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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올리브 Dec 01. 2021

배부른 소크라테스

20대의 지난한 고민을 정리하며

1. '배부른 소크라테스'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겠다." 원래 버전은 좀 다르지만, 요약하자면 위와 같다. 존 스튜어트 밀이 쾌락의 질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다.


지난 몇 년 간 나를 놓아주지 않던 고민이다. 배부른 돼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 것인가? 처음에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을 추구하고자 했지만, 나는 점차 '배부르고 싶다'는 욕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택하게 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고 싶다."


확정된 결론은 아니다. 여전히 배부른 소크라테스의 명제는 늘 흔들리고 있다. 사실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사는 게 가능한지조차 아직 의문이다. 방황 끝에 대학원 진학이 결정된 오늘도 합격의 기쁨보다는 이 선택이 배부른 소크라테스에 얼마나 가까울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 애초에 소크라테스로 살면 배부를 기회를 잡기가 어렵지 않을까? 반대로 배부르고자 노력하면 소크라테스보다는 돼지로 남기 십상이지 않을까? 온갖 걱정과 고민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어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도움이 된 적이 있었던가. 두려움에 도전하는 것만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걱정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는다. 하늘이 정하실 일을 주제넘게 반문하지 않기로 한다. 단지 그 모든 감정을 담담히 글로 남겨놓을 뿐.


내 가치관의 변천사를 기록해놓는 글이기 때문에 매우 길고 조악해질 예정이다. 스낵 부분인 여기까지만 읽기를 추천한다. 물론, 그래도 계속 읽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2. 시작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이상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뽑으라면 '재미'와 '의미'이다.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나만의 정의에 따른다. '재미'는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음을 뜻한다. 재미가 없는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 것만큼 허무하고 두려운 미래가 없었다. 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지고, 잘할 수 있고, 나름의 재미가 있어야만 했다. 그다음은 '의미'다. 의미란 타인도 나와 같이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나만 재밌고, 나만 기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재미와 의미가 최우선이면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필요, 즉 생계의 문제는 후순위가 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므로 어떤 이에게는 재미와 세속적 부가 공통의 영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이를 분리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기독교적 성장 배경 때문이다. 어차피 이 세상이 내세의 체험판일 뿐이라면, 일시적인 육체의 필요보다는 영원한 영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조금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도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또 남들도 그리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부와 성공은 늘 그 숭고한 목적의 도구가 될 뿐이라고 여겼다.


도와야 될 사람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그중에서도 꿈이라곤 추구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 길거리의 노숙인들이나 필리핀 마닐라 톤도에서 목격한 빈민들은 정의감과 측은지심을 자극했다. 다른 글에 기록하겠지만, 그들이 가정환경과 더불어 내 가치관에 준 영향이 지대하다.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그 어려운 사람들을 모른 체하고 사는 것이 비도덕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능한 변호사, 특히 국제기구에서의 소송도 맡을 수 있는 국제 변호사가 돼서 전 세계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삼았던 이유다.


이 순진무구한 이상이 도전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 여러 번의 대학 입시 중에 고민을 거듭했다.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었기에 나는 '신의 뜻에 맞는' 진로를 택한 것이 맞는지 수 차례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고민은 내 이상 자체를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당시의 생각으로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신의 뜻이며, 단지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문제라고 여겼다. 예를 들어, 내가 희생적 역할보다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변호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또는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여겼다. 결국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내 삶의 숙명'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문도 없었던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을 나의 재미와 의미로 삼는 것. 그것이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 영혼을 위한 십자가의 길이었다.


우여곡절의 입시 끝에 합격한 곳은 우연히도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과였다. 사실 뭘 배우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지원했던 곳이었는데, 마침 변호사가 되게 해주는 과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 나는 그 이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3.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었다.

