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걸린할머니 #손녀 #콤비
근 십 년간 할머니 치매를 바라보며 알게 된 것이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가 치매는 직선이나 완만한 곡선처럼 점진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이다.
치매는 계단식으로 전개됐다.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으면
한순간의 변화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어느 순간'부터 어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어느 순간'부터 홈쇼핑 주문을 혼자 할 수 없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잘 언급할 일 없는 사람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등
계단식으로 뚝뚝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뚝 떨어진 인지 능력 그 상태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 년 정도 상태가 지속되다
어느 순간 뚝- 다시 한번 더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
곁에서 변화를 몸소 체감하기에
언젠가부터 엄마와 통화를 하며 곧잘 이런 이야기를 했다.(할머니는 외할머니다.)
엄마 할머니가 또 좀 다르네~ 엄마가 서울에 좀 오면 좋겠네.
엄마 할머니 지난번이랑 또 달라.
엄마 할머니 이제는 혼자 밖에 나가시면 안 될 것 같아.
아빠 할머니한테 인사 한번 드리러 오면 좋겠어.
한두 달에 한 번씩 엄마는 서울에 찾아왔지만
변화는 엄마가 서울에 있는 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예고 없이 불쑥 왔다.
할머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 메이트였다.
우리는 제주도, 일본, 대만 등 둘이서 여행을 잘 다녔다.
할머니는 불호도 별로 없고, 고집도 없는
고상한 노인이었고
내게 한없이 자상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랑 여행 다니는 걸 더 좋아했다.
여행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은
할머니와 앳된 손녀 콤비에 관심을 가지고 친절을 베풀었기에
여행은 더 순조롭게 기억된다.
할머니도 내가 편한 손녀였기에 나랑 다니는 걸 좋아했다.
홈쇼핑에서 여행 상품이 나올 때면
나를 불러 우리 저기 갈래?
너무 좋네. 우리도 여행 가자~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응 할머니 좋네! 다음에 가자~
오 좋은데? 할머니가 돈 내줄 거야?ㅎㅎ라고 넘겼다.
나는 직장인이었고
돈도, 시간도 제한적이었으니
그리고 20년 1월 정도에 할머니와 상하이 여행을 계획했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다녀올 셈이었다.
돈도 시간도 적당한 곳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여기 온 사람 중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일 거야!라는 찬사를 매우 좋아하셨다.
상하이 디즈니를 다녀온 가장 나이 많은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 드릴 생각이었다.
여행에 엄마는 우려를 표했다.
할머니가 디즈니랜드를 어떻게 가시니..
너 지금 할머니 연세를 자각하고 있는 거지?
이제 그렇게 못 걸으셔~
아니 엄마! 내가 무리하지 않고 모시고 다닐게!
그리고 이번이 진짜 마지막 해외여행일 거야
언제 또 가시겠어.
엄마의 우려는 길지 않았다.
우한발 바이러스라는 게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고
중국은 여행 기피 1순위가 되었고
많은 공항이 폐쇄되었다.
야심 찬 마지막 해외여행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인생만사가 그렇지 뭐-
to 여행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
내가 딱 한 군데만 더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못했어.
이제는 집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하시네
미안해.
그래도 나 같은 손녀 없지?
이제는 치매 노인과 노처녀 손녀 콤비로 진화했다.
할머니 우리 남산이나 산책가요~