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이라기에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5호선 양평역, 두 개 밖에 없는 출구 중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2번으로 나와 구청 방향으로 쭉 걷는다. "키노 양평"이라는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힙한 카페가 있었다. 인사는 친절하게, 커피는 진중하게 건네주던 최고의 알바생도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내 생애 처음으로 사 먹었던 소금빵이다. 손님들이 항상 소금빵의 유무를 묻는 그곳. 약간 시큼한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빵 주문을 외치면 카페 전체에 고소한 냄새를 퍼뜨려 잠깐의 대기시간마저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받아 든 예쁜 접시에는 누가 봐도 먹음직한 갈색 표면에 새하얀 소금이 옹기종기 모여있더라. 하이라이트는 소금빵의 결을 살짝 비껴서 자를 때 나는 그 소리였다. 이것이 베이징덕의 껍질인지 한낱 밀가루의 표면인지 헷갈릴 정도로 바삭한 음색, 그 즐거운 소리가 난 뒤 중심에서 흘러내리는 버터가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었다. 바로 그 소금빵이 내가 기억하는 '진정한' 소금빵이다. 바삭함, 약간의 짠맛, 그리고 버터의 향으로 먹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 프랑스 여행 이후 처음으로 빵을 찾아 먹게 해 준 기본기에 충실한 빵이었다.
소금빵의 신선한 충격을 나만 느꼈을 리 없다. 소금빵은 전국적으로 유행을 탔고 여러 소금빵 맛집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름 좀 날린다는 카페와 베이커리에 가면 소금빵 유무를 묻기 시작하고, 각종 매체에서 소금빵 유행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주목받는 음식의 일반적 발전상이 나타난 때가 이 즈음이다. 우리는 탄생한 식품의 원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참신한 시도로 계속 변형을 가하지 않던가? 소금빵 또한 점차 여러 가지 조합의 실험체가 되었다. 처음에는 짠맛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풍미를 얹어줄 수 있는 재료들이 추가된다. 치즈, 크림치즈를 더해 짭조름한 맛을 극대화하거나, 먹물 등으로 반죽해서 시각적 변주를 주는 방식이 곁들여졌다. 이 시기에 어디선가 바질 소금빵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다. 어떻게든 맛있는 조합을 찾아낸다는 한국인의 도전 정신이 고맙게 느껴질 때였다.
그런데 소금빵이 전국 빵집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품목이 될 정도에 이르자, 점차 본연의 모습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돌연변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코 소금빵을 처음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기억이 난다. 약간의 짭조름한 맛과 버터 향으로 승부하는 소금빵을 달달한 초코로 뒤덮다니? 그래도 뭐, '단짠단짠'이니깐...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녹차, 얼그레이, 티라미수 등 향과 맛이 소금빵의 그것을 상쇄시킬 온갖 재료들이 올려지기 시작했다. '참 가지각색의 토핑을 좋아하네'라고 느꼈지만, 여기서 멈추면 한국인이 아니다. 보다 극적인 변신을 노린 사람들은 이제 소금빵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샌드위치처럼 그냥 빵만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앙버터와 팥을 넣는다든지 각종 크림을 꽉 채워 넣는다든지 하여 이제는 과연 소금빵이라는 본래의 형태가 의미가 있긴 한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워낙 다양한 조합이 산개했기에 개중에 맛있는 빵을 찾을 순 있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변형되는 소금빵들을 보며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 변주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소금빵인가, OO인가?"
