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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덤 Sep 16. 2021

근로? 노동?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사회


"불평등을 완화해야 성장이 빨라진다는 OECD 공식보고서도 있다. 2014년 OECD는 <불평등과 성장>이라는 이름의 리포트를 내고 낙수 효과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OECD 회원국의 1985년부터 2005년까지의 지니계수(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0'은 완전 평등, '1'은 완전 불평등)와,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누적성장률을 사용해 분석을 했더니, 지니계수가 0.03포인트 악화되면 경제성장률이 무려 0.35%씩 떨어진다는 게 확인이 된 것이다."  - 『눈 떠보니 선진국』(박태웅 / 한빛비즈)


최근에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내 이름은 3번 시다』라는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평화시장의 미싱사와 보조(시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바보회' '근로기준법' '빨갱이' 같은 단어를 통해서 그 시대의 상황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할 수 있게 소설로 그려낸 책입니다. 


오빠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하루에 15간 내외의 노동에 내몰리면서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인지하지 못하던 시대의 이야기에 현재를 사는 학생들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돼요?"


당시의 미싱사, 시다들은 함께 책을 읽은 아이들 또래였지만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당했습니다. 당연히 배우지 못했다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책 속에서 시다들을 무시하고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을 비판하고 정의감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책을 계기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노동으로 주제를 좀 더 파고 들었습니다. 노동과 근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노동하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노동'하면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공장' '힘든 일' '안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 '주인과 노예' '육체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협력하는 작은도서관의 관장님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너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힘들게 돈 벌어야 된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공부를 안 하면 힘든 일을 한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노동자'가 된다. 노동자가 될 거라는 말은 거의 저주와 비슷한 효과를 지닙니다. 모든 아이들이 미래를 이야기할 때 '공부'를 디폴트 값으로 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관심 있는 활동보다 더 중요한 게 공부니까요.' 

'그 시간에 공부를 좀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험이랑은 상관이 없잖아요.'  


다소 기이한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땅히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걸 배웠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10% 안에 드는 일자리와 부를 획득하는 게 '성공'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 


제가 감히 한국 사회를 논할 깜냥은 아니지만,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학생들에게까지 뿌리 깊게 내려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사회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불평등을 해소해야만 실제로 한 사회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실증 데이터도 있는데,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다양한 주제로 함께 읽고 쓰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함께 공유할 뿐입니다. 이 땅에 유토피아가 실현되기란 매우 어렵겠지만, 앞으로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니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아 근데 진짜 어렵습니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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