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우 Oct 04. 2018

카메라는 찰나의 뒷덜미를 빠르게 낚아챈다.

3_사진 photo 혹은 사진사 photographer


사진을 찍다 보면 알게 된다. 사진은 시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간은 완벽주의자다. 잠시도 방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임무를 철두철미하게 완수한다.     


사진사는 오른손으로 카메라의 측면부를, 왼손으로 렌즈를 떠받친다. 셔터 위에 검지를 올려놓고 피사체를 겨눈다. 하나의 세계, 혹은 하나의 존재를 응시한다.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원하는 순간이 뷰파인더에 들어오는 순간, 사진사는 검지에 힘을 준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조리개가 빠르게 열렸다가 닫힌다. 카메라는 찰나의 뒷덜미를 빠르게 낚아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발사된다.

     

우리에게 당도하자마자 소멸할 운명이던 순간은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 빛과 그림자로 빛나는 순간을 감광판에 새겨넣어 메모리카드에 봉인한다. 속절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시간이 거기에 있다. 사진사는 시간의 흐름에 맞서는 전사戰士가 된다. 세월이 흘러도 사진은 남는다.     

 

사진사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앵글과 프레임을 설정한다. 어디에서 피사체를 바라볼 것인지, 무엇을 잘라내고 무엇을 담아낼 것인지 결정한다. 내려다보면 피사체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올려다보면 피사체는 실물보다 커진다. 사진사의 시선은 어떤 식으로든 사진에 반영된다.      


만약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면 카메라로 오려낸 그 사진 속에는 사진사 자신이라고 할 만한 어떤 감정, 혹은 시선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들은 좋은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그들은 공인된 앵글과 프레임만 활용한다. 뻔한 정물화 같은 사진을 찍는다.  

   

뷰파인더로 세계를 바라보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세세한 표정의 변화와 사소한 색감의 차이가 드러난다. 빛이 내리쬐는 각도와 은밀히 감춰졌던 습관들, 감정의 추이들이 보인다. 사진사는 피사체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다.      


세상은, 그리고 사진은 바라보는 자에 의해 창조된다.

사진사는 보이는 것들, 그러니까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사진사는 세계를 선택하고 창조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허설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