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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하 Iam Jun 16. 2024

프랑스 중세마을, 모레 쉬르 루앙 (시슬리 마을)

프랑스 파리 근교도시 추천


어쩌다, 모레 쉬르 루앙

프랑스에 가기 전, 파리에 가면 어딜 갈까 고민을 했다. 지난번에 가지 못한 루브르 박물관을 가볼까, 꽃이 피기 시작하는 지베르니를 갈까,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갈까.


그러다 우연히 네이버 커뮤니티에서 근교여행 동행 구하는 글을 봤다. 프랑스 시골마을 느낌이 나는 모레 쉬르 루앙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는 사람 바글바글한 지베르니나 베르사유 궁전을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평소 미술관도 가지 않으니까 차라리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마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파리 여행하며 갔던 곳 중에 가장 좋았다.


모레 쉬르 루앙 가는 법

모레 쉬르 루앙은 파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이다. 리옹역에서 기차표를 구매 후 갈 수 있다. 나비고가 있다면 그냥 타면 된다. 문제는 리옹역에서 기차표를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인 기계 중 모레 쉬르 루앙로 향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는 기계는 파란색 기계로 딱 2대뿐이었다. 30분 동안 이 기계, 저 기계에서 해봤지만 구매할 수 없었고,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고 나서야 구매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후 20분가량 걸어가면 마을 입구가 보인다. 마을은 중세에 지어진 요새 안으로 들어서면 된다. 우리는 10시 30분쯤 도착해서 걸어가다가 마을 입구에서 빵집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바게트를 사고 있었다. 아직 파리에서 바게트를 먹지 못했던 터라 나는 바로 줄을 섰다. 갓 나온 바게트를 먹고 싶었는데 딱이었다. 바게트는 1유로였다. 오예!


갓 나온 바게트라서 말랑말랑하고 따뜻했다. 얼마나 부드러운가 하면, 바게트를 팔 사이에 끼고 걸어갔는데 그 사이에 바게트가 반으로 납작하게 눌릴 정도였다. 바게트는 점심에 먹을 예정이라서 유럽 사람들처럼 한 손에 바게트를 들고 다니거나 에코백에 담아서 들고 다녔다. 자꾸 바게트가 눌려서 몇 번이나 소생시키기 위해 반대로(?) 누르기도 했다.


모레 쉬르 루앙

11세기에 지어진 중세 요새가 아직도 남아있다. 모레 쉬르 루앙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사람도 많이 없는 소도시였다. 요새 입구로 마을에 들어서면 강이 흐르고, 다리도 있고 그 너머로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과 나무가 있다. 중세시대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들어서자마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여기다, 여기네.

와, 정말 이쁘다.


강 주변으로 내려가니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강물을 바라보는 노부부도 보이고, 엄마와 아이가 나와서 걸어 다니기도 했다. 오리가 강에서 헤엄치며 다닌다. 날이 좋아서 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맞은편에는 넓은 잔디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와 건물이 이어지고 다리 아래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정말, 프랑스 중세시대의 모습이다.


잔디에서 피크닉

우리는 마을을 좀 더 구경하다가 간단하게 빵과 음료를 사서 맞은편 강 근처 잔디에서 먹기로 했다. 지나가다 보니 강 근처로 사람들이 하나 둘 피크닉 하러 모여드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레스토랑을 검색해서 먹으려고 했는데 피크닉 하는 사람들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제과점을 찾아서 빵과 음료, 아이스크림을 사고 강가로 갔다.


우리는 따로 챙겨 온 담요가 없어서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같이 온 친구는 제과점에서 산 빵을 먹었고, 나는 어제 시장에서 산 사과와 마을 입구에서 산 바게트를 먹었다. 슈퍼를 찾지 못해서 잼이나 버터는 사지 못했다. 뭐, 프랑스 바게트는 그냥 먹어도 맛있으니깐!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정말 달콤했다. 프랑스 사과는 유독 맛있는 것 같다. 아삭아삭하고 상큼하고 깔끔했다. 벤치에 앉아서 사과 하나를 아삭아삭 먹으며 눈앞에 펼쳐진 모레 쉬르 루앙의 풍경을 바라봤다.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느끼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봤다. 가족들이 와서 하나 둘 돗자리를 펴고 자리 잡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심을 먹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어색할까 봐 괜히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러지 않아서 고마웠다. 바게트 빵을 먹으면서 또는 사과를 먹으면서 풍경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정말 좋다. 평화롭다.


바게트는 진짜 맛있었다. 인생 바게트였다. 바게트가 이렇게 말랑말랑할 수 있을까? 친구는 파리에서 아직 바게트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한 번 먹더니 눈을 번쩍 뜨며 놀라더니 너무 맛있다며 바게트를 더 먹었다. 며칠 후 파리에서 바게트 상을 받은 카페에 가서도 바게트를 먹어봤지만 여기 바게트가 가장 맛있었다. 여기 바게트가 찐이었다. 찐!!


우리는 시간이 된다면 여기서 30분 거리에 있는 퐁텐블로 성까지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버스는 30분 뒤에 온다. 그 후의 버스는 1시간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퐁텐블로 성을 포기했다. 좀 더 잔디에 머물며 천천히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잔디에서 나와서 작은 마을을 발이 닿는 대로 구경했다. 구경을 하는데 내 가방이 계속 젖고 있었다. 아까 가방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서 젖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알고 보니 물병의 물이 새고 있었다. 더 재미있었던 건 물병 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 어떻게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뚫릴 수가 있는 건지 발견하고 너무 웃겨서 걷다 말고 웃기도 했다.


기차 타고 파리에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는 40분 뒤에 온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오랜만에 일광욕을 많이 했더니 급 피곤해졌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엄청 졸았다. 기차에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숙소에 가서 5시간을 누워있었다.


어렵게 기차표를 끊은 것부터, 처음 보는 사람과 여행을 다녀온 것도, 살면서 가장 맛있었던 바게트를 먹은 것,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은 일, 그리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던 마을까지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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