겠다고.


일단 <주차의 달인>이라는 앱을 깔고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확실히 도움이 됐다. 휴대폰 앱과 실제 주차는 시야가 다르긴 했지만 웬만한 주차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도로로 나가야 하는 실전이 남았다. 

'남들 다하는 운전이 뭐라고' '진짜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 '여기서 물러서면 이젠 끝이다' 등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해 마음을 잡고 남편을 옆에 태우니 예전처럼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하지만 혼자 차를 가지고 나가는 건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하나씩 하기로 했다. 일단 주차장부터 시작하기로.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주차하고, 다시 주차장을 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고, 이렇게 조금씩 반경을 넓혔다.

드디어 동네 마트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골목에서 제발 차가 얽히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가 없기를, 아이들이 아무데서나 튀어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길을 나선다.


아직 새로운 장소는 혼자 가기가 어렵다. 지리를 아는 곳에 한해서, 차가 많지 않을 시간을 골라서 움직인다.

내비게이션을 볼 여유도 없다. 눈을 잠깐 옆으로 돌리는 것도 어렵다. 얼마 전까지 창문도 못 내렸는데, 이제 창문은 열 수 있다. 애들과 함께 탈 때는 엄마에게 질문 금지라고 다짐을 받는다. 나의 두려움이 전이되어 아이들은 뒷자리에 찍소리도 내지 않고 앞 뒤를 주시한다. 함께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강화에 있는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귀교를 도와주면서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는 것이 올해 목표다. 이 속도로 가다간 애가 졸업하고 말 거라고 남들은 놀려대지만 그날은 올 것이다. '오늘은 운전 때문에 술을 못 먹어요' 하고 남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허세를 부리는 것도 하고 싶고 '내가 없으면 어쩔뻔했어. 기다려. 데리러 갈게' 하고 핀잔을 주는 여유도 부리고 싶다. 무엇보다 낯선 여행지에서 렌터카를 타고 어디든 꼴리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싶지만, 처음의 내 모습에 비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두려움이 큰 만큼 성취감도 클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운전이지만,

나에게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다.

태어나 처음 내딛는 첫 발처럼 두렵지만 다시 한번 나로 서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제 발을 떼었으니,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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