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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Nov 23. 2021

얼굴에는 비밀이 많다

관상과 인상

얼굴에는 비밀이 많다     


“맞아요. 바로 이거예요. 교수님! S그룹 회장님의 생각이 제 고민하고 어쩜 이렇게 똑같지요. 저도 지금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납품업체 사장을 뽑고 싶어요.”

“지금은 예전과 환경이 상당히 다르잖아요? 업체에 대한 정보나 자료 등도 넘쳐나고 얼굴만 가지고 판단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요?”

“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요즘도 신입사원 면접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서류나 이력서만 보고 뽑지는 않잖아요? 저 역시도 업체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보면 완벽하거든요. 거래를 트기 위해서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면 어떡해요. 결국은 업체 사장님들과의 면담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K의 말은 실제로 거래를 해보면 선정된 업체들이 엉망이다, 이건가요?”

“네. 제가 진짜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엄청 들지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장 납품 일자를 지키지 않아요. 그래서 또 윗분들한테 엄청 깨지고. 최근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거든요.”

“그래서 얼굴 보는 법을 나한테 배우고 싶다?” 

“네. 교수님이 퇴사하기 전에 얼굴에 관한 공부를 하시지 않았나요? 지금도 대학에서 연구하고 계시고요.”

“10년 전 일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아무튼, 얼굴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직접 해 보니까 그래요. 얼굴엔 비밀이 너무 많아요.”     


그렇다. 얼굴에는 비밀이 많다. 인간의 얼굴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증명하고 느끼고 연기한다. 특히 눈이나 코 입술 등의 중요한 기관들이 다양한 조화를 이루면서, 각 개인의 수많은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얼굴에 표현한다. 인간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할 때부터 얼굴을 통해 상대를 알고자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얼굴이라는 여백에 담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인간은 갖가지 표정을 발명하거나 발견해 냈다. 그래서 그만큼의 비밀이 얼굴에 담겨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좀 더 다양하고 세련된 얼굴표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인간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얼굴이 전하는 언어는 한계가 없다고들 말한다.     


얼굴의 기본요소라고 할 수 있는 눈이나 코 입술, 이마 등은 그 자체만으로는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생기를 띠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수한 표정을 입체적으로 생산해 낸다. 얼굴이라는 무대는 비록 작고 비좁지만, 눈과 코 그리고 입술 등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만들어 내는 인상이나 표정은 헤아릴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똑같은 무대 위에서 눈, 코, 입술이라는 단역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많은 수많은 드라마가 연출되는 셈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늘 같은 얼굴은 아니다. 얼굴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미세한 변화가 그 질서정연한 배열과 고정된 의미를 순간순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얼굴들이 존재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얼굴을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교수님 말씀대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제가 얼굴을 통해 상대방의 운세를 점치거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준까지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그 경지까지 도달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래도 가끔 대선 후보들을 놓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 얼굴 평을 하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뭐 이런 대사도 한때 유행했고요.”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부터 축적되어 온 관습의 산물이라고 봐요. 요즘처럼 어마어마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개인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잖아요?”

“교수님 말씀은, 관상이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과거의 관습은 관습대로 의미가 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투영된 것이니까요. 다만 오늘날 관상이나 인상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예요.”

“그 말씀은 어떤 업체 사장이 우리 회사와 성실하게 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지, 얼굴로 판단할 수는 있다는 의미지요? 네, 교수님.”

“음~.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얼굴에는 근육이 40여 개가 있다. 이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조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표정연구의 전문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의대 심리학과 폴 에크먼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얼굴 근육 2개만으로 300가지의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근육 3개로는 4000가지가, 5개로는 1만 개 이상의 표정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때 근육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육이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피부의 주름, 코나 입의 움직임을 볼 뿐이다. 또 시선이나 머리의 움직임, 안색의 변화, 동공의 확장 같은 얼굴의 물리적인 반응을 관찰할 수도 있다. 그런데 표정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단순히 얼굴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물리적인 변화에 따른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 상태까지 파악해야 얼굴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얼굴은 언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하고 복잡한 의사소통의 신호라고 불린다. 즉 얼굴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K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숨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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