파도처럼 날아드는 변이들에 의해 처음 접한 소금빵의 경이가 잊히기 시작하자 음식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서 되새김질을 하게 됐다. 그래, 사실 소금빵뿐만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많은 음식에 여러 시도가 있어오지 않았던가. 영등포구청과 성수 주변에서 즐겨 먹었던 베이글을 생각하니, 소금빵의 변신은 애교처럼 느껴졌다. 버터솔트, 시금치, 부추, 연어, 무화과 등등 끝도 없이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글이야 하나의 요리라기보다는 기본 베이스가 되는 빵이니 그런 변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피자는? 이탈리아에서는 햄과 치즈, 토마토와 허브의 조합이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토마토소스, 바질, 모짜렐라 치즈 이 세 가지만 들어가는 마르게리따나, 프로슈토에 쌉싸름한 루꼴라를 올린 피자, 네 가지 치즈를 올려 풍미를 끌어올린 콰트로 포르마지오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토핑의 다양성에 암묵적 제한이 있음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미국의 피자와 비교하면 어떤가? 미국 피자는 분명 이탈리아 피자에 비해서 훨씬 헤비한 느낌이다. 시카고 딥디쉬나 디트로이트의 사각형 피자, 뉴욕 피자 모두 이탈리아 피자에 비해서 기름지다. 피자가 햄버거, 치킨과 더불어 정크 푸드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러한 미국 피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토핑에 있어서도 비교적 자유도가 높다. 맥앤치즈나 콤비네이션 피자, 그리고 악명 높은 하와이안 피자를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릴만도 있다. 그러나 K-피자의 다채로움은 또 다른 차원이다. 한국 프랜차이즈 메뉴들에서 보이는 토핑에서는 우리만의 현지화 스타일이 실재한다. 정말 기상천외하다. 스테이크, 고구마무스, 불닭, 크림파스타 면, 마라, 불고기 등 끊임없이 새로운 토핑이 추가된다. 피자가 현지화되기 쉬운 음식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스테이크나 크림파스타 등은 원래 한국의 것도 아니지 않나! 크러스트나 엣지 등 주변부에 시도되는 변화까지 생각하면 정말 끝이 없다. 더 맛있는 조합을 위해 무궁무진한 변화를 시도해 보는 우리나라 식문화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카롱 같은 디저트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이 '뚱카롱'에 기겁하며 마카롱의 정체성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클립들이 보인다. 자국 식문화에 자긍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의 정신을 쏙 빼놓음으로써 관람자의 샤덴프로이데를 유발하는 것일지도. 이처럼 본토 사람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변형된 식품들이 많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아예 예전에 수입됐다고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라면, 치킨 등에 가해진 처절한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는 두 번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잠시 앉아 배달 어플을 켜고선 아름다운 썸네일의 향연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또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OO맛집 태그를 검색해 본다면? 한국 음식들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조합들이 형형색색 입맛을 자극한다. "그래, 이거 다 아는 맛들이구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빨간 양념에 새하얀 떡과 어묵이 자태를 드러내는 떡볶이는 그 자체로도 일정한 조합식이 존재하는 음식이지만 거기서 멈추면 하수다. 로제떡볶이, 크림떡볶이, 자장떡볶이, 마라떡볶이 등등 소스의 다양화는 끊임없다. 추가할 수 있는 토핑도 10종류가 넘는 데다가 함께 곁들여먹을 세트와 사이드까지 주문자를 끝까지 유혹한다. 닭발, 주먹밥, 각종 튀김, 꿔바로우, 순대 모두 다수에게 인증된 조합이다.
조합! 조합이 중요하다. 해물과 양파 사이로 강줄기처럼 흐르는 자장면의 면발도, 불 속에서 용맹하게 익어가는 곱창도 단일 메뉴로는 완벽한 만족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을 넘어선 새로운 변형, 그리고 무언가 함께 입에 넣을 곁들임이 있는 음식이 유행을 일으키고 개중 검증된 맛이 살아남는다. 썸네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일 재료 음식은 굽기 전 한쪽에 정갈하게 쌓아놓은 생고기, 그리고 불멸의 야식 치킨 뿐이었다. 그런데 삼겹살집에 가서 진짜 고기만 구워 먹고 나온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한국인으로 쳐주지 않으리라. 냉면, 쌈과 채소를 곁들여 먹고, 남은 기름으로 볶음밥까지 만들어 먹어야 하지 않는가? K-치킨이야 뿌링클, 바사삭, 고추마요 등 다양한 레시피가 개발되었으나, 그나마 단일 메뉴로 섭취되는 거의 유일한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된다. 이마저도 배달 떡볶이, 불닭볶음면 등 조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넣어둔다면 말이다.
