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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Aug 05. 2024

space와 esc 사이에서

예전에 썼던 글...

비뚤어진 기원

혼내지 말아 달라는 애원

받아본 적 없는 응원

미래는 소원 꿈은 요원

할부는 갚으라고 성원

삶을 그저 버티자는 염원

영원 같은 고통 속 닿길 바라는 낙원

그럼에도 받을 수 없는 구원

꺼진 채 다시 켜지지 못하는 전원

알 수 없는 나의 願

할 수 없는 나의 want.

*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고, 평생을 그 채워질 수 없는 공백을 메꾸려고 아등바등한다. 누군가는 그게 돈일 수도, 사랑일 수도, 명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구멍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시간과 사회 구조 속에 톱니바퀴가 되어 사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내게, 스페이스바를 길게 누른 조금 넓은 공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할 수 있는 낙인과 이해할 수 없는 로망”

내가 세상에 울부짖으며 내 존재를 알렸을 때. 나의 성별은 환희보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이 드문 시절 부모가 갈라섰을 때, 모든 원흉은 밤낮없이 울기만 하고 궁금한 건 일단 열고 뜯고 찢고 보는 내게 쏠렸다.

엄마의 부재는 한 살 터울의 언니와 할머니가 이 모양 저 모양을 채워줬다. 존재하지 않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반면 아버지는 실재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서른이 넘도록 연애 경험이 전무하지만 남들에게는 쉽게 말할 수 없는 로망이 하나 있다. 중년 남성과 정서적, 지적 교감을 나누고 싶다.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를 갈망한다. give and take가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면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나도 상대에게 그가 바라는 걸 줘야 하는데 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외적으로 매력적이지도, 언변이 유창하지도 지적으로 월등하지도 않다. 게다가 ‘플라토닉 러브’라니. ‘에로스적 러브’ 섹슈얼적 매력이 그 여느 때보다 경쟁력이 된 시대 풍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을 꿈꾸는 내 모습에 비소가 나온다.

“외톨이가 되는 계산기와 고립을 채우는 법”

현재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하루 7시간을 보내는 편의점이다. 최저 시급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만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적고 틈틈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만족한다.

사람과 부대끼는 일에 서툴다. 학창 시절 은연중 기피의 대상으로 3년, 노골적 회피의 대상으로 3년을 보냈다. 6년의 고립과 남한테 지고 못 사는 성격이 결합한 결과, 대인관계에 기대치가 없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타인에게 의지하고 이용해 먹는 존재라는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가치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탁월한 공교육의 산물인 나는 내면의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살갑고 상대를 맞춰준다. 처음 본 사람도 쉽게 무장해제 시킬 수 있고 상대의 내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올 수 있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채 머릿속은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답은 정해져 있다. ‘역시 이 사람도 아니야.’

개중엔 촘촘한 필터링을 뚫고 마음이 기우는 상대가 있다. 그럼 나도 모르게 벽을 만들어낸다.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없고, 결국 난 관계에 에너지를 쏟는 게 지쳐 손절하리라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한다. 그리고 나를 위한 설득의 결과는 드물게 마음이 가는 상대조차도 매몰차게 내친다.

외딴섬을 자처했다고 생일날 기다란 선물 목록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나 벅차도록 사랑받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롭고 또 사무치게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런 고립은 시스터후드로 채워나갔다. 입구와 출구 없는 나만의 성을 축조하며 내가 행복하면 장땡.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역경과 고난 속에서 나는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22년 5월 14일 19시 29분 싱크홀 발생.”

이직에 이직을 거친 회사 생활은 6년을 버티다 한계에 도달했다. 남들과 다른 출발선이지만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데서, 나름의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는 위안은 눈물 젖은 항우울제와 함께 박살 났다. 나의 성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고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허구에 불과하단 걸 깨닫고 좌절했다.

나만의 꿈을 이루겠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도 주어지지 않은 채 골인 지점을 알 수 없는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었다. 암울한 나날은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는 일격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할머니가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을 동행하며 머리카락이 빠지고 야위어 가는 할머니를 무기력하게 보기만 했다. 진단 후 1년이 조금 지나서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양육자이자 보호자, 나의 엄마였던 할머니 상실은 치유가 엄두가 나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태풍이 오거나 불이 나면 몇 백 년을 버틴 나무가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내게 할머니의 상실은 그런 큰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나간 거나 다름없다. 우듬지부터 깊은 뿌리까지. 어디를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겁이 났다. 평평하게 만들어서 다시 씨앗을 뿌리기 겁이 났다. 할머니를 잊을까 봐 두려웠고 상처가 아물까 봐 무서웠다.

“backspace와 esc 사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싸우며 체념을 등에 인 채 하루를 버티며 산다. 그러면서도 20대 초반에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모종의 확신, 동시에 모순적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타개하고야 만다는 오만이 내면에서 창과 방패처럼 끊임없이 싸우고 충돌한다.

운명은 내 삶에 오점을 나기진 못했다. 그저 키보드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기다란 스페이스바를 오랫동안 길게 눌렀을 뿐이다. 스페이스바를 길게 누르면 엔터가 되고 여백은 무한정 늘어난다. 가늠할 수 없는 공백들에 백스페이스를 누르기가 멈칫한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얼마나 걸릴지.  esc를 눌러야 할까. 아니. 아예 alt+f4를 눌러야 할까. 손가락은 어떤 버튼을 누를지 허공을 맴돈다. 그렇게 난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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