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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감 Aug 22. 2019

또 하나의 ‘보고 싶은’ 가족.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 이야기 – 영화

 찾아가는 영화관은 전국의 영화관이 없거나, 문화 소외지역에 찾아가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취지에 더 좋은 건 무료로 국가에서 서비스하는 행사입니다. 

  1년 평균 42,000km. 이제는 안 가본 지역보다 가본 지역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먹고,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점을 공유하려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아, 제 이름이 ‘이용감’이라 Brave Yi입니다.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영화 관람객 집계를 낼 때 ‘서울’, ‘지방’으로 구분 지어 관객 수 통계를 따로 내기도 했습니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개막하고, 압구정 오렌지족들이 입는 옷을 사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지방민들의 고난의 행군 시대, 즉 오프라인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서울 – 지방 관객 수 집계는 무의미해졌습니다. 

 오히려 서울 – 지방의 관객 수 집계를 내며, 서울은 세련된 이야기 지방은 단순한 코메디 등으로 이원화시켜 영화 관객층을 구분하는 행태를 지금 시기에 제기했다가는 제가 쓴 이전 글처럼 ‘지방 차별’ 문제가 불거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격차는 존재합니다. 격차에 따른 취향 또한 다릅니다. 저런 격차 때문에 제가 밥 먹고 살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영화관 행사를 하면 만나는 주된 관객층을 분석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50~80대, 여성.

 행사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만나는 관객층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장르가 뭘까요?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매년 전체 영화 관람객을 대상으로 영화 장르 선호도를 조사합니다. 압도적 1위는 ‘액션’입니다. 그것도 거의 매년. 

 그러면 50~80대, 여성의 찾아가는 영화관 선호 장르 1위도 액션일까요?

 단언컨대 찾아가는 영화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장르는 압도적으로 ‘드라마’, 특히 ‘가족 드라마’입니다. 


 재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1987>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상업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수도 700만이 든 흥행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찾아가는 영화관에서 상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가 절반도 흐르지 않았는데 보던 관객들 절반 이상이 나갈 거라 확신합니다. 이유로는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고, 집중도가 필요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역사적 사실, 역사적 함의가 있는 영화이니 괜찮지 않냐고요? 아닙니다. 

 영화를 쉽게 접하는 젊은 세대, 영화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 거주자들과는 달리 찾아가는 영화관을 찾으시는 분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적습니다. 일례로 전남 해남에서 만난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아버지가 죽고 20년 만에 울었다는 할아버지. 아버지 죽기 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20년 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또 찾아가는 영화관 시설은 부실합니다. 앞사람 머리 때문에 자막이 가리기도 하고, 낡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2시간을 보려면 집중도가 큰 영화는 사람들이 쉽게 피곤해합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주 근처인 전남 곡성에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광주 근처이고, 역사적 사실, 상처를 건드린 영화이니 당연히 영화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관객 절반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 10분의 2 정도 관객분은 불을 켜니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뭐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막이었고, 다음 문제는 영화가 너무 길었습니다.

아, <택시운전사>가 나쁜 영화라는 건 아닙니다. 저는 나쁘지 않게 봤습니다. 단지 찾가영 관객 취향과는 먼 영화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훌쩍 자리를 비우는 분들이 많은데 끝까지 자리에 남아,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닦으며 감상했던 영화가 두 편 있습니다. 

 바로 영화 <친정엄마>와 <엄마의 공책>입니다. 

 사실 <친정엄마>는 제가 자리를 일어서고 싶을 정도로 신파, 신파, 신파의 끝판왕 영화입니다. 


둘 다 ‘엄마’를 다루는 영화지만 세부적으로는 굉장히 다른 영화입니다.


 먼저 <친정엄마>입니다. 관객 80%가 영화를 보며 웁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친정엄마>를 상영할 때, 미리 이야기합니다. 굉장히 슬픈 영화니까 옆에 휴지를 두고 보시라, 영화 보다가 우는 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 영화 보면서 확 울고, 힐링하셔라. 

 예상은 틀리지 않습니다. 보통은 절반 정도 넘게 웁니다. 어떤 경우에는 행사 담당자가 너무 눈물을 흘려서, 영화 끝나고 안내 맨트를 하다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참, 행사 담당자들도 대부분 40~60대 여성입니다. 


 영화 선정은 자료원 기획 담당 직원이 행사 담당자를 설득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영화를 바꾸도록 유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행사 담당자 판단에 따릅니다. 그 때문인지 찾아가는 영화관 최다 상영 횟수 영화는 <국제시장>입니다.      


 <국제시장>과 <친정엄마>. 너무나 다른 내용이지만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두 영화 모두 ‘가족’을 다룹니다. 

 찾가영 주된 관람층인 중, 노년 여성들이기에 ‘가족’ 드라마, 가족 세계관이 잘 먹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대다수 공중파와 종편 방송에서 <미운우리새끼>, <아궁이> 등의 가족 예능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제시장>과 <친정엄마>, 두 영화 공통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둘 다 강도는 다르지만 ‘신파’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럼 신파가 없는 가족영화는 먹힐까? 

 결론은 먹힙니다.     


 바로 영화 <엄마의 공책> 때문입니다.

 신파가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신파가 덜한 영화입니다. 

 제 판단이 아니라 <친정 엄마>를 보며 울던 분들이 <엄마의 공책>을 보면서 우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다만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는 영화 초반부터 내용이 나오니, 내용을 깔고 가겠습니다. 

 <엄마의 공책>은 이기적인 아들이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어머니가 살아온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종석, 이주실 배우가 출연하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 작품입니다. 

 네이버 관객평을 봐도 알겠지만 거칠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고, 울라고 강요하지 않는 가족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 있는 내용인데, 처음 <엄마의 공책>을 상영했던 부산 근처 농협에서는 반응이 어찌나 좋은지 앞사람 머리로 화면이 가리자, 10% 이상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영화를 끝까지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군산에 있는 한 주민센터에서 야외 상영을 했던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행사 담당자는 많은 사람이 모이고 군산 시장 참석도 확정되자, 무조건 유명한 영화를 상영하려 했습니다. 

 유명한 영화는 상영료도 비쌉니다. 도저히 금액을 맞출 수가 없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선정한 영화는 <엄마의 공책>이었습니다. 담당자는 행사 당일까지도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도 담당자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영화, 너무 좋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이외에도 고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팔도강산> 등도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저 영화들에서 나오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고전적인 가족, 찾가영 주 관객층이 원하는 ‘보고 싶은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자식이 있고, 부부가 있는 고전적인 가족. 

 같은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동거 가족, LGBT를 위시한 성 소수자 가족에 대한 영화를 상영한다면 많은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죠. 


 전통적인 가족상에 대한 관념이 강해 나이가 있는 장년 세대와 젊은 세대 갈등이 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결혼을 해라, 아이를 낳아라 등등. 결혼 – 출산으로 이어지는 ‘가족’ 개념이 장년 세대에게는 아직은 강고합니다. 


 찾가영을 찾으신 분들은 스크린 속에서 또 하나의 ‘보고 싶은 가족’을 감상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시대가 변해서 찾가영을 찾으시는 분들이 ‘보고 싶은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다양하고, 좀 더 새로운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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