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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May 28. 2024

이런 무례한!

가끔 욱하는 나의 분노에 관하여 ①

"돈까스 먹을래!"


토요일 점심, 아이들이 선택한 메뉴에 따라 동선을 잡았다. 얼마전 아내와 방문했다가 맛도 좋고, 분위기도 괜찮았던 그집으로 향했다. 지난번 밝게 환대해주시던 여직원분(돌이켜보니 사장님 같기도 하다)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환대를 기대하며 건넨 내 인사에 돌아오는 건 남 사장님의 무뚝뚝한 답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무안했다. 내가 괜한 기대를 한건가. 우리는 4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에 메뉴팥이 놓여졌다. 앞면이 아닌 뒷면이 보이는 채로.


"여기 한번 읽어봐 주세요~!"


메뉴판 뒷면에는 식당 내 '아이들 케어'에 관한 rule이 적혀 있었다. 계단도 있고, 매장 내 턱도 있어서 가급적이면 아이들은 테이블 내에서 케어해달라는 요청사항이었다. 앞선 인사 때문인지, 그 rule을 읽을 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아이들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오는 걸 반기지 않는 듯한 뉘앙스로 읽혔다. 


'아, 아까 인사를 받지 않았던 것도 애들이랑 같이 와서였을까'


애들이 너무 배고파해서 다른 음식점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먹고 싶어했던 돈까스와 파스타, 나는 신메뉴(명이나물 대패삼겹덮밥)를 시켰다. 맛있어보이기도 했고, 영수증리뷰를 하면 2,000원을 할인해 준다기에 겸사겸사...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매장 한켠에 마련된 아기자기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의 의미를 알리는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물건을 전시해놓은 곳이에요. 눈으로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다림을 대신할 좋은 눈 요깃거리가 있으니,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건 당연했다. 계단도 조심하고, 턱을 넘어 그 공간앞에 섰다. 미리 팻말을 읽은 내가 아이들에게 일렀다. 조금 커다란 소리로.


"얘들아, 여기는 소중한 물건이래, 눈으로만 보자~!"

"저기요 손님! 손님들이 지나가야 하니까 테이블로 돌아가 앉아주시겠어요?"


'아니, 이렇게까지 통제를 한다고?'

우리 때문에 통로가 막혀있지도 않고, 앞서 말했던 손님들 4명이 지나가고 나서는 다른 손님이 더 지나가지 않았다. 그냥 우리를 반가지 않는 듯한 그때 사장님의 무뚝뚝한 인사, 그 느낌이 여기서도 묻어났다. 우리가 그 공간 앞에 있는게 싫은건가. 아오.. 식당 내 rule이니 별 수 있나, 자리에 앉았다. 언짢은 기분이 숟가락에 담기니 음식이 맛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밥을 먹는 내내 종업원을 향한 사장님의 하대하는 듯한 말투가 너무나 거슬렸다. 그것도 큰 소리로. 이렇게 불편해하며 밥을 먹어야 하나. 아이들 앞이라 애썩 침착하려했다. 내가 또 괜한 것에 욱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접시를 싹 비웠다. 오구지게 먹어 치웠다. 이제 앞서 내가 신메뉴를 선택했던 이유, 영수증 리뷰를 통해 2,000원 할인만 받으면 음식점에서의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저기, 결제하려는데 이 영수증 리뷰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 그거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아서 할인이 어려우세요."

"뭐라구요?"

"아..손님, 잠시만요 사장님께 여쭤볼게요."

"안된다 해"

"아니 그럼 진작 말씀해주셔야죠, 메뉴판에 적혀있던지요, 안그래요? 에?????"


뚜껑이 열렸다. 음식점에 들어서면서부터 쌓인 분노가 2,000원짜리 영수증 리뷰할인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내는 애들과 먼저 밖으로 나갔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나. 나는 승질머리를 합당하게 여겼다. 시선에서 음식점에서 마주한 사장님의 행동, 말투, 표정, 통제, 영수증 리뷰까지 모두 불편하고 틀렸다. 내가 욱하고 화내는 정당했다. 그냥 참고 넘기는 그냥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음식점에서 나왔다. 더러운 리뷰라는 무기로 보기좋게 남기고 싶었다. 복수심이었다. 


다음 날, 아직까지 합당한 나의 '분노'에 관해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싶었다. 같이 욕이라도 하면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야 그 사장님이 장사하기 싫었는 갑다. 니 그냥 처음에 일어나지 와 그냥 있었노. 참나. 근데 있잖아, 니가 장사한다고 생각해봐라. 또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지 않겠나."


내가 마음이 풀리게 된 건, 더러운 리뷰를 쓰거나 그들과 함께 그 사장님을 욕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그 말 덕분이었다. 그의 무뚝뚝함도 그만의 이유가 있었을테고, 나의 분노도 거기에 합당한 연유가 있었던 거다. 과실이 어느 정도인지 따지는 건 조금씩 무의미해져갔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일한 환경에 살아가는 개개인들은 각각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 감정 그리고 의지를 가지며 단지 그러한 것에만 직접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중에서"


그래! 섣부른 조언도, 누군가의 삶에 대한 해석도, 나의 쉬운 분노도 조심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마다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덕분에 무기로 가지고 있었던 네이버리뷰는 접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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