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2019년 4월에 처음 시행된 제도로,
많은 금융회사들에게 신사업의 기회를 열어주었으며, 곧 있으면 3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라는 말을 처음 들으시는 분들도 있을 거고, 틈틈이 나온 기사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대충 짐작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금융규제 샌드박스란?
먼저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금융회사(은행)는 금융위원회의 허가에 따라 라이센스를 받아 금융업을 영위하지만, 많은 제약이 따라붙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제약을 받습니다.
은행의 본래 목적은 국가를 대신해 돈을 중개하라는 의미로 라이센스를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본업을 소홀히 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은행법으로 규제를 정해,
본업 외 다른 사업은 하기 힘든 구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은행의 업무를 예상해 포지티브 방식으로 정해진 것만 명시해 놓은 형태인 것입니다.
은행의 업무에 관해선
은행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좀 더 쉽게 설명된 건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모 시중은행 투자설명서의 일부인데 은행의 업무를 세 개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 시중은행의 전자공시시스템 투자설명서에 나온 은행의 영업 종류
간단히 말하면 은행의 업무는 은행법에 따라 고유업무, 겸업업무, 부수업무로 나누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고유업무 : 예적금, 대출 등 허가받은 은행만이 할 수 있는 업무
겸업업무 : 투자상품 판매 대행, 신탁, 연금 등의 은행법이 아닌 금융업무
부수업무 : 은행 캐릭터 라이센싱, 상품권 판매 등의 고유업무를 영위함에 있어 당연히 부수되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업무
이렇게 업무의 분류에 따라 은행이 새로 도전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부수업무가 되며, 이는 금융위의 신고를 통해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이하게도 하나의 은행이 신청한 부수업무가 수리되면 모든 은행이 동일한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수업무를 신청해도 은행 고유업무와 연관성이 커야만 인정되곤 했으며, 웬만하면 잘 허가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과거에 부수업무로 인정받은 업무를 살펴보면 거의 다 고유업무에 수반되는 자투리 업무가 많았습니다.)
즉, 이걸 다시 말하면
은행은 카카오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굿즈를 생산해 돈을 벌거나 혹은
타 분야의 플랫폼이나 구독 서비스를 런칭해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입니다.
위와 같은 한계 때문에 다른 대기업이 하는 신사업(중개 플랫폼, 알뜰폰 등)에 발을 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IT회사들이 다양한 산업에 문어발처럼 확장하여 금융업에도 침범하기 시작했으며, 스타벅스, 네이버 페이와 같은 곳이 유사수신(포인트 충전 등)의 형태로 사업을 시작하자 금융업도 이제는 변화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입니다.
금융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고, 규제로 인한 사업화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는 2019년 4월 1일 금융혁신 지원 특별법을 시행하여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되면 2년의 사업 독점권(위에서 말한 부수업무처럼 타 기관에도 동일하게 수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타 기관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을 가지게 되었고,
한차례 연장을 통해 2+2 최대 4년까지 신사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금융 회사는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정말 말 그대로 샌드박스(모래사장)처럼 전혀 연관 없던 다른 사업에 진출해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게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제도는 곧 3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과연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어떤 회사가 신사업의 기회를 얻어 잘하고 있는중인지,
반대로 기대감은 높았으나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던 서비스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2.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서비스
1) KB국민은행 - 리브엠(알뜰폰)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시장에 공급자로 참여했습니다.
기존 중형 회사들밖에 없던 알뜰폰 시장에 메기로 참가했고, 낮은 가격, 금융과 통신의 융합을 수단으로 나름 꽤 많은 알뜰폰 가입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무제한 요금제는 고작 2만 원 밖에 되지 않고(물론 이건 다른 알뜰폰 회사들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기존 알뜰폰에 없던 5G 요금제, 알뜰폰을 가입하는 것만으로 KB국민은행의 등급이 올라가고, 적금 상품과 연계 가입하면 통신요금을 할인해 주는 등 기존 사업자들이 할 수 없던 혜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멤버십 제도를 만들어 1년에 몇 번씩 기프티콘을 주는 등 알뜰폰 시장에서 신선한 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가입자는 대략 20만 명 정도로, 대형 통신사에 비해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막 시행된 초기 무렵 지정된 서비스로 이미 2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연장 심사에서 사업성을 추가로 인정받아 한차례 연장을 받은 상태입니다.
물론 순탄치 많은 않았습니다.
2년 연장 심사를 할 즈음 리브엠은 노사 갈등의 씨앗이 됐습니다. 국민은행 노조 쪽에선 리브엠이 “은행 고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압박이 심했다”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취지에 어긋났다고 주장했으며, 연장을 반대했었습니다.
다행히 부가적인 조건을 다는 조건으로 연장에 성공했습니다.
(지역그룹 대표 역량평가 반영 금지, 음성적인 실적표(순위) 게시 행위 금지, 직원별 가입 여부 공개 행위 금지, 지점장의 구두 압박에 따른 강매 행위 금지 등의 부가조건)
물론 여전히 잡음은 남아 있습니다.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해 중소기업 죽이기를 하고 있다며, 독과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다시 한번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과연 리브엠은 4년의 기간이 끝난 뒤 어떻게 사업이 진행될까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가입자들을 되돌릴 수 없기에 은행의 부수업무가 되고 다른 은행도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20~30만 사용자들이 전부 통신사를 다시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나름 성공적인 서비스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더 궁금해지는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2) 신한은행 - 땡겨요(배달앱)
이 서비스 역시 은행이 만들어낸 전혀 다른 플랫폼입니다.
금융과 배달앱이 어떤 유사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일단 막상 서비스를 써보면 앱은 잘 만들었습니다.
