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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오리 Feb 04. 2018

겨울나라 러블리즈 2 콘서트 관람기

너무 재밌었던 첫 아이돌 콘서트!

지난 금요일인 2/2일, 러블리즈 공연에 다녀왔다.


한참 음악과는 담쌓고 지내던 3년 전 즈음, 밥 먹고 들어오는 길에 있는 유스페이스 올리브영에서 맨날 틀어주던 노래가 꽤나 마음에 들어서 검색해보니 러블리즈의 "안녕" 이랑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곡이었다. 방금 검색해보니 둘 다 2015년 발표된 곡이니 3년 전 여름이 맞나 보다.


처음엔 여자친구가 더 맘에 들었으나, 다른 노래들도 찾아들어보니 러블리즈가 좀 더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노래를 많이 듣진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신경 쓰진 않았다.


작년 보스의 QC30을 사면서, 출퇴근하면서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러블리즈의 전곡을 멜론 스트리밍으로 듣고 다니면서 조금씩 이 팀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래만 듣고 영상은 전혀 보질 않아 몇 인조 팀인지, 누가 있는지는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 케이랑 유수정만 아는 정도?


그러다 친구가 공연이 있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냐고 해서 냉큼 가보겠다고 했다. 아이돌 공연 티켓은 좀 싸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스탠딩 석이 99,000원이나 했다. 심혈을 기울인 인터파크 예매 신공으로 다행히 B구역 스탠딩 280 번대 예약에 성공했다.


미리 멤버들 얼굴, 이름 매칭도 하고, 가사도 좀 외우고 했어야 했는데 아직 그 정도 팬심은 부족한가 보다. 그러면서 10만 원짜리 티켓을 끊다니, 이것이 40대의 재력인가? 후훗.


금요일 당일이 되어서야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한쪽 모니터에 띄워두고, 다른 한쪽 모니터엔 나무위키의 러블리즈 페이지를 띄워놓곤 얼굴-이름 매칭을 하고, 몇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나의 인간지능을 총동원하여  "동영상에서 멤버 얼굴 인식하기" 딥러닝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8명 중 6명은 인식률 100% 에 성공하였으나 서지수와 정예인은 아직 내 지능으론 도저히 영상 속에선 구분하지 못하겠어서 6/8 = 75% 의 인식률에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은 응원가 외우기 차례였는데, 나무위키의 응원법 페이지를 열어본 순간, 아... 이건 도저히 외울 시간도, 능력도 되지 않아 바로 페이지를 덮었다.


5시가 되어 회사엔 반반차 휴가를 내고, 아내가 나와 친구를 차로 픽업하여 한남동으로 같이 출발했다. 차에서 셋이서 얘기하면서 이동하는 와중, 마치 방귀대장 뿡뿡이 어린이 뮤지컬에 아이 둘 데려가는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아이돌 공연장에 가는 40살 어린이 둘이라니.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아내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길이 막혀 서울엔 5시 40분이나 되어 도착했다. 다행히 블루스퀘어 주차장에 아직은 자리가 있어 주차를 하고, 친구가 알려준 다운타우너라는 햄버거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판교에 콕 처박혀 사는 촌놈인 나에게 한남동 수제 햄버거집은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우 빵부터 너무 맛있어.

우왕 맛있어


다른 곳에 약속이 있는 아내와 헤어져 친구와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7시를 조금 넘기니 벌써 스탠딩은 입장을 시작했다. 스탠딩은 입장하기 전에 번호 순서로 줄을 섰어야 하는 것 같은데, 우린 이미 늦어서 그런 거 없이 그냥 입장하면 되었다.


입장해서 보니 공연장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예전에 카니발콥스를 봤던 악스홀보다도 조금 작은 정도? 2층 객석이 상당히 앞으로 나와있어 무대 전체를 보기엔 스탠딩보다 2층이 훨씬 좋아보였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예매도 스탠딩보다 지정석이 훨씬 치열하다고 한다. 락이나 메탈 공연은 스탠딩이 훨씬 먼저 매진되지 않나? 관객의 남녀성비는 내가 갔었던 그 어떤 공연에 비해서도 남성 비율이 높았다. 헤비메탈보다 훨씬 ㅋㅋㅋ


공연 전에 스크린으로 줄곧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데, 몇 분들이 글로만 공부했던 응원법을 직접 사연하셨다. 오오, 이런 식으로 구현이 되는구나! 나는 글로만 팬질을 했는데 실제는 이런 것이로군! 아직 공연 전이라 뒤숭숭한 분위기라서 소리를 내진 않고 열심히 귀동냥으로 구호 외칠 시점과 내용을 익히고 있었다. 한 가지 나도 놀란 건, 하도 전곡 재생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노래 제목은 몰라도 대부분의 가사를 어느 사이에 알고 있어 흥얼거릴 수준이 이미 되어있었다. 준비된 관객! 하지만 8명의 멤버 이름을 순서대로 외치는 구호는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따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8시 조금 넘어 멤버의 녹음된 목소리로 몇 가지 공연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 녹음, 녹화, 촬영은 절대 불가라고 하는 게 조금 의아했다. 예전엔 플래시 등의 문제로 촬영을 금지하였지만 요즘은 아티스트가 포기한 건지, 바이럴을 위해 허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허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나? 아이돌 공연은 원래 그런지 어떤진 잘 모르겠지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열심히 보고 들어야 해서 찍을 겨를도 없어.


