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학을 공부하려고 하는가
국가 간 권력의 상호작용 및 이를 바탕으로 국제질서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전문적으로 분석·연구하고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
면접을 준비하며 내 생각의 심연, 그 바닥에 놓여있는 생각부터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우선, 왜 정치학을 공부하려고 하는지이다. 그다음엔, 정치학 중에서도 ‘국제’ 정치에 관하여 연구하려는 동기는 무엇 인지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에 관하여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함축적으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정치의 정의라 할 수 있다. 내가 정치학에 관심을 두고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는 이유를 이 정의와 연결시켜 정리하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집단에 소속되어있다. 가장 가깝고 친근한 가족 공동체부터 학교·회사·모임 등 다양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가라는 사회집단에 속하여 국민이란 지위를 부여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사회의 형태인 국가는 여타 사회집단들과 무언가 다르다. 이 국가라는 집단은 다양한 사회집단에 대해 강제적인 힘을 독점적으로 사용하여 그들로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거나 추출하고, 갈등을 관리하고 조절한다. 국가에 이러한 최고권을 부여한 주체는 누구이며, 국가에 속해있는 국민은 이러한 강제력을 어떠한 이유로 따르게 되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주로 국가는 사회 내 존재하는 각종 가치를 정당한 권력을 바탕으로 권위적으로 배분한다. (국가가 독점적으로 동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사회생활하는 한국 국민의 '납세의 의무', 20대 남성의 '병역의 의무' 및 한국 남성의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훈련'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정치학을 배우면서 국가와 국가의 행태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는 뭘까? 정치를 단순히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라 할 때, 이는 어떤 집단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에게 혹은 이들이 속한 각 집단에 행하는 행위들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권력을 이용한 강제성’에 있지 않나 싶다.
역사적으로도 권력 작용은 인류 사회에 존재해왔다. 그렇기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대립 관계로 역사의 페이지가 작성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국가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탄생한 근대국가의 개념이 발전해온 형태이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통찰을 인용하자면, 이 근대국가들은 물리적 폭력의 독점적인 사용을 바탕으로 제각각의 정책적 자율성을 목표로 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성공적으로 동원·추출·관리해왔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존속한 형태가 오늘날 세계의 각 국가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위계적인 관계로 느껴질 따름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헌법 1조 2항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최상의 가치로 두고 통치 행위를 하는 타 국가들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인 된 권리가 국민에게 있음에도 국민은 강제력에 기반한 국가의 통치 행위를 어떤 이유로 따르게 되었고, 따를 수밖에 없었는가? 이는 국민이 통치 행위를 하고자 한 집단에 정당성을 부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전통적이든, 카리스마에 기반한 것이든, 제도에 따른 것이든 간에 사람들은 일정한 권위를 누군가에게 부여하였고, 이를 부여받은 집단은 통치집단이 되어 국가라는 이름으로 정치 사회를 이끌어 나가게 된 것이다.
국가와 개인, 그사이에 놓인 권력의 동학은 내게 학문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부분이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위계적인 국가 내부의 질서와 달리 아직은 분권화되어 있으며 무정부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그러한 국제 사회에서 개별 국가 간 권력의 향방에 관하여 연구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한국은 국제 체계상 어느 위치에 있으며, 불안정한 지역 정세가 상수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어떻게 분석하여 궁극적으로 평화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고찰해보려 한다.
국제정치이론의 가장 거대한 두 가지 조류는 국가들의 ‘power'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와 비국가 행위자인 시장·제도·민주주의에 더욱 큰 비중을 싣는 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갈린다. 전자는 홉스적 시각에, 후자는 칸트적 시각과 그로티우스적 시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양 갈래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세 가지 전통적인 시각은 겉보기에 상충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상보적인 관계에 가깝다. 이론적 배경을 더 쌓아 올려 복잡한 국제정치의 흐름을 다층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분석하고 함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목표다.
"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 (Karl Marx)
이제껏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더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Karl Marx,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독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마지막으로 적은 이 문장을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이전까지 철학자들은 현실의 세계를 해석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주어진 현실 속에서 합리화하는 방식을 추구해왔고, 이를 초월한 변혁을 가져오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론적인 해석의 영역 내에서 실천적인 현실 활동을 통해 변혁을 이끄는 것이 관건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대학 학부과정을 거치며, 그동안 유수의 석학들이 현실의 세계를 해석해놓은 결과물들에 대하여 학습하는 과정에 집중해왔다. 이제 석사과정을 성취해나가는 동안에는 교수님들의 지도하에 연구주제를 정치학적으로 분석하여, 논리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는 역량을 기르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더 나아가, 향후 능력이 허락하는 한, 박사과정까지 도전하여 국제정치에 관한 독자적인 이론적 해석의 틀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 사회에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변혁에 일조하고 싶다.
# 참고문헌
- 진영재 정치학총론
- E.H.Carr 20년간의 위기
@Brotb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