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학당은 어떻게 한국어교원을 착취하는가
한국어교원 대다수는 신분이 불안정하고 급여가 박합니다. 하루빨리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개선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학교와 협의(협의라고 읽되 투쟁이라 새기시기 바랍니다.)를 해야 합니다. 협의에는 함께 논의할 토대가 필요합니다. 주먹구구로나마 어학당의 수입을 어림잡고 지출을 따져보았습니다. 한국어교육은 사업이 아니라 교육입니다. 잘 가르치려다 보니 투입되는 노동은 많은데, 어학당은 한국어교원의 지식 노동, 감정 노동을 착취합니다. 새삼 옛 문장을 불러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어학당은 외국인 어학연수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등록금을 받습니다. 이게 매출의 전부입니다. 부수입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없거나 적습니다. 한국어 교재에서 나오는 인세 수입, 정부나 기업체에서 발주하는 한국어 위탁 교육, 한국어 교육 앱 개발 같은 프로젝트 등이 부수입입니다만, 대다수 어학당이 자체 교재를 만들지 않으며 규모가 크지 않아 위탁 교육이나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합니다. 결국, 어학당에 등록하는 어학연수생 수가 매출을 좌우합니다. 어학당마다 학생을 늘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이유입니다. 위 표는 한 학기 3개월(10주 수업과 3주 방학)을 기준으로 한 매출입니다. 이번 학기에 400명이 등록을 하면 매출 총액은 6억 원입니다. 물론 장학금이나 등록금 감면 같은 제도를 운영한다면 매출은 더 줍니다. 연간 네 학기를 운영하니 곱하기 4를 하면 1년 치가 나옵니다. 이제 가상의 두 어학당을 통해 지출을 계산해 보겠습니다.
우선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2%를 카드사에 수수료로 냅니다. 카드가 있어 여러모로 편리합니다만 1천 2백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규모가 큰 어학당에서는 카드사 수수료만 연에 1억이 넘습니다. 소상공인을 위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낮춘다는 뉴스를 들을 때면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내 일이었습니다. 노사가 힘을 모아 카드사에 맞서야겠습니다.
다음은 소위 오버헤드(overhead)라고 하는 간접비입니다. ‘간접’이라는 말 그대로 한국어교원 인건비와 같이 직접 드는 비용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사용되는 비용입니다. 음으로 양으로 학교 덕에 한국어 수업을 합니다. 어학당 건물도 유지・보수하고 전기, 수도 공과금도 냅니다. 그런 비용을 학교는 간접비라는 명목으로 한데 모아 처리합니다. 일단 매출이 생기면 간접비부터 제하는데 비율이 학교마다 다릅니다. A학교는 35%로, B학교는 15%로 정했습니다. 듣자 하니 40%인 곳도 있다는데, 10%인 곳은 여태 못 들어봤습니다. 위 표로 보면 A어학당은 매출 6억 가운데 2억 1천만 원을, B어학당은 9천만 원을 대학 본부로 보냅니다. 간접비 비중이 높을수록 학교의 수입은 늘고 한국어 교원의 몫은 줍니다. 이제 노(한국어교원)와 사(학교)가 대립합니다. 노(勞)는 비율을 낮춰 임금을 올리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하고, 사(使)는 비율을 높여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고자 합니다.
고용이 불안정하면 삶이 표류합니다. 고용 형태가 최우선입니다. 10주 단위로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면 노동자는,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는 맷돌에 갈립니다. 대학 어학당의 한국어 교육은 상시・지속적 업무로서 2년 이상 지속되기에 무기계약이 마땅합니다. 물론 엄밀히 말해 무기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으로 정년을 보장할 뿐입니다. 무기계약이 곧바로 근로조건 향상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만, 대개 무기계약에는 향상된 근로 조건, 그러니까 4대보험과 퇴직금이 따라옵니다.
