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와 돈
"어!?!? 하성이 앞니가 예전보다 더 많이 녹았어!!"
아내가 잠들기 전 루틴으로 하성이 양치질을 시켜주다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가 이미 놀래서 외쳤는데, 아빠까지 덩달아 흥분하면 하성이가 겁이 날까 봐서 최대한 덤덤한 상태로 하성이 앞니를 보러 갔다. 하성이는 불안한 눈으로 아빠의 반응을 기다렸다.
"음..그러긴 하네. 근데 다시 젤리 안 먹고, 양치질 잘하면 괜찮을거야!"
치아에는 최악이라는 젤리는 어쩌다 만들어졌을까? 아니, 치아에 최악인 건 왜 이리도 맛있을까. 한 번씩 치과검진을 다녀오면 그때마다 했던 '간식 조절 다짐'은 며칠이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되곤 했었다. 우리에게 이전 다짐은 지나갔으니, 아이들과 다시 새 다짐을 해보기로 했다.
"엄마. 하성이 오늘 운이 젤리 안 먹었어! 엄마가 안된다고 했어."
"오!? 정말?? 엄마, 아빠랑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지켰던 거야? 어머나, 지키기 힘들었을 텐데, 더구나 하성이가 좋아하는 운이가 주려고 했다면서. 하성이 정말 대단하다아~~!"
하성이가 유치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운이. 잠들기 전에도 잠자리 대화로 등장하곤 하는 아이가 하성이에게 젤리를 건넸나 보다. 근데, 하성이가 안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퍽 감동했다. 하성이의 만족지연능력이 이렇게나 높았다고? 나는 유치원 하원할 때 들었던 그 이야기 덕분에 지나가는 하성이 엉덩이를 한번 더 토닥이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매우 기특한 눈빛으로. 늦은 저녁이 돼서, 젤리를 이겨낸 하성이에게 엄마가 한번 더 물었다.
"하성아! 근데 정말, 어떻게 그걸 참아낸 거야? 힘들었을 텐데, 우리 아들.."
"운이가 젤리를 가지고 와서, 하성이가 물어봤어."
"엥? 하성이가 운이 한 테 물어봤다고?"
"응! 하성이가 운이한테 젤리 먹고 싶다고 했는데, 운이 엄마가 주면 안 된다고 했나 봐. 그래서 못 먹었어!"
"아. 그런거였어어~~?ㅋㅋㅋㅋㅋㅋ"
다행스러운 건지 그 영웅담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하성이가 운이 젤리를 안 먹은 것은, 운이가 주지 않아서 못 먹었던 거였다. 엄마가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은, 운이 엄마가 다른 친구들에게 주는 건 안 된다고 했다는 말이었다. 하성이는 자기가 한 말에 엄마랑 아빠가 왜 이리 웃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보다가, 자기도 머쓱하게 웃었다. 어찌 되었든 젤리를 먹지 않은 것은 다행이니까, 그 밤은 그걸로 만족했다.
"아빠! 오늘 하성이, 영어 시간에 젤리 안 먹었어!"
"어? 정말?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젤리를 나누어줬는데, 하성이만 안 먹었어?"
"응!"
"우와~!!! 진짜, 대단하다..!!하성아!"
나는 사실확인을 위해 영어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로는 영어시간에 수업 아이템의 일환으로 한 명씩 젤리를 나누어주었는데, 다른 친구들 다 받아서 먹는 동안 하성이만 끝까지 안 먹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와우!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앉아 참아냈을 하성이가 떠올려지니 괜히 뭉클했다. 엄마랑 아빠가 말해줬던 걸 기억했을 테니, 더욱이 아이가 기특했다.
"하성아! 정말 대단하다..참기 힘들었을 텐데, 엄마랑 아빠랑 했던 약속을 기억했구나!"
"아빠! 그 젤리 여기 있어! 이거 바꿔주세요!"
아이들과 했던 또 하나의 약속은,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 중에 젤리나 사탕이 있을 경우에 잘 모아놨다가 아빠에게 건네면 아빠는 은행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동전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아빠, 엄마가 간식으로 사주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선물해주는 걸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가 주는 젤리 선물은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또, 아이가 만족지연에 성공했을 경우에 그걸 격려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떠올린 방법은 내가 은행장이 되는 것이었다.
"자! 젤리를 동전으로 교환할 사람 오세요~!!"
"네~~!!여기요!"
"특별히 이번 젤리는 엄마와 아빠랑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지폐로 교환해 주겠습니다!"
하성이는 지폐는 동전이 열개와도 같다는 엄마의 설명을 들으면서 꾸깃꾸깃 지갑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