공연이 시작되어 막이 내려가고선 멤버들이 첫 무대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스탠딩은 무대와의 거리가 가까왔다. 하지만 역시 내 키가 작아 관람은 쉽지 않았다. 무대 전체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고, 가끔은 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앞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각도만 잘 맞추면 멤버들을 생각보단 꽤나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보겠니. 조금 더 부지런해서 앞에서 봤거나, 조금 더 키가 컸으면 훨씬 좋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키를 키울 수도 없고, 더 부지런하기도 귀찮아서 이 정도에 만족해야지.


무대는 굉장히 멋졌다. 맨날 티비로만 보던 "쇼 음악중심" 같은 무대가 내 눈앞에 펼쳐지다니! 무대 끝부터 바닥까지 온통 고해상도 스크린이었는데, 이게 단순 평면이 아니라 밴드 멤버 자리도 있고 해서 이런저런 굴곡이 있어 꽤 복잡한 형태였는데, 그런 굴곡진 형태까지 싹~ 스크린이 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녹음된 음향이 아닌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아이돌 공연이 다 이런 건지, 러블리즈 공연만 이런 건진 모르겠지만 멋지다. 밴드는 드럼, 베이스, 기타, 건반 두 명 이런 구성이었다. 물론 락 공연이 아니다 보니 전자음의 비중이 꽤 높았지만 당연히도 녹음된 음악에 비해 실연이 훨씬 좋았다. 러블리즈 멤버들도 라이브를 꽤 잘했다. 케이는 거의 녹음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었고, jin은 굉장히 어려운 파트들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훌륭했는데, 특히 저 두 사람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공연을 간다고 마음 먹었을 땐 내가 좋아하는 팀을 가까이서 실제로 보는 정도의 기대감 정도밖엔 없었는데, 첫 무대를 보는 순간 밴드의 음악 + 멋진 무대 + 러블리즈 멤버의 공연이 어우러져 기대를 훨씬 웃도는 감동이 몰려왔다.


아까 공연 전 예습한 구호도 열심히 외치고, 소리도 열심히 지르면서 아주 재밌게 공연을 즐겼다. 다만 나는 공식 응원봉이 없어서... 남들은 응원봉을 휘두를 때 팔만 휘저을 수밖에 없었다. 팬심이 부족해 ㅎㅎ. 특히 서지수는 단독 무대에서 드럼 연주까지 선보이는 걸 보면, 이 공연을 위해 멤버들이 엄청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맨날 "쇼 음악중심"에서 하던 거 모아서 보여주는 게 전부 아닐까 싶었는데 그거랑 콘서트는 준비가 완전히 다르겠구나 싶었다.


난 맨날 전곡 듣기만 해서 노래는 알아도 아주 유명한 곡 몇 개 빼고는 제목도 몰라서 무슨 곡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2시간 30분 가까이 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곡을 보여줬다. 노래만 해도 엄청 힘들 텐데 대단하네. 정말 아이돌은 아무나 이쁘다고 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대단한 프로들이다. 


또 한 가지, 공연 구성에서 멋졌던 점은 중간중간 무대를 바꾸거나 하는 브레이크 타임도 허투루 관객을 대기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멤버들이 준비한 영상을 내보내서 한눈을 팔 겨를이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공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공연이 되었건, 영상이 되었건 러블리즈 관련 컨텐트를 끊임없이 보여줘서 관객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다. 멋져 멋져.


본 공연이 끝나고 앵콜 무대에서 몇 곡을 한 후, 멤버들이 모두 나와 공연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이 왔다. 나에겐 이 시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난 처음엔 "오늘은 대단한 밤이었네요. 와주셔서 기쁘고, 앞으로도 러블리즈 많이 사랑해주세요. 안녕~ 또 만나~" 정도 얘기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거의 멤버 한 명 당 10분 정도는 얘기한 듯했다. 친구에게 원래 이렇게 소감이 길었냐고 물어보니 예전 공연에서도 이랬다고 알려줬다. 거의 모든 멤버가 눈물을 보이면서 힘들었다는 얘기도 하고, 실수해서 아쉬웠다는 얘기도 하고. 그중에도 난 팬과 가수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었다.


8시에 시작한 공연이 마지막 곡 까지 마치고 나니 11시가 되었다. 대단한 3시간이었다. 다른 아이돌 공연을 가 보진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러블리즈 공연은 러블리즈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거나 아이돌 공연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꼭 가보시라고 추천한다. 락 공연과는 여러모로 달라서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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