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게임으로 경험하는 자본주의 사회
도서관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돈'을 주제로 모임을 할 때 빈곤 게임을 한다. 빈곤 게임은 대학생 때 외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경험했는데, 외국의 비영리단체가 처음 만든 걸 국내 국제구호단체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번역해서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게임의 시대 배경은, 길게는 1980년대 페루의 초인플레이션, 짧게는 2000년대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떠올릴 수 있다. 넓게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압축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빈곤 게임이라는 타이틀처럼 참가자들은 게임 룰에 따라 열심히 일하지만 결국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두 시간 정도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본주의의 속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돈'과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게임 참여자들은 네다섯 명이 한 가정을 이룬다. 각 가정은 지급된 도구(가위, 종이, 신발 틀, 일정 금액, 브랜드 마크 등)로 열심히 신발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신발을 만드는 사람,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 돈을 빌리러 다니는 사람, 신발 재료를 사 오는 사람 등 역할을 분담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다른 가정보다 더 많은 신발을 생산해 시장에 상품을 내다 팔고, 최종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걸 게임의 승리 요건으로 알고 시작하게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각 가정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심지어 편법을 써서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더라도 모든 가정은 세금을 내지 못해 가정이 파산하고, 사채업자의 돈을 갚지 못해 생활비마저 떨어져 가족 구성원이 한 명씩 사망에 이르는 순간을 맞게 된다.
<짐바브웨 하이퍼인플레이션 당시 하락한 돈의 가치, 결국 통화 폐기 ->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6DvyTYBsJs>
신발을 내다 파는 시장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신발을 매입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상품을 매입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데, 다른 선생님이나 학부모님에게 그 역할을 맡기면 좋다. 종이가 조금이라도 삐뚤하게 오려져 있다거나, 상품 마크 위치가 올바르지 않다거나 하면 가차 없이 빠꾸(?)를 놓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한 명씩 죽어서 공동묘지로 가게 되는 상황이 닥치면, 시장에서 신발을 사주지 않을 때 눈물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다.
게임 설정상 3, 4주가 지날 때까지 각 가정에 큰 문제는 없다(한 주를 5분 간격으로 진행). 이때가지만 해도 각 팀별로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논의하면서 역할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5주가 지나면서부터 국제 정세 변화로 유류 가격이 요동치고 물가에 변동이 생기기 시작한다. 신발 재료 가격 급상승, 지주에게 상납해야 하는 월세 상승 등 참가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이 생긴다. 이때부터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빨라진다. 조그만 실수에도 큰 소리가 오가고 돈이 모자란 가정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 한 주씩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사채업자에게 갚아야 할 이자도 오르고, 신용이 떨어진 가정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게 된다. 지주와 사채업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법한 아이들에게 맡기는데, 상황이 이쯤 되면 지주, 사채업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공공의 적이 된다. 실제로 다른 아이들과 언쟁이 벌어지고, 중재하지 않으면 실제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최악의 상황으로 몰려가기 직전, 국제 원조라는 이름으로 각 가정에 신발 재료와 돈을 지급한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방방 뛰기도 하면서 기뻐한다. 하지만 국제 원조는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하는 전기 충격과 같은 효과가 있을 뿐이다(진행자 입장에서 약간 찔리는 순간이다.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어...). 결국 9주 차가 지나면서 파산하는 가정이 나타나고, 가족 구성원이 죽어 나가며, 이익을 남기는 가정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된다. 허탈한 표정의 아이들, 게임을 포기하는 아이들, 이자를 내라며 독촉하고 돌아다니는 지주와 사채업자들. 게임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종료된다. 이 짧은 게임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내뱉는 이야기들이 많은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돈을 버는 게임이라고 공지하고 시작하는 순간, 펜이나 지우개를 하나 빌려주더라도 돈을 받으려 하는 건 기본이고, 빨리 신발을 오리지(생산) 못하는 구성원을 향해 불만이 쌓여간다. 게임이 끝난 후의 아이들 소감.
"쉬지 않고 종이를 잘라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해 준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매일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오늘은 돌아가서 꼭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나중에 죽어서 공동묘지로 가 있는 게 제일 편했어요."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섬뜩하기도 한데, 실제로 우리나라가 노인 자살률 1위, 생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도태 등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여전히 직업=꿈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죽기 전에 테러를 하거나 다른 가정 돈을 뺏고 싶었어요."
"갚을 돈이 없을 때 차라리 가족 구성원 한 명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열심히 만든 신발을 시장에서 사주지 않아서 속상했어요."
사채업자와 지주 역할을 한 아이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토로한다.
"애들이 돈을 너무 안 갚아요. 저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도 냉혹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간접 체험하고, 부모님들이 너무 힘드신 것 같다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이도 있다(그럴 때 뭔가 울컥함). 자본주의가 무조건 나쁘고 갈아엎어야 할 체제라고 인식하지 않도록 후속 모임이 중요하다. 적어도 네다섯 번 정도는 자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차근차근 접근해 가야 한다. 실제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능력을 키워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주제를 던지고 글도 쓰고 토론도 해봐야 한다. 단순한 접근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빈곤 게임을 할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되고는 하는데,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을 하고는 한다. 코로나 19 이후, 인류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만은 되지 않길. 그래도,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생각하고 아이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