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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감 Jan 10. 2019

전국을 내달리는 영화관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 이야기 - 소개> 

 찾아가는 영화관은 전국의 영화관이 없거나, 문화 소외지역에 찾아가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취지에 더 좋은 건 국가에서 무료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찾가영 2년. 13만km가 넘게 전국을 돌며 먹고,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점을 공유하려 Brave Yi의 찾아가는 영화관 뒷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아, 제 이름이 ‘이용감’이라 Brave Yi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노래 <화개장터> 속 실제 장소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 주민들이 영화관에 가려면 노래 가사처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질러야 합니다. 심지어 화개면 분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빨치산 소굴’로 악명 높았던 지리산 피아골을 넘어 전남 구례에 가야만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동군에는 영화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관 덕택에 지역 교류가 일어납니다. 40년을 넘게 쌓인 경상도-전라도의 지역감정 거리감보다는 영화관이 그들에게 훨씬 가까워 보였습니다. 


(하동군 화개면 중심지에서 전남 구례군 자연드림시네마 까지의 거리)


 영화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영화관’이 존재합니다. 영화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직접 찾아가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를 통해 문화향유권 확대, 쉽게 풀어내면 도심지에 있든 시골에 있든 문화 격차를 느끼게 해주지 말자는 기획으로 시작된 사업이죠.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횟수로 17년째. 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후원합니다. 

 특수한 사업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보니 하동군 화개면 일처럼 재미있는 상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독특한 일이고, 가깝게는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멀게는 배가 안 뜨면 육지로 나오지 못하는 울릉도에서 영화를 상영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게 이토록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걸 2년 반의 찾아가는 영화관 영사 기사 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극혐주의. 울릉도 들어가기 전과 일주일 뒤 나오기 전 사진입니다. 날씨 때문에 이틀 배가 뜨지 않았고, 나가는 날도 비바람에 폭풍우가...)


 시골 사람들만이 영화를 보기 어려운 건 아닙니다. 도심지에 살면서도 보기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보는 것이냐고요? 아니면 시간 때문에요? 둘 다 아닙니다. 움직임이 불편하기에 영화를 못 보시는 분들이 아주 많죠. 바로 요양 시설에 거주하시는 분들입니다. 

  처음에 요양원 행사를 했을 때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보통 요양원에는 치매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온전히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분들이 영화를 본다고요? 이런 제 편견은 고전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에서 비에 맞아 떨고 있는 영신이를 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90대 어르신을 보며 산산이 깨졌습니다.

  60년 전 작품이라 ‘고전’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하지만 ‘고전’이라 분류되는 영화들은 착합니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감정을 대사로 다 설명하며, 최신 영화들에 비해 짧죠. 실은 요양원에서 가장 핫한 영화는 <신과함께>도 <어벤져스>도 아니고, <미워도 다시 한 번>입니다. 이야기가 단순하니 90대 어르신도 내용을 파악하고, 캐릭터들이 대사로 감정 설명을 하다 보니 치매에 걸리신 분들도 쉽게 감정 동화가 되는 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러닝타임이 짧아 움직임이 불편하신 분들도 참고 볼 수 있다는 점. 또 그분들에게는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요양원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전영화는 도심지에 사는 분들도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상영하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촌스럽다, 지루할 것 같다는 반응을 뒤로하고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고전을 통해 현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가장 큰 꿈이 ‘(건물) 임대업자’라는 말에 혀를 차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68년도에 제작된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아버지(신영균 분)가 영신이(김정훈 분)에게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영신이 대답합니다. “아부지처럼 배불때기 사장님이 되고 싶어요” . 그 때나 지금이나 장래희망은 ‘잘 먹고 잘 사는’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신영균 배우. 68년 당시 첨단 패션에 최신 헤어스타일. 지금으로 따지면 지드래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도 60년 전과 비슷합니다. 극 중에서 조강지처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신영균 배우를 보며, 요양보호사 아주머니들과 요양원 입소자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고추를 잘라야 한다’고 외칠 정도니까요. 

   최신영화도 좋지만 영상자료원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영상자료원에서는 유투브 채널 ‘Korean Classic Film’과 상암동 영상자료원 지하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영화관을 통해 고전영화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로 회사 광고도 합니다...  회사의 높은 분들도 참고하시길... 참, 시네마테크(kofa)는 지하에 있고, 무료입니다. 

   

 요양원 어르신들과는 달리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영화를 다 외워버리겠다는 듯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가는 길은 포항까지 내려가 세 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울릉도 행사보다도 힘들고 위험했습니다. 

  처음 담당자를 만난 뒤 이동은 쉬웠습니다. 20분 정도 언덕을 올라갈 때까지도 괜찮았고요. 이후 2차선 도로가 1차선으로 바뀌고, 언덕 위에서 트럭이라도 내려올라치면 300미터 정도의 구불거리는 1차선 도로를 후진하는 순간에 이르자 이거 쉬운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겨우겨우 언덕을 한 시간 정도 올라가자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행사장에서 돌아가는 길을 내려 보니, 이는 올라오는 것 보다 더 했습니다. 차 한 대가 딱 들어맞는 도로 폭의 구불거리는 급커브 길 옆은 낭떠러지였습니다. 심지어 올라오고 내려가는 길만 위험했던 건 아니더라고요. 행사를 하는 내내 언덕 너머에서는 포격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곳으로 길을 안내했던 육군 공보장교에 따르면 저기 위에 보이는 철조망만 넘으면 북한이라고 하더군요. 

  여차저차. 올라오기도 내려가기도 힘들지만 영화를 상영해야 했습니다. 영화 시작 전, 경계 업무 후 휴식을 취하는 군인들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생활관 앞에서 공을 차기도 했습니다. 근데 영화가 시작하자 모든 군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마치 적을 섬멸하겠다는 듯 영화에서 한 장면도 눈을 때지 않고 집중했습니다. 그들에게 상영한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군인들은 단 한 명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화장실마저도 참아가며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가 다 끝나자 주인공의 운명에 대해 애통해하며 아쉬움을 표시하더군요. 아쉬워하는 군인들을 보니 마치 군사 작전을 수행하듯 행사장에 올라온 여정이 뿌듯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찾아가는 영화관 2년 반. 13만 km를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안 가본 지역보다 가본 동네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아는 지역이 많아지는 동안 도심지에서만 살았던 제가 찾아가는 영화관 관객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관점의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에 처음 울었다는 전라도의 어느 할아버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게 좋은지 상영 내내 응석을 부리던 경기도 어느 보육원의 어린 아이,  <YMS 501의 수병> 등 60~70년대 수많은 반공 영화를 만든 감독님을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서 만났을 때 감독님은 자기가 만든 영화는 할머니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며, <YMS 501의 수병> 상영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기록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을 야외에서 상영 할 때는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직접 찾아와 상영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에게 더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관은 오늘도, 내일도 달립니다. 그를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더 커다란 감동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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