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많이 Dec 02. 2021

당신의 온라인 쇼핑, 그 뒤편의 이야기


매일 아침 성적표를 받고  성적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일을 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어제 하루 동안의 카테고리 실적은 부지런히 정리되어 매일 아침 전사에 공개된다. 매출이 부진하면 똑같은 숫자를 내일  보지 않기 위해 아침 9시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물론 영업 직무니까 매출 압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스개 소리처럼 '매출이 인격이다'라고들 하는데  말은 농담이 아니다. 진심 농도 100%  있는 말이다. 매출만 좋으면 회사에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매출이 좋은 달은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차오른다. 그만큼 회사 밖의  삶을 들여다보고 가꿀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출이 유난히 추락하는 달은 끊임없는 보고와 부진을 탈피하기 위한 수많은 액션 플랜을 짜고 협상하고 세팅하느라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린다. 그야말로 넋이 나간 좀비처럼 야근과 짜증에 파묻혀 살게 된다.



이커머스 MD는 좌절을 빈번히 경험한다. 온라인 생태계의 인풋과 아웃풋의 비례에는 대중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언제나 들인 노력만큼의 성과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은 큰 욕심이다. 다만 온라인 쇼핑은 인풋과 아웃풋이 정반대로 흘러갈 때가 밀물 썰물처럼 아주 빈번하게 찾아온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는데 결괏값이 죽어도 바뀌지 않는 상황이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시장의 흐름이나 경쟁사의 상황으로 우연히 얻어걸려 결과가 좋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열심히 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야 힘이 날 텐데 오히려 더 악화되는 성과를 받을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는다거나 광합성을 하면 산소가 생기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로 움직이는 것들에만 투입에 맞는 정직한 결과가 나온다. 이 외 세상 대다수의 일이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 수준으로 돌아간다. 착하게 산다고 로또에 당첨되지는 않으며 모범생처럼 산다고 꼭 성공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는 나중이 되어 봐야만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홉의 운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키보드와 마우스로 땀 흘려 일한다.



친한 동료 선배와 그렇게 좋아하던 온라인 쇼핑인데 이제는 넌덜머리가 나서 기피하게 됐다는 얘기를 나눴다. 더 이상 온갖 플랫폼에서 날아드는 앱 푸시와 광고 배너들이 흥미롭지 않다. 누군가는 엄청난 할인과 이벤트가 벌어진 잔치가 반갑고 원하는 구매를 해서 뿌듯할 거다. 과거의 나또한 그랬지만 이제는 오히려 쉬는 날 쇼핑 광고들의 무차별 공격을 받으면 갑자기 달달한 음료를 먹고 당이 쭉 차오르는 것 마냥 스트레스 지수가 급상승한다. 그래서 가끔 온라인 쇼핑몰의 가격이나 이벤트 사고를 목도하면 가슴속 한 편이 아리다. 사고는 명확하게 담당자의 잘못이고 소비자는 농락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엄청난 규모의 무대  뒤편의 비하인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공연의 스텝처럼, 후속 조치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빤히 보이니 내 일처럼 안쓰럽다.



우리가 온라인 쇼핑에 질려버린 이유는 그만큼 자주 상처 받았기 때문이다. 경쟁이 피 터지는 시장인만큼 항상 내 상품들을 가장 좋은 조건으로 운영할 수는 없다. 언제나 잘할 순 없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매일 성적표를 받지만 매일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이커머스 MD가 깊이 닦아야 할 도(道)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