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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l 02. 2024

밥과 반찬, 무엇이 중헌디?

생도식당 앞에 도착한 가입교훈련생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계속된 훈련으로 허기진 그들을 달래줄 식당이 코 앞에 있어서였다. 조교들은 이 열로 정렬시켜 줄줄이 식당으로 입장시킨다. 식탁을 지날 무렵, 그들의 고개는 전방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식탁에 놓인 식판의 밥과 생선들을 훑는다. 설사 산더미 같은 밥과 큰 생선을 목격했다 한들, 언감생심 멈춰 설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모두는 많이 담긴 밥과 먹음직스럽게 생긴 생선 앞에서 "제자리에 섯!" 구령이 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항상 운은 자신을 비켜가는 것 같았다. 밥과 반찬의 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식판을 비우고 나면 금방 허기가 올라왔다.


간 큰 훈련생도 몇 명이 식당에 몰래 들어가 국수 가락을 먹다가 들켜 골로 갈 뻔하기도 했다. 후일, 정식생도가 되어 훈련받고 있던 군종장교 후보생들의 식당 입장 모습을 지켜본 일이 있었다. 그들도 배고픔 앞에서는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우리들과 똑같이 시선을 아래로 깔아 식판을 훑고 있었다. 그냥 훈련 절차를 밟고 있는 인간이었다. 벌써 사십삼 년 전에 지나쳐온 장면들이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모래도 소화시킬 수 있었던 시기에 배고픔을 참는다는 것은 형벌이었다.  지금 다시 웃픈 추억을 떠올려 보는 것은, 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 습성이라는 것은, 나는 밥과 반찬 중에 절대적으로 밥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훈련생도라는 갈급한 신분임에도, 분명 시선을 아래로 깔아 반찬보다는 밥의 양 만을 보고 있었으니까. 


며칠 전, 출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있었다. 대뜸 아내가 "도대체 밥을 뭐 하고 먹었길래 반찬이 그대로야?"하고 묻는다. 내가 보기에는 성의를 봐서 많이 먹어준 것 같은데, 아내가 생각한 양에는 많이 못 미친것 같았다. 밥과 반찬에 대한 나의 명확한 기준은, 반찬은 밥을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냥 밥 만 먹으면 심심하니 단지 간을 맞추기 위해 반찬을 먹어주는 습성이 있다. 반면 아내는 반찬을 먹기 위해 밥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반찬 하다 남은 양념도 쉬이 버리지 못하고, 그걸 먹어치우기 위해 밥을 찾는 습성이 있다. 

내세우는 논리는 그래야 탄수화물을 적게 먹게 되어 살이 덜 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는 양념이 너무 많고, 그걸 혼자서 처리하기 위해 부득불 밥을 많이 먹게 된다는 게 문제다. 가끔은 살이 찌는 것보다 양념 버리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부는 닮는다는 데, 밥과 반찬에 대한 생각은 아직까지 극명하게 갈라져 있다.


아내는 내가 반찬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타박은 하면서도 다행스럽게 여기는 면도 있다. 나는 이틀에 한 번 출근하면서 세끼의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 만약 내가 밥 보다 반찬을 잘 먹는 사람이었다면, 아내는 쉴 새 없이 반찬을 만들어 대야 했다. 하지만 밥으로 배를 채우고 반찬은 간 만 맞추는 습성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오래된 반찬을 지겹도록 먹어야 하는 불합리를 감수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건강 관련 유튜브를 보고 나서 나에게 밥 먹는 양을 줄이고 반찬을 많이 먹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내가 우려하는 당뇨에도 좋다는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밥과 반찬 무엇이 중헌디?'를 놓고 고민에 들어갔다.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가 내 삶의 이슈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습성이지만, 건강관리라는 측면에서 나쁜 점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나가야 한다. 아내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름 검증에 들어가 보았다. 먹는 순서를 식이섬유,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바꾸면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막고, 빠른 포만감을 준다고 한다. 또한 식이섬유부터 먹으면, 단백질, 탄수화물이 천천히 흡수돼 혈당이 크게 상승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식사를 할 때 무엇을 먼저 먹는지에 따라 살이 빠지고, 당뇨병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혈당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나에게 있어 진즉에 바꿔야 할 습성 중에 하나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인간이 가진 성질을 나타내는 것 중에 천성과 습성이 있다. 천성은 본래 타고난 성질이고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라 스스로 바꾸기가 매우 힘이 든다. 하지만 습성은 버릇이 된 성질이다. 그래서 천성은 고칠 수 없지만, 습성은 타인의 영향을 받거나 스스로도 고쳐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고, 인생을 가장 허망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후천적으로 길러진 버릇이나 습관과도 같은 습성은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방치하고 살아가 인생을 허망하게 보내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도 반찬 양념이 아까워 밥을 찾는 습성은 버리도록 채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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