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소개하는 건 늘 어렵습니다. 아포리즘처럼, 한 줄 소개처럼 짧고 강렬하지만 핵심을 담아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꼭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까지 줄줄 말하게 되고, 돌아가는 길엔 그 많은 말들 속에 “진짜” 알맹이가 하나도 없었다며 후회하곤 합니다. 어제 했던 말을 오늘은 자꾸 수정해서 변명하고 싶어지는 버릇도 아직 고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그래요. 아마 이것과 그것은 그렇게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봐요. 별 쓸데없는 말로 말문을 열었지만요, 이건 그럭저럭 자기소개가 맞을 겁니다.
저는 제가 요즘 좀 변했다는 걸 느껴요. 동시에 변했다는 건 변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알아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여전히 많이 변하지 않은 것들도 뼈저리게 느끼고요. 그리 긴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저는 살아가는 내내 활발했다가 조용해졌고, 다시 활발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마 다양한 단계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각자가 만난 단계의 제가 지금의 저와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은 좀 많이 활발한 단계에 도착해 있고요. 다들 반가워요!
저는 늘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라고 들으며 살았는데요.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많이’ 말하는 사람일 뿐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변명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말 한마디, 마음 한쪽에 갇혀 그걸 오래오래 사는 사람인지라 산뜻하게 모든 것을 정의 내리며 살아가는 모든 삶에 질투심을 느끼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이것저것 사이에서 부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분명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는 것들은 내뱉지 않음으로써 회피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나를 속단하는 사람들의 말이 정말 싫은 하루가 지나면, 나를 촘촘히 뜯어가며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 정말 고맙다고 여겨지는 내일이 오더라고요. 똑같은 단어이고 말인 데도요. 그러니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고, 저조차도 저를 다 알 수는 없다고 함부로 단언하며 지내게 됩니다.
요즘은 의식하지 않고도 SNS를 멀리하게 됩니다. 제 성향상 아마 평생 SNS를 하지 않고 살아가지는 못할 테고, 언젠가 다시 왕성하게 활동을 하겠지만 일단 요즘은 그렇습니다. 그건 사실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예요. 내가 그려내는 ‘나’의 이미지로부터,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나를 배우는 다른 사람들로부터요.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제가 타인을 보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아지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두 눈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는 것이 그 사람들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는 방법이라고 느꼈거든요. 클릭 한 번이면 별것이 다 작동하는 21세기에 딱히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요.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좋아하는 저의 모습은 ‘좋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아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만난 친구는 제게 “너는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하고 산뜻한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처럼, 저는 자꾸 별것을 사랑하게 되고 이름을 붙이게 되고 마음을 주게 되어요.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든다는 만화 <베리베리 다이스키>의 한 구절처럼, 언젠가 슬퍼지게 될 것이고 또 많이 슬퍼해 왔지만, 습관처럼 계속 새롭게 좋아할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담으면, 아주 경솔하게 그 모든 것들을 나의 ‘취향’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사실 그건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당장 내일 밤에 없어질지도 모르면서요.
조약돌 줍듯 제가 지금까지 주워 온 취향을 나열해 볼까요? 아주아주 빈티지한 카페, 아니면 무척 번듯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갖는 휴식, 크레마가 잔뜩 올라간 커피, 빨래 향기가 나는 고양이 털, 햇볕이 도로에 스며들 때를 포착해 사진 찍기(사진첩이 터질 것 같아요!), 무모하게 산책하기,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는 것, 낯선 곳에서의 여행, 시와 시 사이를 읽기, 새벽 3시 길바닥에서 부르는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같은 것들이요. 별건 아니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이 겹겹이 쌓여 제가 보고 듣고 만지며 뱉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둥이 되어줍니다.
모든 ‘최애’를 밝히진 못했지만, 세상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딱 반만큼 싫어하는 것들이 있어요. 좋아하기보단 피하고 싶은 감정에 가깝지만 애가 쓰여서 눈길을 더 주게 되는 것들도 많고요. 좋지 않은 것과 싫어하는 것은 동의어가 되지 못한다는 말을 믿으며 하루하루 새로운 단계를 통과합니다. 좋은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싫은 것의 사이를 맘껏 부유하면서요.
올 한 해는 새로운 인연, 새로운 나, 새로운 감정을 많이 만났습니다. 하루하루가 안온하다가도 저 바닥까지 떨어지는 날도 잦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제 모습을 많이 발견했고, 모르고 싶었던 모습까지 발견해 버렸어요. 언젠가 그것들도 분명하게 느끼게 되어 자기소개에 늘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일기를 꽤 자주 씁니다. 자주 쓸 땐 손바닥 크기만 한 일기장 하나와 휴대폰 속 일기 어플 2개, 메모장, SNS 비공개 계정까지 5개씩이나 욕심내며 이것저것 써 내려가곤 했습니다. 내용은 대게 별 것 아닌 게 대부분이지만 생각과 순간들을 그냥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나봐요. 요즘엔 그런 날들이 언제였냐는 듯, 손으로 쓰는 일기장에만 일기를 적습니다. 이 일기장에 적힌 2025년의 첫 구절을 함께 읽고 싶어요. 1월 1일의 일기엔 그때 당시 화제가 됐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의 한 구절을 적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잦은 밤에는, 특히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밤에는 일기장의 앞 페이지로 돌아가 이 구절을 쓰다듬었습니다.
자기소개는 늘 어렵습니다. 늘 뒤죽박죽으로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다가 한계에 쫓겨 급하게 말을 마무리하곤 해요. 나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는지, 전달해야 할 정보를 충분히 전했는지 등의 생각해 보아야 할 각종 체크리스트는 자기소개가 끝나고 한참 후에야 떠올리게 됩니다. 짧고 강렬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처음부터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요. 이것저것 사족을 많이 붙였지만요, 이건 그럭저럭 자기소개가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