첫사랑을 만나고선 "이 사람과만 연애하다가 결혼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고등학생. 어쩌면 내 장래희망이 그와 같이 위태롭고 순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말 어쩌다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를 그런 꿈 말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오춘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선 법학 공부가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철학이나 인지학과 같은 분야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는데, 법학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도구적이고 정형화된 틀처럼 느껴졌다. 어떤 새로운 창조를 해내기보다는 기존의 형성된 제도를 일방적으로 암기하는 방식이 너무 싫었다.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재미와 의미를 중요시한 나였기에, 이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로 다가왔다. 다 재밌자고, 의미 있자고 하는 일인데, 지금 당장 내게 재미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당연히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것을 택했다. 수능 공부를 할 때와 똑같았다. 너무 하기 싫은 류의 공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훌륭한 결과는 인내와 절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나 또한 그 길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재미와 의미가 없더라도, 이 길을 계속 간다면 결국에는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법학 공부에서만 오지 않았다. 남을 도와야 된다는 신념에 맞게 매주 역에서 노숙인 대상으로 봉사를 하고 있었던 때다. 팀장까지 맡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눈물로 기도하고 밥을 나누며 그들의 삶을 들었다.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법학 공부에 흥미를 잃어갈 즈음에 이곳에서마저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었을까? 나에게 있어서 가난은 탈출해야 될 재앙이었다. 사람을 가장 밑바닥으로 보내는 너무 무서운 괴물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난은 삶이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이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그런 생활을 해온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의 터전과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이상을 강요하는 폭력말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뭐 그리 나쁘냐고? 문제는 내가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능력도 없으면서, 헌신의 의지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말로만 도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낄 때, 교회의 한 누나가 다가와서 한 질문이 내 이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너는 정말로 노숙인들을 돕는 게 즐거워?"


아니었다. 나는 노숙인들에게 봉사하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팀을 꾸려 좀 더 원활한 봉사가 될 수 있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봉사 자체보다는 그 봉사로 인해 노숙인들이 가난을 탈출하는 결과를 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우리 팀원들 중에서는 정말 봉사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꿈꾸던 이상이 처참히 무너졌다. 육체보다는 영혼을 추구하는 삶. 십자가를 지는 삶. 나는 사실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는 후순위로 미루고 남들을 위해 헌신할 자신이 없었다. 법학 공부를 하기가 싫었고, 남을 돕기 위해 그 싫은 공부를 계속해나가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 모든 삶의 목표를 잃었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4. 배부름에 눈 뜨다.

내가 설정한 이상이 도달 불가능한 목표임을 자각한 뒤에 심적으로 무척 괴로워했다. 공부와 봉사 모두 그 의미를 잃었다. 타성에 젖어 당장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텅 빈 마음으로 하는 일이 잘될 리 만무했다.


그렇게 방황하다 보니 점차 나의 생각들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번에는 이상에 맞춰 노력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십자가의 이상 그 자체를 재고하고 있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이 정말로 좋은 삶인가? 또 나에게 맞는 삶인가?


그동안 종교적 교의로 강요돼왔던 그 모든 가치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처럼 드디어 한 세계를 깨고 다른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더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갈망을 직면하고 긍정하기로 한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높아지고 싶은 욕망. 그리고 끝없이 샘솟는 그 의지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내가 종교적 이상을 거부했을 뿐, 신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가치에 대한 반문과 내 욕망에의 긍정마저도 신 앞에 가지고 갔다. 나와 신의 관계가 종교적 율법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훌륭한 판단이었다. 신은 나의 틀에 박힌 사고를 뛰어넘는 분이었다. 그는 나에게 절대로 십자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위로와 자유를 주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신의 전능함을 느꼈는데, 신의 전능함은 어떤 미스테리한 기적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능력은 각 개인을 개인으로 만나는 데 있었다. 신은 종교와 같지 않았다. 종교는 전체를 개인에게 강요했으나, 신은 각 사람을 개별로 만나셨다.


