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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an 12. 2023

코로나 확진,  그 짧고 강렬한 자유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남들 한 번씩, 혹은 두 번씩 앓고 지나간 코로나를 이제야 걸렸다.

아직까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모른 채 지나간 거라고, 누군가는 슈퍼항체가 있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좋은 거 혼자만 먹지 말고 나눠먹자고 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코로나에 걸려 격리방 안팎으로 들락날락 밥을 나르고 간호를 할 때도, 심지어 열이 펄펄 끓는데도 코로나는 절대 아니라고 큰소리치던 남편을 철석같이 믿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코로나 환자와 이틀을 동침했을 때도 코로나는 나를 피해 갔다. 정말 말로만 듣던 슈퍼항체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역. 시. 나. 슈퍼항체란 없었다.

단지 재택근무가 많아 남들보다 확률적으로 감염기회가 적었을 뿐이고 남편과의 동침은 운이 좋았을 뿐.

우리 둘째 녀석은 코로나에 걸리면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군' 하는 쎄한 느낌이 오면서 목이 아픈 게 평소와 확실히 다르다고, 그래서 스스로 '병원에 가서 확진이라는 진단을 받아야겠군'하는 생각이 든다고.

사실 감기는 몸살로 자주 오는데 이번에는 목감기로 왔다는 게 다르다면 다르지만 목의 칼칼한 증상은 예전 목감기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딘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슈퍼항체를 혹시나 기대하며 '단순 목감기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하루를 넘겼다.


코로나는 역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만했다.

인후통과 가래, 몸살과 두통으로 연속 쨉을 날리며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하루이틀이 지나고 이제는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에 더 강한 펀치로 훅을 날리며, '목 아픈 건 이제부터가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후통은 내가 지금껏 앓아본 것 중에 단연 최고였다. 주먹이 아니라 칼로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으로 어느 것 하나 목안으로 밀어 넣기 힘들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목아픔이 이런 거였구나, 코로나는 절대로 모른 채 지나갈 수 없다고 하더니, 다들 이렇게 아팠었구나. 에구

다행히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코로나와의 대결은 꼬박 4일 밤이 지나고 나자 조금씩 기세가 꺾이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의 진단을 받았을 때 어쩌나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에는 오랜만에 시조카가 와있고, 어제까지 시조카와 같이 밥을 먹었는데 옮았으면 어쩌나... 새로 들어가야 할 일거리의 원고가 이미 도착해 있고, 이번달은 명절이 껴서 일할 날도 며칠 없는데... 주말부부라 남편은 없고 아이들은 모두 방학을 했고, 애들밥은 어쩌나, 애들한테 옮기지 말아야 할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겹쳤다. 다행이라면 촌각을 다툴 만큼 바쁘지 않다는 거, 방학이니 학교 다닐 때만큼 규칙적으로 애들밥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도 취미생활에 바빴던 남편은 나의 확진소식에 싱거운 쇠고기야채죽과 미역국 한 솥을 끓여놓고 아이들에게 엄마배식에 대해 브리핑한 후, 서둘러 일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틀을 두통과 몸살로 침대에 푹 파묻혀 있었다. 끼니때가 되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슨 맛인지도 모를 쇠고기죽과 미역국을 번갈아 쑤셔 넣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걱정 따위 집어치워' 따위의 단순한 평화가 엉덩이를 슬쩍 들이밀며 자리 잡았다.

나의 모든 상태가 내 의지가 아닌 이유로 강제 스톱이 되고,

내가 애를 쓴다 해도 나와의 접촉을 꺼리고 나를 반겨하지 않으며,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그닥 미안하지 않고 애들도 나를 원망하지 않는,

오랜만에 방문한 시조카를 잘해줘서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도 자유로워지는,

나중에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당장은 공식적으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코로나가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휴식을 보장받은 그런 해방감이랄까.


육신은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너덜거리지만 마음은 단조롭고 고요하다고나 할까

밖은 전쟁터지만, 난 안전한 나만의 방공호에 있는 느낌.

회사휴가 때는 가사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가사에서 자유로울 땐 업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사노동과 업무, 두 가지를 동시에 내려놓았던 경험이 결혼 후 나에게 있었던가?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맛이 있든 없든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면 됐고, 하루종일 잠을 자거나 씻지 않아도 뭐 하나 문제될 게 없다는 사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비록 공간은 3평 방에 갇혀있지만,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충만해졌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져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다가올 출근과 업무에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안 자고 깨어 있다 한들 아픈 내 몸땡이 외엔 타격을 입힐만한 것이 없었다. 격리방 바깥 주방과 거실이 전쟁통이어도 내 눈앞에 안 보이니 그 또한 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고 하지만, 난 잘 안 먹어도 괜찮다. 단지 그냥 나를 이렇게 한동안 내버려 두면 참 좋겠다 싶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자, 참 내가 그동안 전전긍긍 애쓰며 살았구나 싶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잘 해내고 싶어서 나를 참 들들 볶았구나. 그래서 이렇게 새해에 쉬어가라고 하는구나. 나처럼 아이들 또한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내가 없어도 다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렇게 놓아버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했었다. 이번기회에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체감하면 난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


안타까운 사실은 코로나가 준 해방감은 일주일을 꽉 채우진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자, 격리방의 문엔 노크소리가 잦아졌다. 냉장고는 비워지고 아이들의 질문과 요구는 많아졌다. 목소리의 회복속도에 맞춰 통화 횟수가 늘어나고 에라 모르겠다 미뤄놓았던 일들이 하나둘 부담으로 돌덩이처럼 다가왔다.


마치 꿈을 꾼 듯 나의 몸은 회복될 것이고, 일상의 루틴들도 회복되겠지.

코로나라는 강력한 바이러스는 나에게 강렬한 자유의 짜릿함을 주고 사라졌다.

내 몸 어딘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이라는 훈장이 새겨져 있을 테고

내 맘 어딘가에도 한동안 일상을 활기차게 살아낼 단단한 마음의 면역도 생기면 좋겠다.


나에게는 짧은 일탈 같은 코로나여도 누군가에는 삶과 죽음의 고비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

살면서 우리는 또 지치고 아플 날이 많겠지만 모두 큰 탈없이 소나기처럼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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