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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n 18. 2024

늘 한결같은 사람들

그 선배 부부와 같이 식사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물왕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한식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아내는 내가 근무하는 날 있었던 동기생 딸 결혼식에 혼자 가서 선배를 만났다고 했었다. 그리고 선배가 "조만간 쉬는 날 같이 함 보자."라고 했다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인사치레로만 생각하고 거의 잊어갈 무렵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십 년도 넘게 부부 같이 만난 적이 없었던 공백은 컸다. 선배 부부는 할 말이 많은 듯했고, 우리 부부는 주로 들어주는데 충실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들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야기 도중 선배 부인은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선배의 암 발병 후 완치는 알고 있었지만. 이후에 뇌경색 증세가 있었고 부인의 두 번 쓰러짐 그리고 큰 아들의 우울 장애까지 우환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일들임에도 부부는 의연하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치부와도 같아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 점은 고맙게도 생각되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우리 부부의 일상이 참 행복했던 것이라는 것이다. 


헤어지기 전까지, 그들은 친하게 지냈던 사이이고 후배 부부임에도 최대한의 예의를 다해서 대해줬다. 다음 모임은 우리가 잡기로 하면서 아쉽게 헤어져 전철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선배 부부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이미지의 말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두 가지가 떠올랐다. '꿋꿋하다.'와 '한결같다.'이다. 우리 부부에게 그런 일이 연속되었으면, 그렇게 꿋꿋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어림없었을 것 같다. 또하나의 이미지인 '한결같다.'는 더 어려웠을 거다. 언뜻 생각해 내었지만, 그냥 여전하다 정도의 의미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훨씬 심오했고, 내가 본래 나타내려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말인게 좋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단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쌓여 글이 되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기는 하다. 단순하고 피상적인 의미만 알고 있는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 수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모르고 있던 다른 의미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특히, 우리말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글쓰기를 하면서 받은 선물 같기도 했다.


'한결같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 이고, 다음이 '여럿이 모두 꼭 같이 하나와 같다.' 였다. 선배 부부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부합하는 의미는 전자였고, 이것은 '결'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렇듯 한 글자로 된 우리말인 '결'을 알지 않고는 심오한 의미에 접근할 없었다. 


한 글자로 된 우리말! 숫자가 상상 외로 많은 것도 경이로웠지만, 대부분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순으로 글자수가 정해진 큰 흐름이 존재했다. 신체의 한 부분이나 대자연, 우주, 먹거리, 인간과 가까운 동물 등 인간 생활과 가까운 것들은 거의 한 글자로 표현했다. 강, 산, 해, 달, 밤, 콩, 봄, 별, 귀, 입, 눈, 개, 범, 소..... 그리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 결, 얼, 넋, 삶, 격 같은 말들도 한 글자였다. 


'결'이라는 말은, '나무나 돌, 살갗 등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의미했다. 살결, 나뭇결, 바람결이라는 말에 '결'이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한결같다.'와 같이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 '결'의 의미는 좀 더 무거웠다.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가치관이나 기준, 방향성, 분위기, 느낌과 같이 사람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이 맞는 사람과 관계하면 편안해지고 대화가 통할 수 있음이 짐작되었다. 


그 선배 부부의 '결'은 변함이 없었다. '결'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다는 의미의 '한결같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허물없이, 속까지 드러내며 한결같이 대해준 사람들이 살가웠다. 우리들과 '결'이 맞는 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내내 편안하고 대화가 통한 것은 분명했다. '결'이 맞는 사람이 '한결같다.'면, 아름다운 관계는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도 '한결같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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