신이 나에게 요구하신 것은 '법'이 아니었다. 어떤 절대적 윤리의 선을 그어놓고, 거기에 탈락하는 이들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분이 아니었다. 신이 나에게 요구하신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 자신과 독대하길, 그 어떤 기준도 어떤 법도 어떤 형식도 전체도 없이, 일대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법이 아니라 사랑을 드리기로 했다. 법에 맞지 않는 나의 내재적 욕망들, 어둠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을 그 광명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 앞에 내려놓고 한치도 빼놓지 않고 드러냈다. 나는 배부르고 싶다고. 나는 성공을 욕망한다고. 나는 세상을 갈구한다고. 그렇게 소리쳤다.


처음으로, 배부르고 싶음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5. 배부름은 생각보다 더 매혹적이더라

새로운 신앙적 경험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선을 열리게 해 주었다. 이에 더하여 인문학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더 큰 세상을 보니 그 생각들이 강화되었다. 풍요로운 삶이 주는 혜택을 몸소 느꼈던 것이다. 생계 걱정은 전혀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마음껏 여행을 다녔다. 학부 내내 관심이 갔던 철학과 정치학을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세계의 유명 학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워싱턴 D.C, 뉴욕,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의 도시는 미국의 정치 경제적 풍요로움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라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물론 그것은 일시적 풍요였다. 아산서원 프로그램을 통해서 제공받은 것이었고, 영구적인 게 아니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끝이 다가올수록 나의 욕구는 더 명확해졌다.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게, 어쩌면 재미와 의미를 쟁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처럼 보였다. '돈만 많으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이 있으면', 언제나 이렇게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을 거라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놀고 싶은 만큼 놀면서 남들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배부름의 욕망에 잠식되어간 걸까? 아산서원을 마치고 군 입대를 한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돈을 많이 벌 궁리만 했다. 부의 추월차선을 달리고, 경제적 자유를 이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압박했다. 일반적인 코스를 따라 기업에 취직해서 시드머니를 마련하고, 주식 등 재테크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 느려 보였다. 그것보다는 창업을 해서 극적으로 성공하고 빨리 은퇴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각종 아이템을 모색하고, 팀을 구하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다.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지언정, 사실 소크라테스와는 점점 멀어져 갔던 것이다. 나는 영혼의 만족 따위는 진로의 옵션에서 고려하지 않았다. 영혼의 만족 또한 성공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도 신앙생활을 하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길 계속했으나, 장래희망과 이 가치관은 점점 더 유리되었다. 어쩌면 나는 배부른 돼지의 삶을 지향했던 걸지도 몰랐다.




6. 다시 배부른 소크라테스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생계와 사회적 성공만을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전역 후 방황하는 나에게 신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메시지를 주셨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의 문제였다. 재물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니었지만, 이에 굴복하여 내 삶의 푯대로 삼는 것은 곧 변절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배부른 돼지로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텅 빈 영혼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나는 무의미에서 오는 무기력과 냉소를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물질적 조건이 풍요롭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여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다. 배부른 돼지의 삶을 추구할수록 내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무엇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는 있는지. 여러 떠오르는 질문에 절대 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대학원을 지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재밌어하고, 즐거워하는 공부를 위해 말이다. 문과로서 대학원을 진학한다는 게 배부름과는 너무나 멀어지는 삶처럼 보였으나, 결국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너무 급하게 준비해서 한 군데만 지원했는데도 결과가 좋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역시 배부름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로 돌아가야 되는 걸까?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배부르고 싶기도 하다. 지난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나.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고 싶진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배부른 돼지로도 살고 싶지 않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배를 채우려 달려들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재미없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결국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고 싶은 것이다.




7. 30대를 바라보며

내 20대는 이 고민에 답을 주지 못하고 끝나간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고 싶다는 확신만 생겼을 뿐. 그것이 가능한 이념인지 또 어떻게 그것을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남은 고민을 내 30대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한 달 뒤, 그 친구에게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 마지막 한 달 동안에는 모든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리하려고 한다. 하나하나 글로 써내다 보면 그 엉킨 실타래도 몇 가닥은 풀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젠간 이 엉킨 실타래를 모두 풀고 삶의 의미를 해설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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