학교는 무기계약을 해주면(정확히는 더불어 4대 보험에 가입하고 퇴지금을 지급하면) 지출이 늘어납니다. 위 표대로 월급이 267만 원일 때 사업주의 4대보험 부담금은 한 달에 약 26만 원, 석 달에 78만 원입니다. 1년 이상 계속 근무한 근로자가 퇴직하면 사업주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퇴직 때 지급하니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훗날을 생각해 미리 적립해야 합니다. 1년 근무에 최소 267만 원이니 석 달이면 약 67만 원입니다. 이 또한 지출이고 비용입니다. 기간제, 그중에서도 초단시간 근로자로 계약하면 학교는 4대보험과 퇴직금을 피하지만, 한국어 교원은 삶이 피폐해집니다.
현재 한국어 교원 중에는 ‘정규직’이 없습니다. 정규직은 이미 터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한국어 교원은 신생 직업으로서 태생이 계약직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어학당이 정년을 보장하는데 여기도 처우는 열악합니다. 다른 어학당 한국어 교원의 처우가 워낙 형편없어서 이 두 곳이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일 뿐입니다. 4대보험과 퇴직금을 동반한 무기계약은 한국어 교원이 생활하는 데, 업을 이어가는 데, 사회에서 한 직업으로 바로 서는 데 필요 최소한입니다.
이렇게 단락을 마무리하려는데 화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고작 무기계약을 두고 이토록 찬양하는 글을 써야 하나 싶습니다. 기간제가 당연한데 무기계약을 해주니 하늘 같은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하도 기간제가 만연하다 보니 무기계약따위가 대단해 보일 뿐입니다. 1997년 IMF 사태 전에는 모두가 정규직이었습니다. 어휘는 신생・성장・소멸합니다. 기간제와 무기계약직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기물입니다. 어서 빨리 소멸시키고 논의는 정규직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이 떠오릅니다. 저 높은 곳에 이데아가 있고,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며, 시는 그런 현실의 모방입니다. 이데아에서 두 단계나 떨어진 시는, 그리고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은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노동은 오직 이데아에만 존재합니다. 정규직이라 해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이기에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불완전한 정규직을 더 불완전하게 모방한 게 무기계약직입니다. ‘기간의 정함이 없’을 뿐 처우는 처참합니다. 무기계약직만 해도 이데아와 거리가 한참이라 추방해야 하거늘 인간성과 삶을 압살하는 기제인 기간제라면 공화국의 수치(羞恥)이겠습니다.
강의 시수부터 챙겨야 합니다.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산재보험만 의무가입 대상이며 근로기준법상 유급주휴일과 주휴수당, 연차유급휴가와 연차수당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1년 이상 근무해도 퇴직금을 받지 못합니다. 2년을 넘게 일해도 기간제법에 따른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물론 주당 ‘강의’ 12시간이 주당 근로 15시간 미만은 아닙니다. 강의를 12시간 하자면 강의 준비와 숙제 검사만 해도 시간이 한참이기에 근로 시간은 강의 시간보다 깁니다. 판례에서도 강의 준비와 학사행정업무 처리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들어 근로 시간을 강의 시간보다 길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판례는 판례이고 현장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또 남습니다. 사(使)는 주당 강의 시간부터 줄이려 하지만, 노(勞)는 주당 강의 시수가 많아야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시간당 강의료도 중요합니다. 기간제라면 시간당 강의료가 곧 임금입니다. 무기계약이더라도 시간당 강의료가 기본급과 초과 강의료 산정의 근간입니다. 당연히 사(使)는 내리려하고, 노(勞)는 올리려 합니다. 서로 방향이 다르니 얼마가 적정한지 답을 내기 어렵습니다만 일단 매출액의 50%가 기준이었으면 합니다. 한 개 반 12명이 150만 원씩 내니 한 반 매출이 학기에 1800만 원입니다. 이 가운데 900만 원을 한국어 교원에게 돌아가는 임금 총액으로 잠정 합의한 후 시간당 강의료를 역산(逆算)하면 좋겠습니다. 위 표에서 B어학당이 그 정도입니다.
