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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덤 Apr 14. 2020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로!

팩트풀리스를 읽다가 -

13살 때 국내 지도 포스터를 보면서 무전여행 꿈을 품었다. 책장 한쪽 끝에 그 지도를 잘 접어서 꽂아두고 가끔 꺼내 펼쳐보면서 대학생이 되면 꼭 무전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했다.


대학에 들어갔고 여름방학이 됐다. 치밀한 성격은 아니어서 즉흥적으로 친구와 함께 해남에서 시작해 부산, 강릉까지 도보로 무전여행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기로 계획했다. 계획을 짠 바로 그 날 텐트를 빌리고 필요한 물품을 마트에서 구매한 후, 다음 날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책장에 묵혀두었던 '그 지도'를 꺼내 들었다. 배낭의 무게는 30kg에 육박했다.


해남 터미널 -> 땅끝마을 -> 보성(힘들어서 녹차밭 구경은 패스) -> 순천까지 열흘간의 무전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태풍이 온 줄도 모르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그때 이야기는 따로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종아리가 태양에 익어 빨갛게 달아오르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진주를 향해 걷던 중 발생했다. 바닷가 마을이 관광지다 보니 숙박을 하려면 지출이 필요했기에(당시 마을회관, 이장님 댁 빈방, 교회 등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친구와 나는 좀 더 내륙 쪽으로 들어가 걷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지도'로 국도를 살펴보기 시작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당시에는 스마트기기가 없었으므로 정확하지 않았지만 대강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반나절쯤 걷다 보니 우리는 지리산을 오르고 있었다. 지리산을 넘는 건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고, 목적지와 방향도 맞지 않았다. 경치는 좋았지만 친구와 나는 서로 주고받는 말이 없었다. 날이 저물 무렵 겨우 지리산을 내려가는 길목에 들어섰고 우리의 여행도 그렇게 끝이 났다. 친구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세우고 갑자기 올라탄 것이다.


약 이주간의 무전여행은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됐지만 돌아보면 얻은 게 참 많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감상을 담고 있는 오래된 지도를 들고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아주 어리석고 치명적인 실수였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그 지도'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던 길이 사라졌기 때문에 -



"내가 여러 해 동안 테스트한 사람 모두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대개는 낡은 지식이고 더러는 수십 년 묵은 지식도 있었다. 사람들의 세계관이 형성된 시기는 그들을 가르친 교사가 학교를 떠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지를 뿌리 뽑으려면 사람들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적어도 내 결론은 그랬다. 그러려면 데이터를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한 더 좋은 교육 자료를 개발해야 했다."
『팩트풀리스』(한스 로슬링 / 김영사) 머리말 중


여기서 말하는 '지식' 단순히 배워서 아는 '지식'으로만 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나아가기 위해서는(그게 앞이 됐든 뒤가 됐든 위아래가 됐든)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지도가 필요하다. 낡은 지식, 수십  묵은 지도로는 반드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낡은 지식, 낡은 지도란  이상 유용하지 않은 종류의 지식을 말한다. '유용'하지 않더라도 삶의 기반이 되는 지식과 전통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신난다. 몇 년 안에 내가 새롭게 만든 지도로 다른 사람들이 기쁘게 여행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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