왜 이렇게 변형과 조합에 열광할까. 이것이 바로 비빔밥에서 보이는 섞임의 전통? 하지만 이런 유행을 전통이라 부른다면 정갈함의 대명사인 정통 한식에 왠지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식사 자리에 항상 곁들여지는 반찬 문화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 반찬에는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참기름과 통깨를 곁들여도 각종 나물의 향은 감추이지 않는다. 본래의 향과 식감에 더해 부차적으로 향신료의 향을 즐길 수 있어서 좋은 나물 반찬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비빔밥서 그 모든 나물이 장과 섞이는 와중에도 개별 재료의 향이나 맛이 감춰지진 않는다. 고추장과 들기름이 마에스트로처럼 재료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만, 결국 다른 재료들의 개성을 아우른다는 사명은 변함없다. 나물의 향과 맛을 다 가려버린다면, 차라리 고추장 베이스의 볶음밥을 해 먹는 게 나을 것이다. 한국인의 반찬 김치 또한 젓갈과 고춧가루를 입혀 발효과정을 거치는 와중에도 원재료의 개성을 살린다. 좋은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좋은 배추와 무를 고르는 게 정말 정말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치가 그저 짜고 매운맛으로 먹는 음식에 불과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발효과정을 거치며 본재료의 원초적인 맛을 극대화시킬 때 진또배기 김치가 된다.
이에 반해 요즘 변형과 조합은 재료의 맛과 향을 뒤덮는 방식이 많다. 크림과 치즈, 매운 향신료, 초콜릿이 선두 주자이다. 소금빵을 초코로 덮으면 단짠단짠의 공식은 만족시킬지 몰라도, 소금빵 본래의 버터향과 짭조름함은 가리어질 수밖에 없다. 마라탕에는 비빔밥보다 다양한 종류의 야채와 고기, 탄수화물이 들어가지만 강한 향신료가 원재료의 식감을 남겨둘 뿐 맛과 향은 현저히 약화시킨다. 크림과 치즈는 소셜 미디어를 뒤덮는 단골 재료다. 고기, 밥, 디저트에 두루두루 들어가서 한껏 입맛을 자극하지만 주재료의 원래 개성을 살려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강한 색조대비를 통해 양념과 치즈를 부각하는 인스타그램 광고를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비슷한 게시물만 보여도 해당 업장이 주메뉴에 자신이 없는 걸까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의 발전과 배달 문화의 확장이 이루어진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일 것이다. "응답하라 19XX" 때만 해도 외식문화의 대중화조차 미진한 시점이고, 먹거리의 다양성이 지금과는 비교되기 어렵다. 따라서 구매력 상승, 자유 무역의 확장 등 다양한 경제학적 설명이 동반되고, 음식에 대한 선호 변화나 조리 문화의 변화 등 사회문화적 분석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 다 아는 뻔한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진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현상 기저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일 따름이다.
둘레길 걷기를 좋아한다. 걸으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도시와 자연을 내려다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삶의 쳇바퀴를 돌리는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관찰할 때의 그 감각이 좋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관광지에 놀러 온 외국인처럼, 저 멀리 다른 행성에서 잠시 놀러 온 나그네처럼 그렇게 외부인이 되어 모서리를 돌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나에게 있다.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보면서 한 걸음 두 걸음을 내딛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관찰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또한 상상한다. 식(食)에 대한 생각 또한 그런 관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휘황찬란한 음식의 조합을 추구할까? 바로 나오는 대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맛있기' 때문이다. 식품 유통업자들과 요식업계 사람들의 치열하다 못해 피 터지는 생존 대결 속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메뉴들이다. 더 맛있게 느껴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그 맛을 인정받기 위해서 조합과 변형이 시도된 것이다. 그래, 식문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맛있다'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건강과 접근성 등등의 부차적인 이유가 있을지언정 식문화의 메가트렌드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이 맛있다고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각 문화권을 관통하는 경향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당장 옆나라 일본의 음식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달게, 우리의 음식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맵게 느껴지듯 말이다. 또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아무리 높은 평점을 받은 맛집이더라도 실망하는 사람은 항상 있다. 기본적으로 맛이라는 게 상당히 복합적인 감각이라는 점이 주요하리라. 미뢰 끝에 닿는 달고 시고 짠맛뿐 아니라, 베어 물을 때의 식감, 입에서 차지하는 용량감, 음식을 먹는 몸의 상태 등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결국 이어지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변형되고 조합되는 음식이 "왜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