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믿음 조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v Apr 16. 2024

믿음의 여러 조각들

구원의 확신?

나는 불안함을 자양분으로 삼던 이십대 어느 즈음에 힘차게 부르짖었다. ‘부르짖는 기도’. 목이 걸걸하게 쉰 것이 나름의 훈장이었고, 몇 시간이고 부르짖고 나면 그래도 무언가 했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때 나는 대학생활을 함께하며 잘 따르던 형이 있었다. 형도, 나도 신앙적 고민이 깊어질 때 한 지역교회를 알게 되었다. 조그마한 시골교회였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금요철야예배, 때로는 새벽예배도 갔었다. 예배때마다 ‘부르짖는 기도’가 늘 빠짐없이 순서에 있었다. 특히, 철야예배는 그야말로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기도하는 철야기도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소리냈었다. 마음 한 켠에 있었던 작은 의심이나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 크게 부르짖는 것으로 묻었다. 한 번은, 교회 밖 학교에서도 우리는 모였다. 수업이 모두 끝난 이른 저녁, 빈 강의실에서 책상을 모여 앉아서 여느때처럼 기도했다. 강의실 문이 살포시 열리더니 어느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우리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셨다.      

“여기는 대학교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대학은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우리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 대부분의 학생과 교수님이 크리스쳔이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우리가 학생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잃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의 행위를 정중히 중단시키셨다. 그땐 내가 옳고 교수님이 틀리다는 생각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었다. 내가 맞고 그가 틀리다는 그 생각이 문제라는 걸 아직 알지 못했다. 우리의 소리는 여전히 컸으니까. 학기중에도, 방학에도 우리는 모였다.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우리는 어느 순간, 서늘하게 흩어졌다. 그리고 들리지 않았던 주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나를 다소 우려하는 소리, 그것만이 옳은 게 아니라 신앙의 스펙트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는 소리였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일시정지가 참 감사했다. 그 덕분에 내 안에 잔뜩 들어가있었던 힘이 빠질 수 있었다. 여러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 누가 만진 두꺼운 다리도, 어느 누가 손을 댄 커다란 귀도, 넓직한 등도 모두 코끼리인 것이다. 그래, 하나님은 그렇게나 넓은 분이셨다.      


학기를 휴학하고 갔던 시애틀, 그곳에서 만난 한 간사님에게 자기가 만난 하나님이야기를 들었다. 어렴풋하게 기억하자면, 그 간사님은 이해하기 힘든 가족사를 지녔던 분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와 헤어졌고,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엄마없이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시간이 흘러 극적인 순간에 그렇게나 보고싶던 엄마를 만났을 뻔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였다고 했다. 간사님에게 믿음, 신앙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믿음의 확신은 어떤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간사님은 엄마와의 아픈 기억들로 점철된 삶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이런 고백이 나오더라. 하나님. 제가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렇구나. 이해할 수 없고, 머리로는 도저히 다 알 수 없지만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거구나. 이해와 신뢰.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의 연속, 간사님은 그 길을 혼자 걷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신뢰할 수 있는 분. 


얼마 전 교회 안에서 꼭 교제나누고픈 가정이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자매님의 눈빛이 그렇게나 사랑스러웠다. 그 가정에는 4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면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 집에 초대 받았다. 자연스럽게 이어져가는 대화 속에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된 지점을 나누었다. 자매님은 모태신앙이 아니었다. 자매님의 형제들 가운데 자기를 늘 따뜻하게 보살펴준 큰 언니가 있었고, 그 언니가 신앙인이었다. 자매님은 언니를 닮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레 신앙을 접했다. 신앙생활은 했지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한번 쯤 온다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시기였나보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부터 온건지, 누가 만든건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때 자매님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분이 있다니. 그래서 내가 다 알 필요가 없더라구요.”     

자매님이 만난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자매님의 표정이 참 편안해보였다. 그 편안함은 모든 질문이 다 해소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모든 질문을 맡겼기에 오는 편안함이겠지. 그분께 다가가고, 그분 안에서의 나를 발견해갈수록 질문은 하나씩 풀릴 것이다. 모든 질문을 한 방에 해결해주시지 않는 것도, 한걸음씩 내가 그분과 걸어가길 원하시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릴적부터 ‘믿음의 확신’이 무엇일까 늘 궁금했었다. 정말 흔들림없는 강한 어떤 느낌일까, 누가 뭐래도 의심이 들지 않는 그런 마음일까. 어릴적 수련회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난 친구들의 그 환한 표정이 늘 부러웠다. 때로는 나름 인생의 반항기를 겪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뒤집어진 친구들의 간증과 달라진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내게는 극적인 순간이 없는 게 아쉬웠으니. 그래서인지 믿음의 확신을 묻는 질문에 늘 멈칫했다. 확신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뭔가 내게그런 강한 믿음이 있는지 되묻는게 먼저였다. 늘 미처 다하지 못한 숙제처럼 마음 한켠에 있었다. 그 매듭은 누군가의 한마디 덕분에 시원하게 풀렸다. 때는 신입사원으로 회상생활을 할 때였다. 지금은 퇴직한 그 회사는 사내 복지(?) 중의 하나로 신입사원 1년동안 경영사관학교라는 걸 수료해야 했다. 매주 금요일, 개인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경영인을 만나 강의를 듣고 동료들과 토의하며 역량을 키우는 그런 과정이었다. 그 날은 목사님이자, 회사 경영인이기도 한 분과 남한산성을 걷는 날이었다. 남한산성 정상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질문이 있는지 물으셨다.      

“궁금한 거 있는 사람? 뭐라도, 질문있으면 해봐.”
 “믿음의 확신...”
 “그런게 어딨어, 내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신이지!”
 
 나처럼 그 구원의 확신에 대해 어렴풋했던 누군가 질문을 했고, 그분의 답변은 그야말로 내겐 혁명적이었다. 맞아, 내 확신일 필요가 없는 거구나! 하나님의 확신으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하나님의 확신으로 이어져왔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큰 존재 안에서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