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연락할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하고 살아왔던 민망함과 미안함, 그리움과 주저했던 마음. 연락할 여유가 없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 견디고 지내왔던 시간. 그 모든 것들을 다 생각하지 않고 연락을 해야 했다. 시집을 냈다고, 떠나온 섬에 여전히 있는 그들에게 내가 드디어 시집을 냈다고 기별을 해야 했다. 내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깊이 생각하기 전에 알던 나의 사람들. 그때 나는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잘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할 줄 알던 아이였다. 무언가가 되고 싶었을 때부터였고, 섬을 나와서 혼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웃지 않고 예민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잘 있었다고, 그래도 시를 놓지 않고 있었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시를 쓰려고 했던 내가 시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위안이 될 테니까. 십여 년 만에 친구들의 근황을 묻고 그들이 키워낸 아이들의 나이를 묻는다. 다른 건 몰라도 시집은 그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었다. 그동안 연락 못 하고 살아온 나의 일상을 다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쓴 시를 읽으며 나의 삶을 조금 가늠해주고 조금이라도 나를 사랑해주길. 주소를 묻고 소포를 포장하고 주소를 가만가만 썼다. 아주 큰 에코백을 꺼내 소포와 택배 상자를 담고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손에 또 다른 택배 상자를 들고 매일 우체국에 갔다. 바다를 건너, 내 시집이 편지처럼 그들에게 도착하길. 그들에게 무심했던 시간 동안 나는 지독히도 그들이 그리웠다. 그리웠던 만큼 연락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만나기 어려울 테니, 목소리도 듣기 싫었고 안부도 전하기 싫었다. 옹졸했던 나의 시간이 모여 나의 시가 되었다. 후,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