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인상
얼굴과 마음의 상관관계
흔히들 누군가를 평가할 때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인간이 타인을 평가할 때 맨 먼저 들이대는 잣대는 외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때 갖게 되는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우리는 매력 또는 호감이라고 부른다. 물론 상대방과 공유하는 시간의 양과 자신과의 기호나 취미의 동일성이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 기호, 취미는 외모만큼이나 순간의 파괴력이 크지 않다. 즉 인간은 외형을 가지고, 호감과 비호감을 직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외모 중에서도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얼굴임은 당연하다.
외모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하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이 자신의 저서 'Silent Messages'에 발표한 이론이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상대방에 대해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이 하는 말로 판단하는 경우는 겨우 7%이고, 36%가 목소리의 질과 톤, 55%는 얼굴표정에 따른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반 이상은 상대방의 얼굴표정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K가 원하는 것처럼 업체 사장의 얼굴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얼굴을 보고 상대방의 내면에 들어있는 태도와 자세를 유추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업체 사장이라면, 보이는 얼굴과 보이지 않는 마음이 일치할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 인간은 의식적으로 좋은 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감정 노동자가 대표적인 경우다. K와 거래를 원하는 업체 사장님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면 상대가 싫어한다는 사실, 그러한 사실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본래 마음과는 다른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려고 한다. 결국, 얼굴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거짓이라는 말의 어감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마음속과는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행위이다. 실제로 이런 연기력(?)은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훌륭한 능력이자 장점이다. 이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감정조절에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조직에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이렇듯 가슴 속으로는 울분이 솟구침에도, 얼굴은 미소를 띠며 생활하는 것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다. 인생의 많은 시간이 얼굴과 마음이 서로 거짓말을 하며 부대낀다. K를 배신(?)했던 사장들도 가격이나 거래조건 등에 무언가 불만 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얼굴에 싫은 표정을 남기지 않았을 뿐이다. 감히 ‘을’ 주제에 ‘갑’ 앞에서 함부로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K가 알아차리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
“교수님 설명은 사람의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좋은 표정은, 일상생활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예를 들어, 상갓집에 가면 내가 좋든 싫든 엄숙한 얼굴표정을 지어야만 해요. 생각해 봐요? K도 회사에서 상사와 함께 단둘이 있을 때 의식적으로 표정관리를 하지 않나요?”
“듣고 보니 맞는 말씀 같네요.”
“그래서 얼굴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는 거예요. 같은 인상을 쓰더라도 뭔가에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기분이 나빠서인지,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얼굴 공부가 갈수록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더구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의 얼굴표정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해졌어요. 이 말은 곧 예전의 기준으로 오늘날의 인상을 평가하기란 한계가 있다는 의미죠.”
“얼굴표정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눈이나 코 그리고 입술, 이마 등의 크기나 모양만으로 판단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그게 예전의 방식이지요. 평면적이고 선천적인 방법과 기준이 잣대거든요.”
다행히도 인간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표현될 때와 억지로 표출될 때의 얼굴에는 차이가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의 얼굴은 오묘하게도 근육 40여 개가 수천 가지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물론 희로애락 등 기본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눈과 눈썹, 코와 입 그리고 입술 등이 수시로 불려 나온다.
예를 들어 윗입술이 들리는 것은 편치 않은 상황에서, 얇아지는 것은 화가 치밀 때 나타난다. 눈썹 안쪽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슬플 때 드러나는 현상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불편함을 감추고 싶은 사람은 입(술)꼬리를 올려 속마음을 감추려고 하지만, 어설프게 했다가는 다른 근육이 협조해 주지 않아 예매한 얼굴표정이 연출되기 쉽다. 남들에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른바 엄중 모드(mode)의 캐릭터는 양 입술을 지그시 눌러 올라가려는 입(술)꼬리를 내리지만, 눈 주변 근육은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그 속마음을 알아챌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 수사에서도 얼굴표정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자기 잘못을 순순히 자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눈과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다. 반면에 입으로는 잘못을 말하면서도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사람은, 그 고백의 순수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흔히 TV 뉴스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청사나 구치소로 향하는 피의자나 용의자들을 보면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담담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색한 얼굴표정 변화가 오히려 그 진실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얼굴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알게 모르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 K가 그런 얼굴의 비밀을 알고자 한다.
“교수님이 가르쳐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음~. 우선 시간은 이렇게 합시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1~2시간 가량 얼굴에 대해서 애기해 봅시다. 굳이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난 목요일 오후 6시 이후가 괜찮은데, 어때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교수님만 괜찮으시다면.”
“그래요, 그럼. 장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학교의 내 연구실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