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모르는 사이지만, 언젠가 한 번쯤 마주쳤을 수도 있다. 어쩌면 빵집 알바생과 손님으로.
나는 당신이 흔히 아는 베이커리 브랜드의 알바생이다. 벌써 일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니 나에게 빵집은 이제 권태로운 공간이고, 빵을 파는 일은 질릴 정도로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케이크.
내가 빵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케익 쇼케이스다. 케익이 예쁘고 맛있어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케익 쇼케이스 쪽으로 옮기는 손님들에게 있다.
빵집을 찾은 손님 중 그 손님들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들은 한자리에 가장 오래 서있는다. 그 순간에 케이크를 받을 누군가의 취향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반응을 상상한다. 따뜻하고 이타적인 공간이다.
어떤 케익 꺼내드릴까요? 묻는다.
종종 어떤 분들은 나에게 이 케익에 뭐가 들었는지, 맛있는지 질문한다. 그러면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저도 안 먹어봤어요.' 그러나 이렇게 돌려 말한다. "많이들 사 가세요."
손님들이 다 고르시면 나는 케익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포장을 시작한다. 케이크는 매우 연약하다. 옆면에 띠지가 붙어 있지 않다면 더더욱. 크림에 스크래치가 날까 봐, 당신의 특별한 날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봐, 실은 매번 겁을 먹은 채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으로) 최대한 조심히 포장한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묻는다.
그러면 가끔 나이가 지극하신 분들은 생일자의 출생연도를 말하며 되려 나에게 그 사람이 이제 몇 살이냐고 묻는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오신 분이구나.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부럽고 존경스럽다.
초를 챙기며 이 케이크가 갈 파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케익에 올려진 초콜릿 장식은 누구의 접시에 놓일까.
젊은 회사원인 것 같은 여성분이 말한다. "작은 거 일곱 개요."
아이고, 자녀분 생일이시구나. 너무 귀엽겠다. 괜히 너스레를 떨어본다. 물론 마음속으로.
그리고 종종 어떤 20대 남성분들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귀염 뽀짝한 캐릭터 케이크를 고르고, 웃음기를 띤 채 큰 초는 2개를 요청한다. 화려한 디자인의 생일모자 구매는 덤. 장난스럽고 유쾌한 생일 파티가 그려져 나도 괜히 웃음을 참게 된다.
폭죽도 드릴까요? 묻는다.
대부분 멋쩍게 웃으며 달라고 답한다. 초는 너무나도 당연한데 폭죽은 왠지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 그러면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생일은 그 어떤 유난도 다 허용되는 날이니까.
그다음엔 계산을 도와드린다. 원래도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케익을 사는 손님에게는 특히 더 신경을 쓴다. 그 손님에게 특별한 날일 오늘을 조금이라도 해치기 싫어서. 손님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경우 더욱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계산을 끝내고 어딘가 상기되어 있는 표정에게 케익 상자를 쥐어드린다.
이처럼 케익은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파는 사람도 이타적이게 한다. 냉장고에서 막 꺼냈음에도 따뜻한 음식이다.
네가 케익을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유난이냐고 반문해도 좋다. 나는 그저 당신의 특별한 순간에 내가 잠시라도 맞닿아있다는 게 좋다. 지겨운 빵집에서 당신의 소중한 하루에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그러니 케익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뗄 때, 당신의 특별한 날을 이름 모를 누군가마저 축복했다는 걸 기억해 주시길.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선명히 비칠 케익 쇼케이스 유리창을, 오늘도 깨끗하게 닦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