수당은 고용 형태에 따라 명목이 달라집니다. 기간제로 계약하여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다면 강의료는 강의의 대가일 뿐이니 강의 외의 업무는 따로 돈을 받아야 합니다. 가령 분반 시험, 시험 문제 녹음 등을 하나하나 수당으로 책정해 지급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마저도 외면하고 거부하는 학교가 다수입니다. 그런 학교에 맞서 각종 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만, 건건이 수당으로 요구하기보다 강의료 자체를 올리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위 표에서 두 어학당의 시간당 강의료를 3만 원과 4만 원으로 달리 한 이유입니다.
아울러 무기계약을 전제로 한 수당 체계로 옮겨 가야 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보직수당 등이 적절한 명목입니다. 밥은 먹고 수업해야 하니 급식비가 나와야 합니다. 설과 추석은 민족의 대명절이니 명절휴가비가 필요합니다. 여럿이 함께 수업을 준비하고 운영하려면 팀장이 필요하고 팀장에게는 권한과 책임만큼 수당을 줘야 합니다. 한 달에 정액급식비 10만 원, 설과 추석에 명절휴가비 40만 원씩이면 1년에 200만 원, 석 달이면 50만 원입니다. 이게 최소한이고 이게 도리(道理)겠습니다.
반당 학생 수는 수익과 교육의 갈림길입니다. 1명, 2명이 ‘그래 봐야 한두 명’이 아닙니다. 한 반에 몇 명을 넣느냐에 따라 한 학기 전체 반 수가 결정됩니다. 표에서 보듯 12명인지 14명인지에 따라 전체에서 4~5반이 늘고 줍니다. 사(使)는 반마다 학생이 14, 15명씩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강의료는 반당 학생 수와 상관없이 시간에 따라 지급되기 때문입니다. 반에 학생이 많으면 강의료 지출이 줄어 상대적으로 수입이 늘지만, 강의하는 처지에서는 가르치기가 힘듭니다. 한 반이 16명이라면 발음 하나를 확인하려 해도 학생은 한 번 발음해 보고 나서 나머지 15명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16명의 발화 오류를 고치고 숙제를 확인하려면 수업도 숙제 검사도 힘에 부칩니다.
노(勞)는 반수를 늘려 효과적으로 수업하고자 합니다. 반에 학생이 8명 정도면 교육 효과가 참 높겠다 싶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zoom으로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면 학습자가 적어야 수업이 효과적입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어학당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행정실은 한 반 8명으로는 강의료도 안 나온다면서 반을 개설할 수 없다며 강경합니다. 적으면 10명, 많으면 14명으로 해서 12명 안팎에서 합의를 봅니다. 12명이면 모듬활동하기에도 2, 3, 4, 6명씩 자유롭습니다.
이제 총 매출액에서 27%에서 33%가 남았지만 남은 게 아닙니다. 남은 지출 항목이 아직도 많습니다. 역시나 인건비입니다. 사무실 직원, 청소・경비, 시설 관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학생들의 지원, 등록, 등록금 납입 그리고 각종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 직원이 여럿 계십니다. 건물을 청소해 주시고 경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학당 홈페이지와 LMS, 100대가 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관리해 주시는 전산실 선생님도 계십니다. 빔프로젝터 같은 기자재를 비롯하여 강의실 화이트보드부터 형광등까지 시설을 관리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분들 덕분에 한국어 수업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온당히 대우해 드려야 합니다.