UI/UX도 깔끔하고 속도도 빠르고, 심지어 2% 라는 착한 수수료까지 명분도 충분합니다.
여기에 맛스타 리뷰라는 기능은 인스타처럼 본인이 먹은걸 자랑하는 SNS 기능까지 넣어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서비스 초기라 입점한 가게가 별로 없고, 쿠팡 이츠나 배민처럼 1건 배달이 없는 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신한은행은 이 앱을 통해 어떤 금융서비스를 선보이려고 하는 걸까요?
일단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음식점 점주들을 위한 소상공인 사업자 대출, 빠른 판매 정산 서비스, 땡겨요 페이(신한카드), 땡겨요 배달 라이더 대출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그래도 금융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은 있지만, 이런 서비스를 해서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면, 음식점 점주도, 고객도, 라이더도 굉장히 많아야 됩니다. (박리다매의 형태로 낮은 이율의 대출, 높은 포인트 적립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중에 나와있는 배달앱과 경쟁을 벌여 플랫폼을 확장시켜야 되는데, 그게 쿠폰을 뿌리는 가격경쟁 만으로 되냐가 관건입니다.
은행치곤 잘 만들었다고 평가받지만, 실제 플랫폼 관점에서 확장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서비스에 대해 높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은행이 처음으로 잘 만든 '플랫폼' 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모든 은행이 빅테크 기업에 맞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 은행들의 앱에 금융 플랫폼이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여전히 공급자는 은행이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공급자가 나와 판이 벌어지는 그런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진짜 빅테크들처럼 소비자가 공급자가 될 수 있는 서비스는 전혀 없었고, 은행이 공급자를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땡겨요 서비스를 통해 신한은행은 진정한 플랫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파워풀한 공급자에서, 플랫폼 중개자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이지요.
그들은 소비자가 공급자가 되는 플랫폼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공급자와 소비자 둘 다를 만족시켜 판을 벌릴 수 있는지, 경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이 서비스가 굉장히 좋은 시도이자,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한은행이 어떤 은행 플랫폼을 만들지 지켜보아야겠네요.
3) 한국투자증권 & KB증권- 금융투자 상품권
금융투자 상품권은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금융투자 상품권을 선보였고, 그 이후에 KB증권에서 비슷한 포맷으로 상품권을 출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취지는 상품권을 선물해서 주식 투자를 선물한다는 개념이었고 적당한 할인율(5%~10%)을 적용해 판매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융투자 상품권의 의미가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픈마켓(11번가, 옥션 등)에 금융투자 상품권이 대량으로 풀리기 시작하며 상품권을 카드로 살 수 있게 하고, 구매자 본인이 직접 등록하는 것에 대한 제제가 없기에, 카드깡(신용카드를 이용해 현금화하는 행위)과 같은 형태로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 구조를 보면 이해 관계자 전부 윈윈인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오픈마켓은 상품권 판매액이 매출로 잡히고, 증권사 역시 해당 판매를 통해 사람들의 돈이 일시적으로 몰리고, 사용자는 해당 상품권을 카드로 구매 한 뒤, 본인 계좌에 등록해 주식을 샀다 바로 파는 방법을 통해 현금화하는 일종의 카드깡 형태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품권을 선물해 주식을 선물하겠다 라는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2021년 8월 머지 포인트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투자 상품권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금융위가 금융투자 상품권을 단순 상품권이 아니라, 금융투자상품으로 보고 카드 결제를 막은 것입니다.
결국 9월부터 금융투자 상품권은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해졌고, 이때부터 더 이상 찾는 사람들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현금으로만 금융투자 상품권을 사서 선물하는 구조다 보니, 선물을 사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별로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서비스가 많이 침체된 금융투자 상품권은 이렇게 빛을 잃을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Ex. 카드결제 부활 후 구매자는 등록 불가 등)을 찾아 다시 그 빛을 발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4) 토스, 카카오페이, 뱅크 샐러드 등 - 대출상품 비교 플랫폼
지금은 규제가 바뀌어 온라인 플랫폼은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 없이 대출 비교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만,
원래 대출 상품 비교 플랫폼은 불가능하던 업무였습니다.
이 시작은 바로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였습니다.
대출을 중개하는 기관(사람)은 대출모집인이라 칭하며 대출 모집인에는 커다란 규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1사 전속주의 규제(대출모집인이 1개 금융사 대출 상품만 취급하는 제도)입니다.
누구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규제 때문에 대출 금리를 비교해 최적의 이자로 가입하는 사이트가 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다양한 핀테크 업체들이 이 1사 전속주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대출 비교 플랫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신청 날짜를 보면 2019년 5월엔 토스, 페이코가 , 6월엔 뱅크 샐러드가, 10월엔 카카오페이가 줄줄이 신청했을 정도로 핀테크 업체들은 이 시장을 금융 먹거리로 보고 앞다투어 신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게 금융위원회 입장에서 정비가 필요한 규제라고 판단하게 만들었고, 21년부터 1사 전속주의 규제가 온라인 플랫폼에 한해 적용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규제를 변경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대출 비교 플랫폼에 1 금융권인 은행은 본인들의 정보를 제공하길 거절했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실제 비교되는 금융기관은 2 금융, 고금리 대출만 비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다른 문제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한정된 개선이 어떻게 바뀔지 관건입니다.
이미 작년에 한차례 말이 나왔던 대환대출 플랫폼이 대출비교 서비스의 연장이며 플랫폼 기업들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비스의 향방은 단순히 하나의 금융기관이 아닌, 여러 군데의 이해관계과 맞물려 있어 조금 더 정비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기까지가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서비스들입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서비스들이 출시되었습니다.
다음에는 기대감은 높았으나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는 서비스, 그리고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평가에 대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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