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서랍 - ②
고등학교 시절, 쥐색 바지에 파란색 셔츠가 우리 학교 교복이었다. 우리는 누가 봐도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라도 자기만의 개성표현을 하는 데 열심이었다. '당근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통을 최대한 줄여서 당근 모양처럼 만드는 바지. 쥐색 바지이긴 했지만, 하계와 동계 바지는 색상 톤이 달랐다. 겨울에 입는 동계 바지가 뭐랄까 더 두꺼운 쥐색느낌이었다. 우리 반에는 여름철에도 두꺼운 쥐색느낌의 바지를 입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 친구에게 덥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암묵적인 불문율이랄까.
친구는 웃상이었다. 실없이 웃어댔다. 다른 친구가 하는 하찮은 농담에도 그냥 웃었고, 선생님의 아재개그에도 아이만의 미소를 머금었다. 한 여름 잠시만 밖에 나가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 친구의 두꺼운 교복바지는 늘 그대로였다. 그 교복은 누군가로부터 흘러나와 또 다른 이를 거쳐 친구에게 전달이 됐겠지. 친구는 자기만 왜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냐며 힘들어했을까, 아니면 미안한 눈초리로 교복을 건넨 엄마에게 친구만의 미소를 보였을까. 친구는 다른 애들보다 먼저 '테두리 밖에 서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친구가 가진 미소는 연습을 이겨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아이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교복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도 두 갈래로 갈라진 테두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 교복'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었고, 몇몇의 아이들만이 '건네받은 교복'안에 있었다. 친구는 자기도 남들처럼 '내 교복'을 가지고 싶어 했을까.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 '평범함'의 옷을 입고 싶었을까. 튀려 하지 않아도, 눈에 띄고 마는 '건네받은 교복' 때문에 때로 힘들어했을까. 그때 친구는 알고 있었을까. 모두가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테두리 밖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괜찮다고 격려하는 연습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때로는 부끄럽고,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부러우며, 어떨 땐 자기가 서있는 좌표가 한없이 싫어짐에도,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음을. 물려받은 그 좌표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삶이라며 담담히 받아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음을. 친구는 알고 있었을까.
지금쯤 그 친구의 일상은 어디에 가 있을까. 어릴 적 가지지 못했던 평범함의 테두리 속에 들어가 있을까. 아님 때로 테두리와 테두리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어쩌면 저만치 테두리 밖에 홀로 있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왜 혼자 있는지, 왜 밖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고 그 만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제는 들리지 않겠지만, 그 시절의 친구에게 이제와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미소가 가끔씩 생각난다고. 너만의 방식으로 삶을 긍정했던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고. 너의 두꺼운 여름 교복이 참 잘 어울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