기자재도 필요합니다. 교실마다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들어갑니다. 연구실 컴퓨터도 시간이 지나면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복사기 임대 비용에 복사용지 같은 소모품 비용도 듭니다. 빔프로젝터 램프는 왜 자꾸 터지고 화이트보드는 어찌 그리 쉬 지저분해지는지. 학기에 한 번 학생들과 교실 밖으로 나가는 문화 수업(요리 교실, 연극 관람, 판문점 견학 등)에도 돈이 듭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는 한 대에 500만 원이 넘는 체온감지기도 들여놓고 컴퓨터마다 웹캠도 달았습니다. zoom으로 수업하려면 모니터가 최소 두 대여야 합니다. 얼마나 알뜰하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만, 돈이 없지 쓸 데가 없겠습니까?
매출은 같아도 지출은 판이했습니다. 표의 여러 항목이 제각기 영향을 끼친 결과 한국어 교원 인건비가 A어학당은 17억 6천만 원, B어학당은 33억 8천만 원으로 대략 갑절입니다. 이제까지 전해 들은 이야기로 A어학당을 가정했습니다만, 한국어 교원 전원을 기간제로 해서는 운영이 안 됩니다. 현실에서는 (극)소수의 중간관리자와 (대)다수의 기간제로 구성합니다. 지주가 마름을 두어 소작을 부리는 바로 그 방식입니다. B어학당은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를 모델로 삼아 수치를 가감했습니다. 실제로 구성원 전원이 무기계약직이고 처우는 표보다 좋습니다.
두 어학당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A어학당은 수익을, B어학당은 교육을 지향합니다. 현실에는 A어학당이 많고 심지어 A어학당들이 모여 '한국어교육기관대표자협의회(약칭하여 한대협)'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부단히 활동합니다. 대학은 한국어교육을 사업으로, 어학당을 수익 기관으로 여깁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기관에서 교육에 힘을 쏟기보다 수익을 좇습니다. 한국어 교원 인건비를 쥐어짜고 간접비를 늘립니다. 대학은 수익을 얻지만, 한국어 교원은 맷돌에 갈리고 한국어 교육은 시들어갑니다.
교육은 사람이 합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치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교육 분야가 이제까지 정보화에 가장 늦었다는 평도 새삼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회귀하지는 않으리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단순히 e북을 넘어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담은 교재도 만들어야겠고, 복사기로 종이에 복사해서 하던 활동도 어플로, 온라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여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 같은 새 교수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LMS(Learning Manangement System)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 내의 한국어 교육 기관은 한국어를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러는 가운데 한국어 교원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2021년 1월에 경희대학교에서 큰일이 있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한국어 교원이 무기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4대보험에 가입되고 퇴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년과 주당 최소 8시간 수업을 보장받았습니다. 이것을 사측(경희대학교)과 노측(한국어 교원)의 협약이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합의했습니다. B어학당 같은 곳은 극히 적습니다. 교육을 향하도록 추동하는 세력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학교를 멈춰 세우고 돌려서 한국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B어학당처럼 만들면 좋겠는데, 누가 어떻게 할까요? 이제껏 이 물음 앞에서 내쉰 한숨으로 땅이 꺼져버렸습니다. 수익에 눈이 먼, 큰 학교에 일개 한국어 교원이 어찌 감히 맞서겠습니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혼자서는 못 답니다.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 일개 계약직 시간강사가 행정실장에게, 기관장에게 “간접비 비율을 낮춰 주세요!”라고 말이나 꺼낼 수 있을까요? 말을 꺼내는 것은 고사하고 계약서 내용과 근로 조건을 논의하는 자리라도 마련할 수는 있을까요? 시간당 강의료 25,000원은 너무 적으니 강의료를 1,000원만 더 올려 달라고 말이라도 당당하게 할 수는 있을까요? 규모는 작은데 사제 관계, 선후배 관계로 얽힌 어학당에서 부당한 지시라고 해서 거부할 수 있을까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네요. 교육을 지향하는 어학당은 노동조합 없이 불가능합니다. (원고지 39매)
추신:
한국어교육, 한국어교원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십시오. 글로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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