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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Oct 20. 2021

카프카도 아버지를 힘들어했다.

엄마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내게 죄책감을 준다.  왜 엄마와 잘 지내지 못할까?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난하게 잘 지내는 것 같고, 혹여나 힘들어도 솔직한 속내를 듣기는 어렵다. 유튜브에서 심리학 강의를 찾아보고, 오은영 박사님의 방송도 본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타인에 대해 이해해보려 애써본다. 정답이나,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없을까 고민하는데 그칠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프카는 무엇보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 알려져 있다. 내게 카프카는 그저 옛날 작가, <변신> 같은 특이한 작품을 쓴 작가였다. 카프카에 대해서 큰 관심도 호기심도 없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프카를 언급하면서 카프카에 대한 내 관심은 달라졌다.


  이후 카프카라는 이름을 다른 작가들에게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소설가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그러다,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알게 됐다. 이 책은 생전의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놓은 서간집이다. 카프카는 생전에 아버지와 갈등이 깊었다고 한다. 카프카는 그런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혹시 카프카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하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책을 주문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프란츠 카프카는 약

백 년 전에 사망한 프라하 출신 작가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모순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이 작가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가다. 카프카의 작품으로 <변신> <성> <소송><단식 광대>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카프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호한 앞날을 살아간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놓이고, 안갯속 같은 답답한 현실 속에 헤맨다. 그러다 결국, 비참한 현실 속에 작품은 끝이 난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명쾌한 줄거리도, 결론도 없다. 여기도 저기도 고구마뿐인, 줄거리와 전개들이다. 카프카의 작품 속 주인공 들은 시종일관 안갯속을 걸어가듯,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 놓인다.


카프카는 개인의 삶에서도 많은 좌절을 맛본다. 어린 시절 모친을 떠나보내고, 두 명의 남동생마저 병으로 사망한다. 여동생들이 남아 있었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는 유일하게  남은 아들 카프카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듯하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강인하고 엄격했다. 게다가 자수성가를 이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카프카는 아버지와 수영장에 갈 때마다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건장한 아버지에 비해 빈약한 자신의 체구에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탈의실을 나서지 못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간신히 물에 들어가곤 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너무도 달랐다. 이런 강인하고 거친 아버지에게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카프카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문제 앞에서 카프카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다. 반대가 있다 해도 강행할 수 있었지만, 카프카는 여러 차례 번복 끝에 결혼을 포기하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아들에게 비난과 꾸지람도 서슴지 않았다. 카프카는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부단히 애썼고, 그런 아버지로 인해 상당히 고통받고 상처 받은 듯 보였다.


“걸핏하면 저를 짓누르는,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지금의 이 감정도(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제 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고귀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에 근원을 두고 있거든요,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약간의 격려와 호의였을 겁니다. 조금만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게끔 해 주셨다면 좋았을 거 에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 중


카프카는 수 차례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 이런 솔직한 감정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내감정을직면하기보다는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답습하거나, 그 틀에 맞추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고 고치려고 드는 것이 내가 하는 전부다. 그런 나로서는 카프카의 냉철한 자기 직면이 놀랍게 다가왔다.

 

나의 이런 정체된 감정보다 한 걸음, 아니 훨씬 앞서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시한 카프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분노나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아마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어보려는 듯 보인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렇게 여러 번 대화가 어려운 대상에게 다가갔을 리 없다. 그 존재를 부정해서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부정당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를 인정하고, 아버지와 접점을 찾아보려고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아닐까. 이런 카프카의 고민은 그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의 갈등은 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남겨지는 위대한 문학 작품의 불씨를 만들어냈다.


백 년 전에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살다 간 작가가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비슷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또 확인된다. 부모와 자식, 깊이 연결된 존재 같지만, 무척이나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 속에 말과 감정을 주고받지만, 그 신호는 매번 어긋나고, 코드가 맞지 않는 기계처럼 오류만 생긴다. 카프카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카프카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힘들어했다, 나는 엄마와 갈등을 겪고 마음의 짐을 갖고 산다. 엄마와의 갈등 덕에 카프카와 비슷한 고민을 품었다는 영광도 누려본다. 부모로 살아가는 일이 많이 힘들다고들 한다.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에 못 지 않게 어렵다는 사실을 카프카에게서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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