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회사지만 저는 IT를 공부하던 사람으로 은행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은행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과거]
취업 전 방문한 은행은 공기업 같이 그냥 단순 민원 업무만을 처리하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눈치재지 못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일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행, 그리고 연수를 마친 뒤 첫 지점으로 발령받았을 때 함께 일하던 부지점장님은 은행에 대한 자부심이 많던 분이셨습니다. 산업화와 IMF를 겪으며 은행은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수혈해주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며 피를 공급한다는 뜻의 경제 동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입인 저는 그 말을 듣고 은행이 어떤 곳인가 한방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깨달음을 얻고 보니 은행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은행은 비이자 수익을 내기 위해 금융 상품 판매도 하지만, 본질은 예금과 대출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이익(예대마진)이 기본이었습니다.
부지점장님의 얘기가 없었더라면 아마 저 큰 틀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은행은 예대마진이 기본이며 그 안에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은행입니다.
[현재]
현재의 은행은 예대마진을 베이스로 하고 거기에 덧붙여 상품 판매(비이자 수익)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비이자 수익을 늘리라는 금감원의 요구사항, 이자로 땅집고 헤엄쳐서 장사한다는 여론의 영향이 큰 탓이지요.
은행의 영업점은 많은 고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채널이기에, 그 안에서 영업을 통해 다른 금융회사의 상품을 대신 팔아주고, 소정의 수수료를 얻고 있습니다.
흔히 은행원들이 실적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상품 판매이며 줄을 세우고 경쟁을 시킵니다.
전통적인 예금과 대출은 더 이상 크게 실적으로 잡히지 않으며, 주객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또한, 이렇게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지만 상품이 워낙 다양해 직원들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기에 무리한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DLF나 사모펀드 사태는 무리한 판매 영업을 하다 발생한 문제로 많은 고객이 손실을 본 사건이지만, 보통 일방적인 경우에 판매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완전 판매인 경우)
비대면도 상황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카카오 뱅크를 보면 기존 은행과 닮은 듯 다른 그런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뱅크가 생기고 새롭게 출범한 카카오 뱅크는 처음에는 예금 대출 상품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발판을 만든 뒤 다른 금융사들과 협력하여 제휴 카드 판매, 증권계좌 등 비이자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카카오 뱅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임원들은 왜 은행을 만들어야 되는지 물었고, 그 답은 대접을 못 받는(under-served)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중금리 대출)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중금리 대출보다 상품 판매에 더 치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은행은 예대마진, 비이자 수익을 대신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은행은 아직 위 두 가지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현재의 은행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네요.
[미래]
미래의 은행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제가 예측할 정도로 똑똑하다면 저는 제 사업을 시작해야겠지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아니다'
'(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
미래에도 금융 자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입니다. 돈이 있는 곳엔 항상 금융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은행이 지금처럼 돈을 받고 돈을 빌려주고 단순 중개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돈의 중재자 역할이라는 라이선스 사업은 아직 유효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IT 회사들이 어떻게든 우회방법을 찾아 유사하게 만들어 낼지 모릅니다.(스타벅스 선불카드, 네이버 페이 포인트 등)
다만, 제가 예상하는 몇 가지 방향은 있습니다.
첫 번째, 인공지능의 활용이 두드러질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인공지능은 숫자와 깊은 연관이 있거나, 복잡하고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사람보다 더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금융이라는 분야는 숫자와도 깊은 연관이 있고, 막대한 데이터 + 사람의 심리가 섞여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더 빛을 발휘할 것 같습니다. (건설 산업군 보다 금융 산업군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더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잘하는 회사가 금융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어 극강의 수익률을 만들어야 하는 액티브 펀드는 인공지능이 전부 대체하기 어렵겠지만, 인덱스 펀드처럼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는 인공지능으로 전부 대체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금융회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네요.
두 번째, 금융산업은 신뢰에 대한 가치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비트코인(블록체인)이 처음 나왔을 때 주목받았던 것 중 하나는 해킹이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기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구조 덕분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은 유효합니다.
집을 사거나, 전세대출을 받을 때 휴가까지 내가면서 은행에 방문하는 이유는 신뢰라는 감정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엄청나게 큰돈을 들이는 일이기에 걱정, 불안함을 잠재우고 싶고, 내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며 신뢰를 쌓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세상이(금융이) 더 복잡해질수록 신뢰라는 감정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XAI(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이 완벽해질 때까지
사람이 그 역할을 해야 되며, 데이터에 기반한 신뢰를 만드는 것이 미래의 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은행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최고의 성과물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그런 말을 합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점점 더 죽어가는 산업이라고, 아직까지 현재에 많은 돈을 축적하고 있지만 미래의 성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 말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아직 너무 많은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