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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올리브 Jan 10. 2023

글쓰기 플랫폼 대전 2

브런치의 문제점과 라이징스타 얼룩소

브런치에 브런치의 문제점을 적는 글이라니... 하지만 브런치에 대한 애정으로 쓰는 글이니 이해해 주리라.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여러 플랫폼을 전전하다가 정착한 곳은 브런치였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오로지 '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브런치의 해결되지 않는 몇몇 문제점을 마주했고 최근에는 글을 대부분 정리했다.


브런치의 첫 번째 문제점은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브런치가 추구하는 바 자체는 브런치가 제공하는 유인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브런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출간작가가 될 기회'를 가장 큰 유인으로 제공한다. 출간할만한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브런치의 목적이자 당근이다.


그런데 출간에 대한 이러한 지향이 브런치의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는 기여하지 못한다. 플랫폼은 참여하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분명히 타겟팅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여기가 벼룩시장인지, 대형마트인지, 백화점인지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시장 상인과 잡화 판매원, 명품딜러 등등을 모두 모아놓고서는 "여기서 가장 좋은 상품을 파는 사람 아무에게나 입점할 기회를 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있겠는가? 가장 좋은 상품은 무엇인가?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고급 자수의 넥타이가 무조건 좋은 상품인가?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려서 일 년에 몇 개 밖에 생산하지 못한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장에서 대충 찍어내는, 며칠이면 구멍이 뚫려버릴 싸구려 양말을 좋은 상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좋은 상품의 기준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기대하는 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명품관에서는 최고의 품질과 브랜드 가치가, 아울렛에서는 적당한 가성비가 좋음의 기준이 된다.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욕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브런치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브런치가 원하는 글의 유형은 정보제공인가? 일상공유인가? 전문적 지식과 인사이트인가? 감성 에세이인가? 전의 글에서 분류한 바에 따르면, 브런치가 거의 모든 유형의 글쓰기에 사용되고 있는 플랫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브런치는 글 생산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는지, 또 글 소비자가 브런치에서 어떠한 글을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주제별로 카테고리를 나누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방은 시장 바닥에서도, 잡화점에서도, 마트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브런치 내부의 합의가 있고 이것이 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대다수 생산자에게' 경제적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출간작가로서의 기회는 극소수에게 주어질 뿐이다. 출간은 출판사의 입장에 맞으면서도, 독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일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다른 다수의 작가들은 기약 없이 '무료로' 글을 써야 한다. 브런치의 조회수와 좋아요는 큰 의미가 없다. 다른 플랫폼에서 비해 어떤 유형의 이익으로 전환될 확률이 낮다.


이렇게 당장의 경제적 유인이 없을 때 사람들이 주로 쓰게 될 글은 무엇일까? 더군다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브런치의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 즉 브런치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글의 유형에 대한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일상과 감성을 공유하는 글이다. 자기표현이라는 기본적 욕구에 의해 쓰이는 글이기 때문이다. 좋게 보면 순수한 글쓰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치밀한 자료조사나 냉철한 피드백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당장 브런치픽에 선정되는 글들을 찾아보면 상당수가 담담히 일상을 풀어내는 글이다. 그것도 가독성을 위해 사진을 잔뜩 넣어가며 감성을 살짝 곁들이는 방식이 다수이다. 일상이야기에 약간의 감성을 더해 풀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어서 브런치의 주 이용자가 된다. 출간 브런치북 선정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다양성과 전문성을 고려하고자 한다고 해도, 애초에 응모되는 작품들 다수가 일상과 감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분명 한계가 있다.


일상이야기! 나도 당연히 좋아한다. 그런데 이러한 콘텐츠의 편향이 브런치가 지향하는 바인지는 다시 질문해보아야 한다. 평범한 아무개가 브런치를 통해 자기 일상과 감성을 나누고 출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좋다. 다만 주로 일상 및 감성 콘텐츠가 브런치의 플랫폼적 정체성을 점유하고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글거리의 생산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브런치의 경쟁력은 자연 쇠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따라서 출간 기회를 얻지 못하는 다수 생산자들에게도 글의 퀄리티에 비례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테니.


얼룩소는 이러한 브런치의 빈틈을 잘 파고들었다. 우선 얼룩소의 플랫폼 정체성은 비교적 확실하다. 얼룩소가 지향하는 글의 성격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로 표시되고 있다. 얼룩소의 모토가 "take 'a look at society'"임을 고려했을 때, 맥락이란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면적 접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얼룩소가 다루고자 하는 글은 일상을 공유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류가 아니다. 얼룩소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신속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글을 요구한다. 글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지침이다.


또한 얼룩소는 콘텐츠 제공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기로 결의하였다. 경제적 유인의 제공은 다양하고 유의미한 양질의 글쓰기를 유도한다. 아직은 투자금으로 그 콘텐츠에 대한 보상을 하며 실험적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용자와 생산자의 수 증가가 가속화된다면 장차 타 플랫폼을 위협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만약 유료 사용자를 일정 수 확보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글쓰기 플랫폼의 판도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구독경제, 광고 등등 다양한 수익 창출 방안에 대해 얼룩소팀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글 생산자는 물론 글쓰기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한국의 글쓰기 시장을 혁신할 수도 있으리라.


얼룩소 등 다른 플랫폼이 대안으로 등장한다면 브런치는 언젠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지금 브런치의 추세대로 일상과 감성을 플랫폼적 정체성으로 확정할지 또는 정보와 인사이트 등 다양한 영역 또한 포괄할지는 차차 결정될 것이다. 어느 방향이든, 브런치의 경영 기획에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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