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주 가는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씹고 있었다. 떡볶이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씨국물을 만들고 대대로 전해야 한다느니, 순대보단 허파와 귀가 진짜라느니 하는 영양가 없는 소리나 하면서 말이다. 그때 틀어져 있던 티비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주변에서 식기가 부딪히고, 튀김이 바싹 튀겨지는 소음은 끊기지 않았지만 내 귀엔 잘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내 이름이 호명된 것도 아닌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군가 넓은 세상에서 길을 열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을. 내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는 일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편 최근에는 계속해서 텍스트 힙(text hip) 혹은 과시 독서의 흐름이 계속 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책 읽기는 금방 사라질 허세 문화라고 평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기세는 앞서 언급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다시 불이 지펴졌다.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한강 작가의 책은 온라인에서마저 품절되어 받아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쇄 매체가 하락세를 탄 이후로는 지금이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무슨 책을 읽느냐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 자체가 멋있는 행위가 된 것이다.
얼마나 더 얇고 가벼워졌는지로 전자기기의 혁신을 논하던 때도 있었다. 현재 출시되는 전자제품에 한해선 그 기준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숨막히는 경쟁에서 경로를 이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옛날 스마트폰의 색감을 구현하고자 중고로 이전 버전의 휴대폰을 사기도 하고, 줄 있는 이어폰은 따로 충전하지 않아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며 애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스로 다운그레이드를 감행하며 모두가 가지 않는 좁은 길로 방향을 트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텍스트 힙이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모두가 거북목으로 휴대폰을 쳐다볼 때 유유히 책장을 넘기는 행동은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 행동이 설령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라도 그를 나무랄 필요는 전혀 없다. 책을 읽기 위해 돈을 뺏었다던가, 서점을 털었다던가 혹은 부탁하지도 않은 내 귓가에 ASMR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가랑비 젖듯 책과 가까워지면 몇 장이라도 뒤적여 보기 마련이다. 그렇게 책 혹은 텍스트와 가까워지면 좋은 일, 가까워지지 못했더라도 책을 사는 데 지불한 돈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난 이런 유행이 굉장히 반갑다. 우리나라에서 문학상을 받는 작가가 배출되고, 책을 읽는(혹은 보여주는) 행위가 힙스터로 취급 받는다는 게 반갑다.
우리는 글을 쓴다. 거의 매일. 이렇게 말하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글이란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가족 혹은 친구와 메시지 창에서 대화를 나누며 한 줄, 회사에서 업무를 보며 한글 문서에 한 페이지, 밤에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장에 한 장. 무언가 기록하고 남겨서 소통하기 위해선 언제나 텍스트가 필요하다. 누구나 빠져들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논문을 발표해야만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소통이다.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혹은 반대하며 새로운 의견을 창출해낼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 글이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지금처럼 가벼운 오피니언을 작성하기도 하고, 일기를 써서 대나무숲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마감시간을 확인하며 촉박하게 과제를 제출하기도 한다. 그럼 누군가는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글을 쓰면 밥이 나오는지 돈이 나오는지. 글로 돈을 벌어 삶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 맞다. 자격이 필요하지도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판단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끼니를 챙기고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힘은 특별한 능력이 맞기 때문이다. 언제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나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이 오는 일은 짜릿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기 전 제출했던 지원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나는 내 말을 전할 창구가 필요하며, 그때마다 타인에게서 오는 피드백이 중독적이라는 말. 또한 그래서 남이 아닌 나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말. 이만하면 잘 지켜온 것 같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글을 기획하고 자료를 찾아 개요를 쓰는 데부터 본문을 작성하고 퇴고하는 데까지 시간이 참 많이 든다. 한 마디로 읽는 사람이 느끼는 것 대비 품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참 많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중구난방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한데 모아지고 정리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논문과 책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사를 읽어보며 새로운 의견이 또 생긴다.
마지막으로 소소히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을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갖길 바란다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감상을 휘갈겨도 좋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계획해 봐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봐도 좋다. 뭐든 쓰는 행동은 나를 성장시킨다. 쓰기 전 혹은 쓰면서 생각은 정리되고, 쓴 후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살아가며 크고 작은 차이가 난다. 변화가 더딜지는 몰라도 확실하게 발전하고 싶다면 짧은 글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